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1:1-9 고질병을 고치는 하나님, 19.1.9, 박홍섭 목사
민20장은 미리암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아론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특별히 아론의 죽음으로 온 이스라엘이 30일 동안 애곡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향한 이스라엘의 여정은 계속되고 21장은 이들이 가나안의 남쪽 경계인 ‘네겝’에 도착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네겝의 왕이 이스라엘이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싸움을 걸어오고 몇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가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과 성읍을 다 멸하게 하시는 승리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3절에 이곳의 이름을 밝히는데 ‘호르마’입니다. 민14:45절의 사건 기억나십니까? 38년 전 가데스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후 하나님이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기 힘으로 싸워 비참하게 패했던 그곳이 호르마입니다(민14:45). 하나님은 이들에게 그 옛날 자신의 혈기와 분노로 대패했던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언제든지 이길 수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네겝에서 놀라운 승리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곧 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무서운 시험에 빠집니다. 이 사건의 계기가 무엇입니까? 에돔 땅을 우회하여 가는 길의 어려움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에돔 땅의 왕의 대로로 가면 편하고 빨리 갈 수 있는데 그 길이 막히고 돌아가는 길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자 마음이 상합니다.
힘들면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마음 상함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반복되는 모습입니다. 5절이죠.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것을 불평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주신 것을 하찮은 것이라고 표현함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멸시하고 모욕합니다. 힘들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들어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해서는 안 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지금까지 이들에게 주셨던 만나와 생수를 하찮은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만나와 생수는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는 하찮은 것이니 그런 은혜 말고 다른 것을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했으면 지금보다 더 쉬운 길과 더 안락하고 풍요롭고 편한 삶을 주셔야지 이게 뭐냐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는 삶,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삶,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사는 삶, 그런 것은 우리에게 다 하찮은 것이니 다른 것을 달라고 합니다.
이들의 불평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죄에 해당됩니다. 히10:26-29절을 보십시오. 물리적인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 해도 불신앙에서 나오는 이런 고질적인 불평과 원망이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도 되지 않는 불평과 원망을 일삼은 이들을 심판하셔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경고하십니다. 6절이죠.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그러나 이스라엘은 불신에서 나온 원망이라는 고질적인 자신들의 병이 이런 무서운 죽음을 초래했음을 알고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라고 하시며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는 응답을 주십니다(7-8절). 이것은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14-15절에서 말씀하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분명한 예표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고질적인 완악함과 이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로 구원하실 지를 보여주는 예표이죠.
모세가 기둥에 단 구리 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시합니다. 하늘에서 오신 인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십자가에 높이 달려 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음으로 쳐다보는 자마다 죄의 독을 치료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본다는 것은 그냥 물리적인 눈으로 쳐다보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시고 말씀하신 내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살다보면 힘들어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시험의 순간이 옵니다. 남들은 다 편히 가는데 예수 믿는 나만 에돔의 길이 막히고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힘듭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분명히 위로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가지 않고 사람들 앞에 불평과 원망의 입을 열기 시작하면 무서운 시험에 듭니다. 어떤 시험입니까?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가 하찮게 여겨지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그 험한 환경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여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불 뱀과 전갈이 득실거리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공급하시지 않으면 자신들의 힘으로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런 곳을 38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켜오셨습니다. 하찮은 은혜가 아닙니다.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너무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그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은 지금까지 붙들어왔던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의 손길을 놓아버리십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광야의 불 뱀이 달려들어 그들을 물고 그 독에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그들이 하찮다고 불평하고 원망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의 은혜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알라는 뜻입니다. 불평과 원망에서 나오는 불신의 독이 불 뱀에서 나오는 독보다 더 무서운 독임을 알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하찮게 여겨지는 분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믿게 해놓고 이게 뭔가? 돈도 없고 집도 없고 건강도 없고 매일 별 볼일 없이 하루하루 이렇게 연명하는 것이 무슨 은혜인가? 생각되는 분이 있습니까? 시험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그래야 무서운 불평과 원망의 독이 빠져나갑니다. 십자가 밑에서 왜 내가 예수 믿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나를 구원하신 은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기도하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 자리에 내가 달려야 합니다. 나에게 반복적으로 터져 나오는 불평과 원망과 불신의 독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얼마나 안 좋은 고질병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왕의 대로로 가지 못하고 에돔을 돌아 우회하게 하신 하나님이 하찮은 분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가 하찮은 은혜가 아닙니다. 매 순간 하나님께서 붙들고 보호하시고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찮게 인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죄와 사망 가운데 우리를 지켜오셨고 붙들어오셨습니다. 그 손을 놓아버리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제발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은 안 됩니다.
지금도 우리의 대 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원망하고, 구원의 은혜를 멸시하고, 날마다 교회를 통해 누리는 말씀의 양식을 경멸하는 저와 여러분의 고질병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불 뱀에 물려 죽어 마땅하지만 장대에 높이 달린 구리 뱀을 본 자를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십자가 밑에 나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독이 퍼져 세상의 영광과 헛된 자랑과 부질없는 욕심에 사로잡혀 살지 않도록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님을 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