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7:11-28,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②
21.2.14, 박홍섭 목사
히브리서 독자들이 누구인지 히브리서 내에 확실하게 설명된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맥의 정황상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가 고난과 핍박으로 말미암아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삶이 고단해서 신앙생활의 침체를 겪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들을 붙들어주기 위해 저자는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최종계시자요, 천사보다 탁월하고 모세보다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며 대제사장이라고 설명합니다.
1장에서 4장까지 그 설명을 하고 나서 5장부터 10장까지는 예수님이 레위 계열의 인간 제사장보다 우월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심을 집중적으로 강조합니다. 중간에 이 설명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듣기에 둔한 이들의 어린 신앙을 꾸짖는 장면이 잠시 있지만(5:11-6장) 7장부터는 다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에 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멜기세덱은 역사적으로 실제한 살렘의 왕으로 의와 평강의 왕인 동시에 하나님께 세움을 받은 신비로운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었고 그에게 십일조를 받음으로 아브라함보다 높습니다(7:4). 아브라함보다 높으니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레위 계열의 대제사장들보다도 높죠. 멜기세덱이 레위 제사장들보다 높으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도 레위 계열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들보다 높고 우월함은 당연합니다.
이렇게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을 비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높음과 우월하심을 논증한 저자는 곧바로 본문에 와서 제사 직분 자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높고 우월함을 대조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전혀 다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인 예수님을 세워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드린 제사가 완전한 제사였다면 계속 드릴 필요가 없고 다른 제사장인 예수님도 필요 없었겠죠.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가 완전하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셨던 제사가 구약 백성들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데 불완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제사가 모든 사람의 죄와 모든 종류의 죄를 사하는 완전하고 충분한 효력이 아니어서 죄를 지을 때마다 또 다른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제물로 드려야 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불완전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형과 그림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물로 삼아 자기의 피로 십자가에서 단 한 번의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로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고 성취한 후로는 더 이상 레위 계통의 인간 제사장들을 통해 드리는 제사는 필요 없어졌습니다. 실체가 왔으니 모형과 그림자가 필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12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제물로 드리는 구약의 제사를 완성시키고 성취했으니 이제는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명하였던 율법의 제사 의식도 필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리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종의 수단인데 그 직분이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그 수단을 담은 율법의 제사 의식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진다는 말은 구약의 모든 율법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에는 크게 시민법, 의식법, 도덕법의 세 종류가 있습니다. 시민법은 안식년, 희년 법등 당시 이스라엘의 국가 법인데 지금 우리는 시민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지 않고 원리와 정신을 지킵니다. 의식법은 제사법과 그에 따른 정결법과 음식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도덕법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삶의 표준인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기 말하는 율법이 바뀌었다는 말, 폐지되었다는 말은 제사에 따른 의식법을 말합니다. 그냥 폐지되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훨씬 좋은 예수님을 그 완성과 대체로 주셨기 때문에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는 고난이 있다고 이런 예수님을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 필요 없는 제사와 함께 쓸데없는 짐승을 잡고 음식법을 지키면서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버리려고 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그는 레위 지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제사법에 따른 레위 계열의 제사장이 아니고 유다 지파에서 난 하나님의 아들로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전혀 다른 제사장입니다. 13-19을 보십시오.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게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 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레위 계열의 제사장과 비교할 수 없는 더 좋은 소망이며 최고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야지 어떻게 어려움이 없는 곳으로 도망가려고만 하느냐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들면 인간 제사장 없이 혼자서도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짐승의 제물 없이도 나갈 수 있고, 울면서도 나갈 수 있고, 답답해도 나가고 억울해도 나가고 힘들어도 나가고 기뻐도 나가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갈 수 있는데 왜 어리석게 하나님께서 다 폐하여 버려서 쓸데도 없고 효력도 없는 인간 제사장을 의지해서 짐승을 잡아 불완전하게 나가는 그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냐는 말입니다.
