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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194문, 기도⑧

작성자한우리|작성시간24.02.03|조회수36 목록 댓글 0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194, 기도. 24.2.4, 박홍섭 목사

 

제194문, 다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다섯 번째 간구인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에서(마 6:12) 우리는, 우리와 다른 모든 사람이 원죄와 본죄를 지어 하나님의 공의에 빚진 자가 되었으며, 우리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그 빚을 조금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롬 3:9-22, 마 18:24-25, 시 130:3-4),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깨닫게 되고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를 통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죄책과 죄의 형벌에서 사면받게 해 주시기를(롬 3:24-26, 히 9:22),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주시기를 위해 기도합니다(엡 1:6-7). 그리고 우리에게 계속해서 총애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벧후 1:2), 우리가 매일 짓는 죄를 용서해주시고(호 14:2, 렘 14:7),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을 날마다 더하여 주셔서 우리를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합니다(롬 15:13, 시 51:7-10). 이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한다는 증거가 우리 안에 있을 때 더 담대하게 구할 수 있으며, 용기를 내어 기대하게 됩니다(눅 11:4, 마 6:14-15, 마 18:35).

 

해설

1. 주기도문은 우리의 기도에 순서와 질서가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성도는 나의 이름과 나의 나라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왜 이 순서가 중요합니까? 이 순서가 바른 삶의 순서와 질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를 다니는데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지를 못할까요? 기도가 바뀌지 않아서 그렇고, 기도의 순서와 질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우리의 삶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분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집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고 날마다 죄 용서를 구하며 형제를 용서할 때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떠나기를 구할 때입니다. 대요리 문답 193문은 네 번째 간구인 일용할 양식에 관한 내용이었고 194문은 죄용서, 195문은 시험과 악에 관한 간구입니다. 오늘은 194문이 다루는 죄 용서에 관한 내용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2.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가 겸손과 의존의 간구라면, 다섯째 간구는 회개와 통회를 말합니다. 넷째 간구는 우리가 피조물임을 떠올려 주고, 다섯째 간구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식시켜줍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우리에게는 날마다 궁핍과 배고픔이 찾아오고 매 순간 죄도 찾아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와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이 두 기도와 더불어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는 기도가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된 하나의 기도로 나옵니다. 우리가 육신의 양식 없이 하루도 못 사는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 없이도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고 날마다 죄 용서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들은 매일 일용할 양식과 더불어 매일 용서의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지금도 매일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롬 3:10-12). 문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능력은 있지만 지은 죄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매일 용서해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이 원죄와 실제적인 자범죄를 지어 하나님의 공의에 빚진 자가 된 것을 인정해야 하며(마 18:23-25), 동시에 우리가 그 빚을 조금도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시 130:3-4, 마 18:23-25). 그러하기에 매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를 통하여 우리의 죄책과 죄의 형벌을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하며(히 9:22, 롬 3:24), 날마다 죄 사함의 확신을 주시어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시 51:12). 그것이 다섯 번째 간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4. 문제는 여기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뒤따라 나오는 구절을 보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다시 반복되어서 마치 내가 다른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조건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황금의 설교자라고 알려졌던 크리소스 톰이 목회하던 교회는 신자들이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보물섬’이라는 소설을 쓴 로버트 스티븐슨은 가정 예배를 드리고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이 부분에서 뛰쳐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 기도가 어렵습니다.

 

5.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남의 죄를 먼저 용서해줘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겠다는 조건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자입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를 되새김으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냥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큰 희생을 치르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날마다 그 큰 용서의 은혜를 하나님께 입으며 살고 있으니 죄의 질로 따지자면 비교가 안 되는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6. 우리에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려고 하며, 몇 배나 갚아주어야 속이 풀리는 타락한 죄성이 있어서 남을 용서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할 수 없기에 성경은 용서의 교훈을 가르칠 때마다 예외 없이 기도를 함께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도 용서할 수 없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기 위하여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그 용서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의 잘못만 생각한다면 용서가 안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였는지, 그리고 어떤 죄인이었는지를 생각하고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용서하셨는지를 생각하면 그 은혜로 용서가 가능해지니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7.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에게 보이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용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반증입니다. 지체를 용서하지 못함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용서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때 하나님이 주신 죄 사함의 은혜를 더욱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눅 11:4, 마 6:14-15, 마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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