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8:1-22, 우리에게 왕을 세워주소서. 24.2.14, 박홍섭 목사
사무엘이 늙어서 나이가 많아지자 그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로 다스릴 때 사무엘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공정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와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않으니 다른 나라와 같이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1-5).
이 요구의 핵심은 5절에 있는 열방과 같이 왕을 세워달라는 말에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눈에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사사체제보다 주변 이방 나라들의 정치체제가 더 마음에 들고 자신들은 그것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늙은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은 핑계에 불과하고 사실은 그런 의미입니다. 사무엘은 이들의 요구를 악하게 보았고, 하나님도 이들의 요구에 대해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고 탄식하십니다. 6-8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 도다” 얼핏 보기에 왕을 세워달라는 이들이 요구가 합당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요구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겼던 우상숭배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왕정 제도가 이스라엘의 생각과 달리 얼마나 그들을 힘들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라고 하십니다. 10-18절이 그 내용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왕정 제도는 자칫 독재 군주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크며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멍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막무가내로 왕을 원합니다. 왕으로 인해서 잘살 수만 있다면 그까짓 노예가 무슨 상관이냐고 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면서 자유 대신 배부름을 택하겠다고 사실상 애굽의 종살이하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들의 말을 들어줍니다.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들어주십니까? 왕을 구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불 신앙이라면 그것을 막으셔야 하는데 왜 허락을 하실까요? 19-20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지금 왕정체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들 앞서 싸워주신 것을 잊고 있습니다. 이미 그런 마음을 가진 그들에게 사무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왕만 있으면 우리도 열방처럼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마치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유혹하는 뱀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은 그때와 방불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실제 왕정체제로 살아가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구한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던 선택이었는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막으신다면 이스라엘은 끝까지 왕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허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는 이 내용이 오늘 우리와는 상관없을까요? 왕은 백성들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지도자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왕 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다스림으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 주변의 힘 있는 이방 나라들처럼 자신들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능력 있는 인간 왕을 원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너희가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단지 한 나라가 아니라 신약 교회의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한 나라가 아니라 교회로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적용해보십시오. 오늘 모든 교회가 힘 있고 유능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 우리의 현상과 거의 유사하지 않습니까?
한국 교회가 담임 목사를 청빙할때 무엇을 기준으로 합니까? 대부분은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따집니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부목사님들이나 성장의 노하우를 배워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을 모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말씀과 진리의 통치, 성경적인 신학, 인격적인 감화는 겉으로 내세우는 구호일 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실제로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전하는 목사가 아니라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더라도 교회를 성장시키고 크게 만들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그러면 안 된다. 너희들은 나를 버리려고 한다”라고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 결과 한때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뜨거운 맛을 보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로 가고 있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그 자리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막을 수 있습니다. 심판하시든지 아니면 더 잘 설명을 하시든지, 강요해서라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신다고요? 눅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몫을 달라고 해서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가 순순히 허락합니다. 말려도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가서 아버지가 준 재산을 다 털어먹고 배가 고파서 굶어 죽게 되자, “내 아버지의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내 아버지의 집에서는 일꾼들도 넉넉하게 사는데 나는 나와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돌아가자, 품꾼의 하나로 여겨도 좋으니 받아달라고 하고 돌아가자”라고 결심하고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돌아오는 아들을 뛰어나가 맞이합니다. 품꾼이 아니라 반지를 끼우고 옷을 입혀서 다시 아들의 지위와 신분을 회복시켜줍니다. 그렇다면 이 아버지는 왜 아들이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아들을 내보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게 정확히 오늘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에게 왕정 제도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으로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폭력으로 우리를 붙들어 맬 마음도 없습니다. 우리가 깨달을 때까지 시간과 기회를 주시고 때로는 우리의 미련한 고집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넘어지고 실패하고 다칠지 아시지만, 우리의 모든 실패와 후회를 통해 우리가 진심 어린 항복과 수납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것을 위해 “그래, 한번 네 생각대로 살아봐라”하시면서 실패할 시간과 눈물 흘릴 기회를 주십니다. 물론 그 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서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십니다. 그래도 미련한 고집을 부리면 허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는 삶과 그 삶의 적나라한 실상과 비참함을 한번 겪어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성도의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실패, 우리의 고집, 우리의 어리석음이 펼쳐지는 현장에서도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지켜보심과 돌보심과 붙드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실패와 좌절이 꼭 손해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로 인하여 승리할 때보다 더 깊고 넓은 자리로 이끌림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울지 않고 누가 더 깊은 자리로 갈 수 있습니까? 다만 웃음으로만 만들 수 없는 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후회와 실패와 눈물이 우리를 일으킬 때가 많았음을 기억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가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고 하시면서도 왕정 제도를 허락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주와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그 긴 시간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손 놓고 기다리지 않고 그 기간을 통하여 이방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중에 저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도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끄신 것처럼 은혜가 ‘왕 노릇’하여 남은 자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보내신 왕으로 믿는 주의 백성으로 만들어내실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날을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과 동행하시면서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듯 매일 새로운 하루를 여시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보다 진지하게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의 영광과 존엄과 기회와 명예를 우리의 남은 생애 안에 채워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보다 우리의 모든 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자로 만들어가시는 주의 은혜에 대해 항복하는 자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 믿음과 감사로 우리의 하루와 일상을 맡기신 자리를 사랑과 소망과 순종으로 지켜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