이어서 20-22절은 시편 110편 4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맹세 없이 임명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 달리 하나님의 맹세로 임명된 완벽한 언약의 보증이 되는 제사장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23-24은 죽음으로써 사역을 마칠 수밖에 없었던 인간 제사장들과 달리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대제사장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다시 강조한 뒤 25절은 이런 예수님이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는 언약의 보증으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항상 저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니 제발 그분께 나가 은혜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26-28에서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영원성과 완벽성을 강조합니다. 구약 시대 모든 제사장은 다 죄인이어서 자기를 위한 속죄제가 필요했던 연약한 인생이었지만, 주님은 죄 많은 이 세상에 계시면서 죄인들의 친구로 사시면서도 전혀 죄에 오염되지 않는 무죄하고 순전하며 거룩한 분입니다. 이분이 십자가에서 once-for-all, 단번에 드린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런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과 완벽한 대제사장으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보다 더한 열심으로 우리를 위하고 우리를 편들고 계십니다. 어찌 이분을 떠날 수 있습니까. 어찌 예수님을 버리고 다른 소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친구와 성당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성당에 다니는 친구가 교회 다니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개신교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직접 나간다며? 어떻게 직접 나갈 수 있어?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께 갈 때도 비서실장이나 누구를 통해서 나가는데 대통령보다 훨씬 높은 하나님께 나갈 때 어떻게 아무도 통하지 않고 직접 나갈 수 있어? 그게 말이 되니? 그래서 우리는 신부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가는 제사인 미사를 드려” 교회 다니는 친구가 한동안 가만히 있자 성당 다니는 친구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때 교회 다니는 친구가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어이 친구야, 대통령의 아들이 대통령께 나아갈 때 비서실장 거쳐서 가니? 너는 아버지께 나갈 때 누구를 거쳐서 가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어서 하나님께 나갈 때 누구도 거치지 않고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갈 수 있어. 물론 우리도 목사님이 있지만 목회자는 삼위 하나님과 교회와 신앙의 뜻과 목적을 성경대로 잘 가르쳐주는 직분자일뿐,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중간 다리가 아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목사님의 중계 없이도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지,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보네”
이게 온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하게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다시 구약의 제사와 인간 제사장을 통해 불완전하게, 그것도 용도폐기된 쓸모없는 방법으로 나아가려고 한단 말입니까? 어떤 경우에서든 무슨 일이든,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의 완전한 구원의 보증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고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좋은 것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하나님께 간구해 보십시오. 낙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구해보십시오. 반드시 응답해주시고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습니까? 천국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이분을 사랑하지 않고 이분을 따라 진리의 길을 가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 땅에서 무엇을 얻고 어떤 복을 누리고 어떤 성공을 하고 아무리 떵떵거리고 산다 해도 그 사람의 마지막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불붙는 진노 가운데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이루신 과거의 구원, 미래의 구원을 믿는 분들은 많습니다. 예수 믿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고 장차 예수 이름으로 천당에 가는 것은 다 믿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과 형편에서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분임을 믿는 데는 확신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 미래의 구원만 아니라 현재의 구원도 믿어야 합니다. 지금 현재, 병이 안 나을 수도 있고 가난이 물러가지 않을 수도 있고 어려움과 고난이 여전히 나의 삶을 힘들게 할 수 있어도 그런 현재의 나를 완전하게 붙들고 하나님의 뜻과 구원을 향하여 인도하실 줄 믿어야 합니다.
고난이 있습니까?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습니까? 살아계셔서 항상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영원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보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떤 아픔이라도 하나님께 내어놓고 도움을 구하면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가장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고 원수 되었고 경건하지 않았을 때 우리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셨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지금, 주의 이름으로 나가는 우리를 모른다고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러니 고난 때문에 마음을 완고하게 먹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려움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시고 성령의 역사로 적용해가고 있는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니 고난의 때에 더욱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굳게 붙들어 때를 따라 돕는 은총을 힘입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도 못 하지 않은 열심과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편들고 계시며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고난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 짐을 벗으려고만 하지 말고 감당하고 살다 보면 겨자씨 만한 우리의 믿음이 공중의 각종 새들이 날아와 깃들여 쉬는 큰 가지가 있는 나무와 같은 인격과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롬 8:31-39을 찾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저자가 말했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복된 운명을 바울이 이렇게 감격 가운데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이 은혜를 누리고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