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3:1-14,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22.4.20, 박홍섭 목사
여호수아서 13-21장은 땅을 분배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주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땅을 기업으로 나눠주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합니다. 13장은 땅 분배의 서론으로 핵심은 기업입니다. 그냥 땅을 나누는 부동산 분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을 기업이 되게 하라고 기업에 방점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13:8-33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미 두 지파 반에게 주신 요단 동편의 기업 분배를 다시 회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회상은 그들이 요단강 건너 서편 가나안에서 하나님께 받을 기업의 성격과 분배의 원칙을 알려주는 역할입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이라는 말이 무려 13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이 기업은 이스라엘 혼자 만들 수 없고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음을 주지시키기 위하여 “주었다”가 8, 15, 24, 29에 네 번 나오고, “받았다”도 8, 23, 28, 31에 네 번 나옵니다. 기업을 기억하십시오. 13-21장의 땅 분배에서 기업이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 땅을 그들은 그냥 땅이 아니라 기업으로 받아야 합니다. 먼저 8-12은 요단 동편의 기업은 이러하니 하고 요단 동편에서 두 지파 반이 받았던 기업의 전체적인 요약을 합니다. 그리고 15절은 르우벤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한 뒤, 16-23절에 르우벤 지파가 이런 성읍과 촌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24절에는 갓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하고, 25-28절에 갓 지파가 받은 성읍과 촌락을 열거합니다. 29절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하고 30-31절까지 므낫세 반 지파가 받은 성읍과 촌락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에게 기업을 나눠주실 때 한 지파에게 덩어리로 주시면서 너희들이 알아서 분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들의 가족을 따라서 기업을 주었으니” 24절입니다. “모세가 갓 지파 곧 갓 자손에게도 그들의 가족을 따라서 기업을 주었으니” 29절입니다.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으되 므낫세 자손의 반 지파에게 그들의 가족대로 주었으니” 가족대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기업을 주시되 가족대로 주어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누구나 기업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요단 서편 가나안 땅도 기업으로 받을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각자의 분량대로 가장 적합하게 나눠 주십니다.
이렇게 요단 동편 땅을 두 지파 반에게 이미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셨고 그들은 받았습니다. 나머지 아홉 지파 반은 14:1절부터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차지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13:1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그럼, 11장 23절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선언은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주요 거점을 정복하는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가나안 남부 연합군이 무릎을 꿇었고 북부 연합군도 크게 무찔렀습니다. 가나안의 모든 왕을 다 죽였고 군인들도 죽였습니다.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작은 지역의 전투가 남아 있습니다. 기를 쓰고 그 땅을 지키려고 저항하고 있는 가나안의 거주민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늙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투는 남아 있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앞으로 싸워서 마저 얻어야 할 땅은 이러하다고 2-6까지 세세하게 일러주십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너는 너의 할 일을 다 하고 나이 많아 늙었으니 그 땅을 미리 아홉 지파 반에게 나누어주고 그들 자신의 전투로 기업을 차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다시 말씀드리지만, 13장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으니 이스라엘은 그 땅을 각자의 기업이 되게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땅만 차지하지 말고 그 땅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되도록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은 각자 믿음으로 싸워서 차지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13장만 아니라 마지막 24장까지 이어지는 주제입니다. 아니 사사기까지 이어집니다.
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 일이 이토록 중요합니까? 이는 장차 우리가 받을 영원한 기업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업을 은혜로 주셨지만, 그냥 주시지 않고 이스라엘이 믿음의 싸움을 통하여 받게 하십니다. 전쟁의 승리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셨습니다. 신약 성도도 동일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을 물리쳐주셨습니다. 죽음을 정복하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끈질긴 죄와의 싸움은 여전히 우리 각자의 전투들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투도 믿음으로 싸우면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 약속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가나안 영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 32-33절입니다. “요단 동쪽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분배한 기업이 이러하여도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시지 않고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기업이며, 나아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이는 나머지 지파가 받은 기업의 궁극적인 지향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심은 결국 그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자신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의미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땅만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영원한 기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화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주신 계명을 통해 그리스도를 붙들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 일상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화제, 영적 예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기업을 주시기 위해 기업 무를 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내가 이미 다 이기었으니 너희는 이제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기 위한 믿음의 싸움을 각자 싸우라고 하십니다. 너희의 일상이 예배가 되게 하고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과 싸우고 우리 밖에 죄의 가치관들과 싸우라고 하십니다.
이 싸움을 잘 싸우려면 우리에게 허락된 이 기업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영광을 방해하는 죄와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엡 1:16-19을 보십시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의 기도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우리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성도 안에 허락된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땅의 썩어질 기업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고 기업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모든 방해와 도전을 힘 있게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기업은 상속이라는 뜻이며 소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속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안에서 그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란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된 우리의 영광입니다. 이것이 장차 우리가 받을 상속으로 너무나 놀랍고 크고 영광스러울 뿐 아니라 풍성합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엡 1:11-12을 보십시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의 상속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기업이 되도록 예정을 입었다고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아 하나님 앞에 영광의 찬송이 되는 기업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이 영광과 복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이 복된 그림 말입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좁은 땅 서로 많이 가지겠다고 피 흘리며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아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그의 자랑이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되며 기쁨이 되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것이 13장에서 말하는 그 땅을 기업이 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를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남아 있는 각자의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빌 3:12-14을 찾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가 세상에서 얻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일부만이라도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기 위한 일에 애쓴다면 우리의 신앙은 이리 냉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 뜨거워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누리는 일에 더 감격적이면 좋겠습니다. 그 은혜를 위해 이 저녁에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