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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눅 21:12-24,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작성자한우리|작성시간26.06.07|조회수29 목록 댓글 0

21:12-24,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26.6.7, 박홍섭 목사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의 위용에 감탄했을 때, 주님은 강도의 소굴이 되어 버린 성전은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도록 무너져야 할 완전한 심판과 파괴의 대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란 제자들이 심판의 시기와 징조를 물었고, 주님은 성전 파괴를 역사의 마지막 심판과 묶어서 종말의 징조로 대답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전쟁과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근과 지진과 전염병과 천재지변, 매일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일상 자체가 종말의 뚜렷한 징조입니다. 지금 우리는 매일 종말의 징조를 보고 듣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특정한 시기를 말하고 때가 가까이 왔다면서 성도들의 믿음과 영혼을 착취하는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을 분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난리와 소요의 소문에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종말의 징조를 알려주신 주님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이루어질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에 대한 징조를 말씀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예루살렘 멸망의 징조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당하는 박해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육체적 신체적 박해를 당할 것입니다. “손을 대어 박해하며가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회당과 옥에 넘겨질 것입니다. 회당은 유대교의 종교 재판 장소이고, 옥은 시민 사회의 처벌 장소이니 종교적인 박해와 사회적인 박해를 뜻합니다.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려가는 정치적 박해도 예고하십니다. 나아가 16-17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제자들은 신체적,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박해만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가족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사람에게 주를 믿는 믿음 때문에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주님이 이렇게 박해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이 가는 길을 가야 하므로 스승이 받을 핍박과 박해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누가 주님과 제자들을 이렇게 박해합니까? 로마가 대변하는 세상입니다. 로마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박해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누가복음의 후속편인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에게 육체적 신체적 박해, 종교적, 사회적 박해, 정치적 박해, 가족과 친척들에게 받는 박해, 포괄적 박해를 가했던 대상이 로마 제국만 아니라 유대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네로 황제 이후 로마의 박해가 광범위하고 가혹했지만, 유대인들의 박해도 못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당하는 박해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기회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13절입니다.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제자들은 잡혀가고 끌려가고 심문당할 때 자신들이 주님을 따르는 주의 제자임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당했던 박해를 자신들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주님은 이들이 잡혀서 끌려가 심문당할 때 무엇을 변명하고 어떻게 말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할 말과 지혜를 주셔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너희를 지켜줄 것이고, 너희가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때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고 하십니다. 14-19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주님의 이 약속을 믿는다면 제자들이 박해 중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인내하면서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영혼과 운명이 주님의 보호 아래 있다면 주님과 제자들을 박해한 예루살렘의 운명은 어떻게 됩니까? 20-24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로마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힐 것입니다. 22절은 이날이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라고 하십니다. 이날에 쏟아질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철저하냐면 예루살렘 성읍에 있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은 화가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에 있는 자들은 모두 칼날에 죽임을 당하고 이방에 사로잡혀 가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이 무서운 예고는 약 40년 후 주후 70년에 디도(Titus)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 현실로 성취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무너집니까? 왜 그토록 화려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파괴됩니까? 로마 군대가 강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어서입니다. 참 성전으로 오신 주님을 거절하고 배척했으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하면서도 언약 백성으로 살지 않고 죄를 밥 먹듯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전을 자랑하고 의지했지만 참 성전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박해하고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그리고 성전의 역사를 보십시오. 이들이 부르심의 소망대로 살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솔로몬 성전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망하게 했습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났을 때 돌아와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을 허락하시고 다시 언약 백성으로 살 수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짓밟고 다시 범죄 했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떠났고 다시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인 말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 중에 이 성전의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할 정도로 이들의 신앙은 부패하고 타락해 버렸습니다.

