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6:12-15, 매 삼년의 구제 십일조, 21.1.20, 박홍섭 목사
지난주에 살폈던 맏물을 드리는 의미가 여호와 경외였다면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삼 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는 여호와 경외를 담고 있는 헌금의 정신이 어떻게 기업이 없는 자들을 위한 구제로 연결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에서 기업이 없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매 삼 년째에는 구제의 십일조를 따로 내게 했습니다.
이건 이미 신 14:22-29에서 확인한 내용인데 26장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14:22-29을 다시 보겠습니다. 22-27은 “네 산물의 십일조”로 매년 드리는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곧 성전에 가지고 가서 드리는데 너무 멀면 돈으로 환산해서 가지고 가서 거기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서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되 자기 성읍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을 챙기도록 했습니다.
28-29의 매 3년 끝에 드리는 십일조는 이와 달리 성전으로 가지고 가지 않고 자기가 사는 성읍에 저축하여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구제하기 위한 또 다른 십일조를 드리게 했습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매년 내는 십일조만 해도 벅찬데 삼 년마다 거기에 더해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또 따로 내라 하시면 나는 무얼 먹고 살라는 말인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와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사용되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규례는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누가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내어도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부가하셨으며, 오늘 26:13-15에는 이 헌금을 드리면서 나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이 십일조 규례를 다른 용도와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게 했으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하여 달라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십일조와 구제가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니라 온전한 신앙고백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14:23절을 보실까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왜 십일조를 하라고 하십니까? 복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물질에 우리의 마음이 가 있음을 아시고 돈보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 됨을 믿고 신뢰하도록 훈련 시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십일조와 구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과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돈의 힘을 알고 필요성을 압니다. 우리도 돈이 필요하고 돈이 일상의 모든 부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압니다. 알지만 돈을 머리 위에 이고 하나님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십일조와 구제를 통해 여호와 경외를 배우고 이웃 사랑을 배웁니다. 그것이 십일조 규례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가 그리스도가 다 완성하신 구약의 법이어서 오늘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고 완성하러 왔습니다. 구약 성도들에게 소득의 십일조와 매 삼 년의 구제 십일조를 통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면 신약 성도들은 문자적인 십일조가 아니라 더 확장되고 완성되어 십분의 십, 나의 모든 것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이 명령에 담긴 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십일조와 헌금을 복을 받기 위한 투자로 잘못 가르쳐온 바가 크지만, 헌금은 내가 낸 것만큼 복을 받는 거래나 투자가 아니라 순전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의 기업이 되며 나의 소득임을 경험하고 맛봅니다. 이 고백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의지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고 매일 일용한 양식을 구하며 그 양식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사랑하는 여호와 경외와 경건을 배웁니다.
그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나의 양식만 구하지 않고 기업이 없는 가난한 사람의 양식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나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구제로 연결시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매 삼 년 구제의 십일조가 주는 의미입니다. 이 또한 신 15:7-11절에 이미 주신 명령이며 여기에도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재차 덧붙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명령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십니다. 7-11 보실까요?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십일조는 단순히 복 받는 방편이 아닙니다. 구제는 가진 자가 던지는 선심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 은혜로 사는 주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신앙고백과 같은 필수이며 명령입니다. 신앙고백이 없는 성도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십일조와 헌금과 구제가 없는 성도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처럼 죄와 사망의 종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 오셔서 여호와의 성민 삼으시고 그 은혜를 고백하게 하시고 고백만 아니라 흘려보내는 삶을 명령하십니다.
“결국 돈 내라는 소리네”로 듣지 마시고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기꺼이 믿음으로 순종해보십시오. 그러면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고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 되는 복된 신자의 삶이 놀랍게 시작될 것입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