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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눅 3:21-22, 세례 받으신 예수님

작성자한우리|작성시간24.04.07|조회수280 목록 댓글 0

3:21-22, 세례 받으신 예수님, 24.4.7, 박홍섭 목사

 

세례요한이 헤롯의 불의를 지적하다가 옥에 갇힙니다(20). 요한이 옥에 갇히자 예수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요한의 투옥은 그의 사역을 끝내고 예수님을 등장시킨 전환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세례요한이 옥에 갇힌 후에 일어난 어떤 사건에 두지 않고 투옥 전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사건으로 기술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이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는 초자연적인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 예수님이 구약 시편 2:7과 이사야 42:1의 예언을 성취하는 메시아라고 확증해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확증하는 이런 현상이 왜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줄 때 나타납니까? 요한이 준 세례는 죄 사함의 세례,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는 요단강 부근 각처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3). 이 세례를 받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왔습니다. 무리가 나왔습니다(7). 세리들도 나왔습니다(12). 군인들도 나왔습니다(14). 그렇게 백성들이 다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러 그에게 나왔습니다(21).

 

여기가 이상한 점입니다. 메시아라면 의인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메시아가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누가복음은 이런 상황을 생략하지만, 마태복음은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3:13-15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은 성부와 성령과 동일 본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입니다. 그런데 왜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세례는 죄로 더러워진 인생을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의 의식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더럽혀지지 않는 깨끗한 분입니다.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순결한 분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할 분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풀어주실 분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당신이 내게로 나아오십니까?”라고 하면서 세례주기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네게 세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세례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대표하고, 대신하기 위하여 우리와 같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죄인 된 우리의 자리까지 당신을 낮추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범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통해 우리와 같이 되심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의 대표로 보여주는 모범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다고요? 그렇게 우리와 같이 되어야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죄 아래, 율법 아래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를 대표하는 둘째 아담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다음 주에 자세하게 보겠지만, 23절부터 이어지는 예수의 족보가 이를 증언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지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지만,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그가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의 대표로 세우신 둘째 아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게 둘째 아담 되신 예수님이 이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 죄인들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때 하늘에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공식적으로 확증해주십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예수님 위에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는 성부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인간의 죄로 닫힌 하늘이 예수님 때문에 열리고 있습니다. 이미 성령으로 잉태되신 주님에게 다시 가시적으로 성령이 임하여 이제부터 시작하는 그의 모든 사역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우리와 같이 되셔서 하는 모든 사역의 결국이 장차 성령으로 세례를 주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시며 거룩하게 성화시키실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나타난 현상은 공관복음이 다 기록하고 있지만, 유독 누가만 다르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3:16-17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9-11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태와 마가는 예순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올 때 바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21-22절을 다시 봅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누가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고 성부의 소리가 들리는 이 현상을 기도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다고 합니다. 기도하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합니다. 기도하실 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각시킵니다. 주님이 당신의 신성으로만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죠. 기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는 말은 철저하게 우리와 같은 인성을 발동하여 성부와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가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기도 없이 우리의 구원 사역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공생애를 시작할 때도 기도로 시작하셨고, 사역 내내 기도하셨습니다. 5:16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하고, 6:12은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11:1은 제자들이 기도의 도전을 받고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의 생애 마지막 순간도 기도로 마무리 하십니다. 22:44은 겟세마네 동산의 간절한 기도를 볼 수 있고, 23:46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돌아가실 때도 큰 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운명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가 예수님을 우리의 새로운 대표인 둘째 아담으로 설명하면서 유독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도 주님처럼 기도하면서 하늘과 연결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 나타난 현상과 비슷한 현상이 변화 산에서도 있었습니다. 이때도 누가는 기도를 강조합니다. 17:1-2, 9:2을 보십시오. 그냥 변화 산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화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9:28-29은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기도를 강조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렐 보크의 말처럼 예수님의 삶은 기도로 범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도로 범벅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꼭 종교적 형태를 띠지 않더라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 삶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사랑하고 구하는 사람이 될 때 하늘이 열립니다. 그런 사람에게 열린 하늘로 성령의 감화와 능력과 힘이 주어집니다. 기도 없이 사랑할 수 있던가요? 기도 없이 사역할 수 있던가요? 기도 없이 사명을 감당하고 승리할 수 있던가요? 없습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수 없고 기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펼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11:9-13을 보십시오. 언제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가 주어집니까?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기도할 때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자신에게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기도의 삶으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죠. 왜 하필 비둘기의 형체로 임했을까요? 몇 가지 해석이 있지만, 가장 적합한 해석은 8:10-11 연결한 해석입니다. 성경에서 비둘기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면이 노아의 홍수 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세상이 물에 잠겨 40일이 지났을 때 노아는 땅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방주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날립니다.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날리자 아직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옵니다. 칠 일 후 다시 비둘기를 날려보내자 이번에는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

 

홍수 심판 후 새로운 삶의 시작을 비둘기가 보여주었습니다. 그처럼 이제부터 시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새로운 생명의 역사로 나타날 것을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심으로 보여주십니다.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하늘이 열리고 그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인이 의인이 되고 사탄의 종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생명의 역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이런 새 생명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도 기도할 때 나타난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기도로 하늘의 열린 문을 두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성령의 은혜를 받고 죄를 이기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불의하고 불법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 된 삶, 사랑과 공의의 삶을 기도로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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