그 여름을 즐기다,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삶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다
여름은 늘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의 수국들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계절,
그 여름날에도 나는 같은 질문을 들었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형형색색의 수국들은 마치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온 축제처럼 만개해 있었다.
그리고 그 꽃들 사이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꽃을 보러 온 사람 같기도 했고,
어쩌면 꽃들이 그녀를 만나러 온 것 같기도 했다.
검은 드레스와 하얀 드레스 사이를 오가며,
소녀 같기도 하고 숙녀 같기도 한 모습으로 수목원을 거닐던 그녀는,
마치 여름이라는 계절이 잠시 사람의 형상을 빌려 나타난 것만 같았다.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꽃이 피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수국은 하루아침에 피지 않는다.
긴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둥글고 풍성한 꽃송이를 완성한다.
사람도 그렇다.
아름다움은 하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려와 이해와 기다림,
그리고 수많은 아픔을 견디어낸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한 사람의 깊이가 된다.
그래서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그 웃음 속에는 지나온 역사가 있었고,
운명처럼 만나고 헤어졌던 인연들이 있었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리움도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목원의 오솔길을 걷다 문득 작은 예배당 앞에 섰다.
그 순간 나는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냈다는 고마움이 머무는 곳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평생 집을 찾아가는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품이 집이 되고,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집이 되고,
추억이 집이 된다.
그래서 행복은 거창하지 않은 것이다.
행복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웃는 저녁.
따뜻한 밥 한 끼.
향기로운 커피 한 잔.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아차리는 여유.
그리고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
그것이면 충분하다.
행복은 늘 가까운 곳에 있는데,
우리는 너무 멀리서 찾으려 한다.
그날 수목원에서 그녀는 꽃 사이에 앉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동화책 속 주인공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거대한 잔칫상이 아니라,
저녁 양념 같은 삶인지도 모른다고.
소금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된다.
기쁨만 있어도 안 되고,
슬픔만 있어도 안 된다.
웃음과 눈물,
만남과 이별,
희망과 기다림,
설레임과 그리움이 적절히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인생은 깊은 맛을 낸다.
그래서 아픔도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니다.
아픔은 사람의 마음을 넓혀 주기 때문이다.
상처를 겪은 사람은 타인의 눈물을 이해하게 되고,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누군가의 손을 먼저 잡아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고,
우리가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이유다.
수목원의 나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고요는 침묵이 아니다.
고요는 마음의 소란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쫓기며 살아간다.
빨리 가야 하고,
더 가져야 하고,
더 성공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꽃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나무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푸르러질 뿐이다.
맘껏 푸르다.
그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름의 나무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다.
있는 힘껏 푸르러지고,
있는 힘껏 하늘을 향해 자란다.
사람도 그래야 한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색으로 살아가면 된다.
조금 어리다는 것.
조금 귀엽다는 것.
조금 서툴다는 것.
그것도 삶의 아름다움이다.
완벽한 사람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더 오래 기억된다.
그날의 그녀가 그랬다.
꽃을 바라보며 웃고,
바람을 느끼며 걷고,
작은 설레임 하나에도 눈을 반짝이던 모습.
그 모습은 마치 아직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설레임이 있고,
소원이 있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름답다.
아침고요수목원의 여름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인연은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
마음을 쓰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
배려는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작은 습관이라는 것.
인내는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긍정은 삶을 견디게 하는 가장 따뜻한 힘이라는 것.
해가 기울어 갈 무렵,
수국들은 더욱 부드러운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꽃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마치 오늘을 마음속 깊이 아로새기려는 사람처럼.
추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특별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은 그렇게 남는다.
거창한 성공 때문이 아니라,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날의 여름을 기억한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미소를,
고요 속에서 들려오던 바람 소리를,
그리고 세상이 아직은 참 살 만하다고 말해주던 따뜻한 풍경을.
삶은 결국 사랑하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랑하고,
계절을 사랑하고,
오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
그 여름날 아침고요수목원에서 그녀는 꽃들과 함께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조금 서툴러도 괜찮고,
가끔은 눈물이 나도 괜찮다.
오늘 웃을 수 있다면,
내일을 꿈꿀 수 있다면,
곁에 고마운 인연 하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그래서 그 여름은 참 좋았다.
수국은 피어 있었고,
마음은 설레고 있었으며,
희망은 여전히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름다운 계절 속에서,
가장 사람다운 모습으로,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그 여름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모델하여 주신 님도,
그것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았던 나도,
그러하였다.
글,사진 더Rain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