 

중간기의 긴 침묵이 끝나고 이제 때가 되어 제2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참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성전은 여전히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었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부패한 헤롯 성전과 타락한 예배를 끝내시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성전 삼기 위해, 그들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십자가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이 화려한 성전에 감탄하지 마라.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내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이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징벌할 것이다. 로마 군대를 통해 성전 문을 닫을 것이다. 그 전에 너희는 내가 받을 박해를 똑같이 받을 것이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들이 받는 박해는 오히려 너희가 징벌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제자임을 증거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너희들이 잡혀가도 할 말을 준비해 주겠고 너희가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수 있도록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니 박해 중에도 참 성전인 나를 믿고 나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잘 지어져 가라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부패한 건물 성전은 죄로 인해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버티지 못합니다. 타락한 건물 성전에서 드리는 흠 있고 점 있는 제물의 제사로는 우리의 죄 위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대항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드리는 헛된 예배로는 하나님의 징벌을 버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와 신앙생활의 근거지가 되었던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셨습니다. 똑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는 헤롯 성전도 징벌로 무너뜨리고 멸망시킬 것입니다. 누가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견딜 수 있습니까?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 단번에 드린 십자가의 제사로 완성하신 속죄를 믿고 그분을 따르고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그들만 죄로 인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종말의 징조를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묶어서 말씀하십니까? 외형적인 건물 성전의 화려함에 감탄하고 건물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형식에 취해서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종말은 심판의 날, 징벌의 날인 동시에 구원의 날입니다. 누가 이 종말의 날, 징벌의 날에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모시고 박해 중에도 인내로 자기 영혼을 얻기까지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상하지 않도록 우리를 편드시고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안전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전을 이토록 무참하게 파괴시킵니까? 하나님이 단지 우리의 소원이나 들어주고 필요나 채워주는 수단이 아니며 그런 신앙을 결코 용납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의 필요에 응답하고 우리의 소원을 만족시키는 하나님이 되기를 거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척척 잘되게 해서 봐라,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된다라는 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훨씬 큰 것, 주님과 함께 기꺼이 박해를 당하고, 수모를 견디며 우리의 전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왜 주님은 제자를 사랑하시면서도 박해 가운데 살게 하십니까? 세상이 얼마나 하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헛되고 거짓된 것을 부추기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운데 살면서 무엇이 흔들리지 않을 영원한 진리와 생명인지를 생각하여 인내로 우리 영혼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다시 와서 온 세상을 징벌할 그날이 올 때까지 인내로 우리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는 박해 중에 인내하면서 생명으로 자라났습니다. 1세기 사도들의 피와 인내가 초대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2세기 3세기 순교자들의 피와 인내가 로마 제국 안에서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자들과 위그노들의 피와 인내가 개혁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인내한 신앙의 선조들, 한국 전쟁 때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신앙을 따라 남으로 내려온 선배들의 인내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받는 작은 손해와 핍박과 불이익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인내할 때 그 인내가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기회가 되고 씨앗이 됩니다.

 

종말의 때에 인내가 중요합니다. 인내라는 말의 원어는 아래에 머문다라는 뜻입니다. 인내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견디는 시간이 아닙니다. 박해 아래에서도,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믿음의 자리를 지키며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는 능동적 신실함이 인내입니다. 박해를 받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명예를 잃을 수 있고, 재산과 관계,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9:24),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인내한 자만이 자기 영혼을 얻습니다. 인내한 자만이 박해를 통과할 수 있고 박해를 통과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5:3-4을 찾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환난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가 종말의 참된 소망을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면서도 박해와 환난을 허락하시고 그 고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고 소망을 만들어가십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환난과 박해와 미움과 고난이 있는 이유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인내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하는 작은 박해가 있으며 그 박해 중에도 견디는 인내가 있습니까? 한국 오픈도어 선교회가 20261월에 발표한 ‘2026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신앙 때문에 살해된 형제자매가 4,849명에 이릅니다. 북한은 23년째 박해지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근래 한 신자 그룹이 비밀리에 모여 예배드리다 발각되어 그룹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도 보고되었습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폭력이 급증하여 지난 한 해 살해된 형제자매의 93%가 그 지역에서 발생했습니다. 오늘날 박해의 새로운 양상은 인터넷과 디지털 통제를 통한 '조용한 압박'입니다. 알제리에서는 기독교 페이스북 그룹이 폐쇄되어 신자들이 신앙공동체와의 연결을 잃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박해의 모습은 바뀌어도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박해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그들이 본문이 예고했던 박해를 오늘도 살아 내면서 인내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의 인내가 그 땅에 복음의 씨앗이 되도록 기도하고, 우리도 그들의 인내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은혜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면 우리가 박해 가운데 인내한 그 모든 시간이 영원한 영광의 보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비록 오늘이 고난과 박해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인내로 영혼을 얻기까지 굳게 서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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