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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신 27:1-10, 세겜에 새겨야 할 언약의 기념비

작성자한우리|작성시간21.02.03|조회수523 목록 댓글 0

신 27:1-10, 세겜에 새겨야 할 언약의 기념비

21.2.3, 박홍섭 목사

 

신 27장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에발 산에 큰 돌을 세워 석회를 바르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해주신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1-4). 그리고 거기에 다듬지 않은 돌로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셨고(5-7), 마지막으로 백성의 절반은 그리심 산에 서고, 절반은 에발 산에 서서, 레위인이 큰 소리로 반포하는 여호와의 계명을 듣고 모든 백성이 ‘아멘’ 하십니다(8-26).

 

여기에는 당시에 통용되던 공적인 언약 체결의 형식과 절차들이 다 들어가 있으며, 예전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과 언약 체결 의식을 행했던 것과 거의 같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른 장소에서 갱신해주신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출애굽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어주신 장소가 시내 산이므로 시내 산 언약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본문은 장소가 모압 평야이기 때문에 흔히, 모압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왜 언약을 갱신시킵니까?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어기고 배반하여 광야 40년의 유랑 생활을 한 것이고, 이제 그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기에 가나안이 보이는 모압 평야에서 다시 언약을 갱신시켜 그 땅에 들어가면 이 언약의 말씀대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중에 여호수아 8장에 가면 이 명령대로 이들이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이 명령을 수행하는데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이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 왜 가장 먼저 도착했던 길갈과 여리고가 아니라 여리고를 지나 더 들어가서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세겜에서 이 의식을 행하라고 하셨을까요? 세겜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인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곳입니다(창 12:1-7). 지금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세겜에서 언약의 기념비를 세우고 하나님과 공적인 언약 체결에 해당되는 이 의식을 치러야 합니까?

 

9:3-6을 보겠습니다.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려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에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님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이들이 여기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공의로움과 정직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실력이나 힘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그들보다 앞서 가시어 가나안 원주민들을 엎드러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쫓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땅에 들어갈 때 어떤 생각을 하지 말라고요? 내가 잘해서 내가 탁월해서 내가 했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인데도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어 이 땅을 차지하게 하신 이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약속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도착한 가나안 땅에서 처음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세겜 땅에서 언약의 기념비를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여기 들어와 살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도 그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나안은 광야와 완전히 다릅니다. 믿지 않는 강하고 힘센 원주민들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기 욕심대로 사는 가나안의 우상 문화와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 땅에 적응하고 그들을 배워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은 오직 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너희들의 생사와 복은 어떻게 하든지 이 땅에서 잘 적응하고 이 땅의 사람들과 그들의 방식으로 싸워 이기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데에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이 땅을 약속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 땅에 들어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 땅에서 승리하고 살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들이 마음과 뜻을 다해 신경 써야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담긴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살면 은혜와 복을 받고 무시하고 불순종하면 저주와 심판을 받는 것이 이들입니다. 이들은 언약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로 하나님의 찬송과 명예와 영광이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마음을 다해 지키고 행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시려고 누구라도 이 언약의 말씀을 볼 수 있게 큰 돌에 언약의 법들을 새겨 다시 언약을 갱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언약 갱신의 장소가 축복을 선포했던 그리심 산이 아니고 저주에 해당되는 에발 산일까요? 이들은 출애굽의 기적도 보고,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함도 받고, 만나와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마시고 빽빽한 구름 속에 임재하셨던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시내 산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족속들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벌 받고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이들을 교육할 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신 11:26-32에서 주셨던 말씀을 다시 반복해서 공적인 언약 갱신의 내용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가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주로 하지 마!”를 많이 하는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현대 심리학은 인간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봅니다. 이에 기초한 교육학도 긍정적인 칭찬과 격려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론들은 인간의 죄 성을 너무나 간과합니다. 너 이렇게 하면 휼륭하게 되니까 이렇게 하렴, 인생은 이런 말로 분발하지 않습니다. 빨간 불에 건너지 않으면 이런 상을 줄게 보다 “길을 건널 때는 절대로 빨간 불에 건너서는 안 돼”, “어떤 사람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서는 안 돼” 이런 말이 훨씬 뇌리에 박히고, 이렇게 해야만 겨우 경각심을 갖고 조심해서 바른 사람 되게 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성경 전체에 복에 대한 말씀이 많겠습니까? 저주와 경고의 말씀이 많겠습니까? 저주나 경고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당장 오늘 본문의 바로 다음 장인 신명기 28장을 보십시오. 이 장은 언약의 복과 저주의 장입니다. 여기에 총 68절까지의 말씀 중 앞의 14절까지만 순종할 때의 복에 대한 말씀이고, 나머지 54절이 저주의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저주를 강조하십니까? “절대로 그리로 가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망하고 죽는 길을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저주와 심판의 길을 가서는 안 되고 복과 생명의 길을 가야 한다는 강한 강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무대인 가나안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경고를 가슴에 새기지 않으면 금방 가나안에 물들 수밖에 없는 우리임을 인정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순종하면 복과 은혜를 누린다로 이어져야 하지만 이 무서운 경고를 무시하고 바로 생명과 복으로 갈 수 있는 우리들의 수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됩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애를 써야 하고 마음을 다져야 하고 손해와 어려움을 각오하며 가야 하는 길입니다. 어디로 갈 확률이 높습니까? 어려운 길보다 쉽고 편안한 죄에 해당되는 길로 갈 확률이 100%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정신을 차리고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선한 길로 갈 실력이 못됩니다. 먼저 생명과 반대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강한 경고가 필요합니다. 죄는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함께 망하게 하도록 꼬드기고 부패하게 부추깁니다. 어떻게 여기에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 산에서 언약을 갱신하자고 하십니다. 절대로 이 길을 가서는 안 된다를 알아들어야 반대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마음을 잘 받아들여서 우리를 죽게 하는 죄의 길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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