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5:1-63,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 22.5.4, 박홍섭 목사
15장은 유다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아 얻은 기업의 경계와 성읍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가나안 땅 중에도 가장 중심부에 가장 많은 성읍이 포함된 지역을 가장 먼저 기업으로 받습니다. 실제적인 장자의 분깃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다는 장남이 아닙니다. 야곱의 12 아들 중 4번째입니다. 그런데 왜 유다가 장자처럼 가장 먼저 땅을 분배받을까요? 야곱이 마지막 예언적인 축복을 할 때 혈통 상의 장남인 르우벤이 아니라 요셉과 유다 지파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축복을 통해 요셉 지파에게는 장자의 명분을 주고 유다 지파에게는 실질적인 장자의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창 49:8-12절을 보십시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남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이 예언적 축복에 여러 의미가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 두드러진 의미는 메시아가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자기 백성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가 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앞서 확인한 바처럼 가나안 땅은 단순한 부동산의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받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지파인 유다 지파를 광야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할 때도 이스라엘 진영의 선봉에 서게 하셨으며 지금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배할 때도 가장 먼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고 있습니다. 1-12절은 그렇게 유다 지파가 얻은 땅의 동서남북 사방 경계가 어디인지를 말합니다.
남쪽 경계는 에돔 지경에서 신 광야에 이르는 지역이고, 동편 경계는 염해(아라바 해)입니다. 북편 경계는 요단강 끝 하구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으로 베냐민과 단 지파의 남편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편 경계는 대해와 그 해변입니다.
이렇게 유다 지파는 지정학적으로, 행정적, 상업적으로도 가장 중요하고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지정학적, 행정적, 상업적 의미보다 훨씬 중요한 영적 의미가 이 땅에 있습니다. 지금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은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40명의 왕이 도읍지로 정한 지역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차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이루실 구속 사역의 가장 중요한 무대가 여기 유다 지파가 받은 땅에 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유다 지파가 얻은 땅 안에서 탄생하시고 수난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에게 장차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을 위한 구속의 사역을 펼치실 무대가 되는 땅을 기업으로 주심으로 야곱을 통해 약속하신 예언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이어지는 13-19에는 14장에서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요청한 갈렙이 헤브론과 드빌을 어떻게 차지했는지를 조금 더 자세하게 부연해서 말해줍니다. 갈렙은 헤브론 인근의 드빌을 치기를 원하여 그곳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조하고 옷니엘이 드빌을 점령하여 악사를 아내로 얻습니다. 그렇게 도전과 응전을 통해 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중요한 기업이 되고, 악사는 갈렙에게 남방의 광야와 샘을 얻습니다.
마지막 20-62은 유다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성읍들의 이름과 목록들이 세부적으로 소개됩니다. 총 123개의 성읍들이 열거되는데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1-32은 남부에 있는 36개의 성읍으로 브엘세바가 중심입니다. 36개의 성읍이 열거되지만 32절에는 29개라고 밝힙니다. 실질적인 정착지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해석과 나중에 시므온 지파로 편입된 성읍을 빼서 그렇다는 해석이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릅니다. 33-47절은 평지에 있는 43개의 성읍으로 블레셋 국경이 중심입니다. 48-60절은 산지에 있는 38개의 성읍으로 헤브론이 중심이고, 61-62절은 광야에 있는 6개의 성읍으로 사해 서안이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이 이렇게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5장은 오늘 본문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여부스 사람들을 쫒아내지 못했다는 말로 끝이납니다.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예루살렘의 지리적 위치는 애매해서 유다 지파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두 지파의 경계선에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예루살렘 성은 공략하기 어려운데 그 성이 두 지파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니 서로 미루면서 합리화하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 지리적 이유와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결국 유다 지파는 이 시대에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지 못하였습니다.
실제로 사사 시대에 여부스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읍으로 간주 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9장을 보면 에브라임 산지 출신의 한 레위인이 자신의 첩과 종을 데리고 처가 베들레헴에서 자신의 집인 에브라임으로 가는 중 여부스에 가까웠을 때 날이 저뭅니다. 종이 레위인에게 여부스에 들어가서 유숙하자고 할 때 레위인이 반대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보십시오. 삿 19:11-12입니다.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여부스, 곧 예루살렘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이스라엘 사존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이라고 부릅니다. 아직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의 땅이 아닙니다. 이방 사람의 성읍입니다. 그럼, 앞으로 예루살렘을 무대로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뜻은 예루살렘, 곧 시온을 통해 그리스도가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시 2:6은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하였고, 시 14:7도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한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유다 지파의 실패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도 실패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유다 지파가 몰아내지 못한 예루살렘 주민들을 나중에 유다 지파에서 난 다윗이 쫓아내고 정복하게 하십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때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던 여부스 족속이 다윗에게 악의에 찬 조롱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여부스 성읍의 수로로 침투해서 여부스족이 살아가는 시온 산성을 빼앗고, 그 성을 다윗성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삼하 5:7).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그 시온성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셔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성취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통해 유다에게 한 메시아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신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갈렙과 옷니엘처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지 못하고 승리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불순종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고 끝내 당신의 약속과 계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여기에 오늘 15장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일상과 그 일상이 펼쳐지는 시간과 무대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입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허락된 일상은 무엇을 향하여 진전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기업으로 누리고 하나님을 영원한 생명으로 누리게 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보지 못하는 주님을 믿되,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자리,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얻는 자리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일상은 진전되고 있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연약하고 자주 넘어지고 실패해도 하나님은 끝내 당신의 목표와 약속과 계획을 신실하게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