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3:12-29,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19,8,14, 박홍섭 목사
하나님은 요단 동편의 두 나라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진멸하고 그곳을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에게 분배해주셨습니다(12-17). 모세가 그들에게 요단 동편이 이 땅을 주는 데는 그들의 군인들이 나머지 지파들과 함께 요단을 넘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함께 수행한 뒤에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온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18-20). 이어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여호수아에게 전달합니다(21-22). 어떤 약속이죠? 하나님께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한 것과 같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도 너희와 함께 하면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약속입니다.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싸우라고 하시고 그 싸움에서 승리를 주신 이유가 가나안을 같은 방식으로 얻게 하신다는 승리의 예고편에 해당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예고편의 확인이 오늘 두 지파 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요단 건너 가나안에 준비되어 있는 나머지 지파들의 기업도 똑같은 방식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위한 모든 준비를 요단 동편 두 왕과의 싸움을 통해 마련해놓으십니다. 신2:24-25절을 다시 볼까요?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론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오늘부터 내가 천하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리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정말 이 전쟁을 통해 천하 만민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요? 수2:8-11절입니다.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로 살다가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정식 군대로 없는 이스라엘이 용맹한 군사가 있는 강한 나라 둘을 격파하고 전멸시킬 수 있도록 역사하셔서 그 누구도 이들을 함부로 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방의 나라들이 이 전쟁의 소식을 통해 마음이 녹게 하시고 간담이 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도 그렇게 주시려고 모든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친히 너희를 위해 싸워줄 것이니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은 앞선 두 나라와의 싸움처럼 하나님이 친히 싸워주시는 싸움으로 이미 승리가 확보된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것이 너무 많은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불순종한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승리를 주신다는 담대함을 가지고 주저함과 두려움 없이 남은 생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다음 단락은 자신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모세의 기도와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거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23-25절이죠. “그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하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모세는 하나님께서 출애굽과 비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요단을 건너 아름다운 땅 가나안에 친히 들어가게 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믿기 때문에 자신도 가나안을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6절이죠.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야속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이제 되었으니 다시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의 간절한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실까요?
민20장을 보면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불평하고 원망할 때 여호와를 믿지 않고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지 않고 반석을 두 번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온 기적은 고린도전서 10:4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깨트려 우리를 살리는 생수가 되심을 예표 하는 표적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단 한번으로 족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물을 내실 때는 그냥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모세는 마치 자신이 반석에서 물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이스라엘 앞에서 자신이 분노하면서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소개하고 나타내고 드러내는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양, 예수 그리스도라도 되는 양,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 때문에 너는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원의 생수를 마치 자신이 주관할 수 있는 것같이 굴었다는 뜻입니다. 지도자로서 큰 죄에 해당되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불쌍히 보셔서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모두 마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그들을 대표하는 모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심으로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너희 때문에”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이미 신명기 1:37절에서 내가 너희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4:21절에도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그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라고 맹세하셨은즉”이라고 말합니다. 세 번이나 내가 너희 때문에 혹은 너희로 말미암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내가 너희들 때문에 못 들어갔다”고 이스라엘 백성을 원망하거나 탓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 전체를 교훈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 놀라운 사건이 모세 자신이 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터트린 결과 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불신앙과 불평과 원망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하나님을 반역한 일임을 되새겨주는 의도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단지 그의 역할이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와 함께 하면서 너와 이스라엘을 인도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에는 못 들어간다. 너는 여기까지다. 그러니 “그만 해라. 여기까지로 족하다.” 하나님이 야박하고 박절하신 게 아닙니다. 이미 족한 은혜를 모세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여호와를 대면했고 하나님께 붙들려 오늘까지 사용되어 왔습니다. 모세를 사용해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싸움에서 놀라운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족합니다. 가나안에 못 가게 하신다고 하나님이 박절하신 것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신약에 가면 하나님은 바울에게도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면서 가시를 제거해달라는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족하다고 하시면 족합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하다고 하시면 충분합니다. 모세의 역할은 여기까지이고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맡겨졌습니다. 모세는 여기까지로 족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주의 종들은 자아도취에 빠져서도 안 되지만 자기연민의 수렁에 빠져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다 하면 여기까지로 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거절하셨지만 그를 데리고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십니다. 족한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친히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친히 함께 하고 계신데도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모세처럼 가시를 제거 받지 못한 바울처럼 우리의 기도도 거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친히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때에도 여전히 족한 은혜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선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역할이 거기까지면 거기까지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소원과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 앞에 거절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도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으며 그 또한 족한 은혜임을 찬송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