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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민20:14-21, 거절 당할 때

작성자한우리|작성시간18.12.28|조회수1,052 목록 댓글 0

20:14-21, 거절 당할 때, 18.12.26, 박홍섭 목사

 

민수기 20:14부터 마지막 36장까지는 민수기의 후반부로써 광야40년의 연단 기간이 다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와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있는 신 광야 가데스에서 가나안까지의 여정은 에돔 땅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 가장 가까운 길입니다. 하여 모세는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 그 땅을 통과할 수 있도록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모세는 먼저 에돔이 이스라엘과 형제 사이임을 상기시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에돔 땅을 지나갈 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고, 왕의 대로로만 지나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17절의 왕의대로19절의 큰 길과 같은 길로 흙을 쌓아 올려 만든 넓고 편편한 길입니다. 넓고 좋은 길이기에 상인들과 군대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었으며 왕들도 신하들과 더불어 마차나 전차를 타고 이 길을 다녔기에 왕의 대로라 불립니다. 이 길을 통해서 가면 가장 안전하게 빠르게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돔 왕은 모세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그냥 거절이 아니라 만일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지나가면 군대를 풀어 칼로 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아주 과격하게 거절합니다. 재차 겸손하게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돔 왕은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결코 지나가지 못한다고 결사적으로 거절합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에돔을 통하지 않고 먼 길을 우회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나중에 21장에서 보겠지만 요단 동편 아모리 왕 시혼의 도성 헤스본과 바산 왕 옥의 경우는 똑같이 거절당했을 때 싸워서 정복하고 지나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에돔은 싸우지 말고 먼 길을 돌아가도록 하셨을까요? 에돔이나 헤스본이나 바산이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다 같은 장애물 아닌가요? 더군다나 21:4절을 보면 에돔을 통과하지 못하고 우회하게 된 이 사건은 백성들의 마음이 상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왜 에돔은 싸우지 않고 지나가게 했습니까?

 

2:4-6, 9,19을 보십시오. 에돔, 모압, 암몬과는 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이고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형제나라입니다. 14절에 모세가 에돔 왕에게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이라고 밝힌 대로 형제나라입니다. 형제는 형제인데 불신친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에돔으로부터 거절당하는 법부터 배우게 하십니다. 거절당하면 얼마나 힘이 빠지고 기분이 나쁩니까? 더군다나 남들도 아니고 불신친척 형제로부터 거절당할 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거절을 통해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간섭과 도우심 없이 한 발짝도 떼어놓을 수 없는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거절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임을 배우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고개 숙이는 법을 배웁니다. 약속의 땅에서 허락되는 풍성한 믿음의 삶을 누리려면 그 전에 거절을 통해 고개 숙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을 잘못배우면 하나님의 백이 있다고 하면서 빳빳한 고개를 가진 무례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때 싸우고 어떤 경우에 싸우지 말고 돌아가고 양보해야 합니까? 이 분별을 못하면 싸우지 말아야 할 때 싸워서 큰 상처를 입고 싸워서 이겨야 할 때 싸우지 못해 중요한 승리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주의 백성들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이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에돔이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겸손을 위한 가시로 허락한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에돔은 이후에도 두고두고 이스라엘의 가시노릇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시를 허락하시어 중요한 때에 우리를 겸손하게 낮추십니다.

 

가시와는 싸우면 안 됩니다. 가시는 내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제거해주셔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은혜에 길들여지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은혜에 길들여지면 하나님께서 내게 잘해주는 것은 당연하고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마음이 뒤틀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본색을 아시기 때문에 옆구리의 가시를 하나 준비해놓습니다. 에돔이 할 일이 없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아주 간교한 기질과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기 싫어하는 아주 강한 고집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가시를 허락하십니다. 사사건건 힘들게 하고 속을 뒤집어 놓는 그런 가시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곁에 없으면 바로 잡히지 않습니다. 누가 우리를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지 않습니까?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 것이 인간입니다. 에돔이 하나씩 있어야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은혜에 길들여져서 방자하고 오만하고 자기만 아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지 모릅니다.

 

에돔이 없으면 우리 속에 있는 교만한 마음과 악한 본성이 잘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말씀과 공동체의 교제로 잘 다듬어지고 깎여지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몸은 교회에 와서 앉아 있어도 귀는 딱 막아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만만한 분이 아닙니다. 은혜로 안 되면 가시로 합니다. 그렇게 귀마개 하고 교회 갔다 오면 바로 그날, 시어머니가 갑자기 찾아와서 야야 보래이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설교는 귀마개를 하고 안 들으면 되지만 이것은 안들을 도리가 없습니다.

 

가시와는 싸워서 안 됩니다. 거절과 멸시와 수모를 받아내면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는 정말 버릇없고 감사할 줄 모르며, 하나님 말도 듣지 않고 사람 말도 듣지 않는 오만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에돔의 거절이 필요합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을 길들이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가지며 채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돔으로부터 거절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싸우지 말고 저 사람이 지금 나를 위해 이렇게 애를 쓰면서 수고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없다면 나의 이 못된 성질이 어떻게 조절이 되고 다듬어질 수가 있겠는가?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에돔을 망하게 하심을 알고 그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나는 좀 먼 길을 돌아서 우회하면 됩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나는 언젠가는 회복이 되고 영광스럽게 되지만 에돔은 나에게 행한 그 일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문 당하고 한 순간에 끝장나는 때가옵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증오하지 말고 불쌍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에돔의 거절을 경험할 때 원망하지 말고 이 거절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가시가 아닌지 먼저 생각하고 겸손해져야 할 부분, 깎이고 다듬어질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에돔 같은 가시가 주는 아픔과 거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에돔 처럼 가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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