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서론, 24.3.17, 박홍섭 목사
1. 신앙고백서의 의미
‘신앙고백’(confession of faith)은 개인, 단체, 교회 등이 교리와 신념을 공적으로 선언하고 밝힐 의도로 작성한 것으로 성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어 줍니다. 역사적으로 참 교회들은 성경의 내용을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요약한 신앙고백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거짓 교회와 자신을 분리했으며 거짓 교회들과 치열한 영적 전투를 수행해왔습니다. 만약 주의 몸 된 교회가 같은 믿음으로 부르심의 한 소망을 향하여 신앙을 경주하고 있다면 반드시 신앙고백의 일치를 확인하고 그 일치 속에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나가야 합니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오늘부터 함께 공부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한국과 영미권 장로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표준문서로 17세기 청교도 신학자들이 물려준 소중한 유산입니다. 장로교회는 직분자를 임직할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이 고백서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지침서인 대, 소요리 문답서를 성경에 일치하는 표준문서와 신앙생활의 표준으로 받아들인다고 서약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서약과 달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 문답, 소요리 문답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배우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신앙생활의 표준을 잃어버리고 너무나도 쉽게 신사도 운동과 다른 많은 이단적인 가르침과 교회 성장주의에 함몰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시급하다 할 것입니다.
3. 역사적 배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소요리 문답의 가치를 알려면 먼저 어떻게 이 문서들이 만들어졌는지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643년 7월 1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하원의원 20명, 상원의원 10명, 121명의 잉글랜드 성직자와 8명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대표단(목사 5명, 장로 3명)이 참여한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 총회가 열리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당시 영국을 다스렸던 찰스 1세는 영국교회를 로마 천주교 친화적 방향으로 이끌어 갔으며, ‘주교 없이는 왕도 없다’라는 주장을 하며 주교제도를 통해 교회에 대한 왕권의 통치권을 공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나아가 찰스 1세는 장로교회였던 스코틀랜드교회가 잉글랜드 국 교회와 같은 예배 형식을 따라 예배드리도록 스코틀랜드판 ‘공동기도서’를 만들어 시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1637년 7월 에딘버러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났으며 스코틀랜드교회는 1638년 12월에 글래스고우에서 총회를 소집하여 ‘공동기도서’의 도입을 거부하며 주교제도를 폐지하고 장로교회에 어긋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국민언약’을 제정합니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를 진압하기 위하여 군대를 일으켰으나 준비의 부족과 잉글랜드 의회의 비협조로 오히려 스코틀랜드에 패퇴하고 맙니다. 찰스 1세는 막대한 전비 마련을 위해 의회를 소집하여 징세하려 했으나 의회는 거부합니다. 이에 찰스 1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스코틀랜드 언약파 군대와 다시 싸우지만 크게 패합니다. 스코틀랜드 군대는 국경을 넘어 잉글랜드로 진격해 왔으며, 찰스 1세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잉글랜드 의회를 소집하라는 스코틀랜드 군대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하여 1640년 11월에 의회가 소집됩니다. 장기의회는 왕과 대립한 끝에 1642년에 왕당파와 의회파로 나뉘어 약 7년간에 걸친 내전을 치릅니다. 전세가 불리하였던 의회파는 전쟁 초기에 스코틀랜드 언약파에게 군사적 협조를 요청하고 스코틀랜드는 이 요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찰스의 강압으로부터 스코틀랜드교회의 독립을 영구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두 나라의 교회를 가장 성경적인 개혁교회로 세울 것을 요구하고 동맹을 맺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갑니다.
의회파는 이 전쟁의 와중에 의회에 대한 왕권을 약화시키고 잉글랜드교회를 보다 철저하게 개혁하기 위하여 교직자들의 총회를 소집할 것을 찰스 1세에게 요구합니다. 왕이 이를 다섯 번이나 거부하자 의회는 왕의 재가를 받지 않은 채 상원의 동의를 얻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헨리 7세 채플에서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합니다. 이때 모인 총대의 수가 앞서 소개한 대로 모두 151명입니다. 의회는 당시 잉글랜드교회를 지탱하고 있었던 신조, 교리문답, 주교제, 공동기도서를 개정하거나 새로 작성하라는 과제를 부여하고, 총회는 첫 회의가 열렸던 1643년 7월 1일부터 마지막 회의가 있었던 1649년 2월 22일까지 무려 5년 6개월 21일이라는 기간 동안 1,163번에 이르는 회의들을 거쳐 ‘예배 모범’(1645년), ‘장로회 교회 정치 규범’(1645년), ‘신앙고백서’(1646년), 그리고 ‘대,소요리 문답’(1648년) 등의 다섯 가지 신앙 표준문서를 만듭니다.
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가치
종교개혁 당시 만들어진 수많은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 한 사람이거나 소수의 위원에 의해 작성되었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표준문서들은 처음부터 교회의 회의와 151명이나 되는 회원들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처음에 총대들은 의회가 부여한 과제대로 영국 성공회가 채택한 ‘39개 신조’(1563)를 개정하려고 의도했습니다. 하지만 개정 작업 중에 영국 국교회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만들 필요를 절감하여 1,163회에 걸친 회의와 기도(금식)를 통해, 5개의 표준문서(Westminster Standards)를 작성합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이렇게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수정 없이 전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잉글랜드는 20장과 24장의 일부, 30장과 31장 전부를 삭제하고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7세기 영국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적인 표준으로 삼는 신앙의 선배들이 올바른 교회를 확립하고자 역사적 몸부림 끝에 만들어진 소중한 유산입니다. 17세기 영국과 유럽은 로마 가톨릭을 비롯해서 아르미니우스 주의, 재세례파, 도덕폐기론, 열광주의, 에라스투스주의, 퀘이커교도, 소키누스주의등 수많은 비성경적 사상이 난무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 개혁주의 신학을 정립하고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은총이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모든 과정에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오늘 우리도 이 표준문서들을 잘 배우고 가르쳐 그때 못지않게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교회가 붙들어야 할 신앙의 고백들을 잘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 이후 125년 동안의 개신교 신학이 집대성되어 있으며, 17세기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적실한 신학과 신앙 명제들을 조리 있고 명확한 언어로 서술한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통틀어 두루 살펴서 주제별로 정리해서 묶은 이 고백서를 공부하면 성경 전체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크다 할 것입니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표준문서들의 영향
권력의 위협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성경을 통해 참 신앙과 교회가 무엇인지를 밝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은 전 세계의 장로교회와 개혁주의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성 당시에는 장로교회는 물론이고 회중주의자들, 개혁파 침례주의자들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받아들였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회중주의 청교도들도 1648년에 ‘케임브리지 강령’을 발표해서 장로교 정치 부분만 빼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나머지 표준문서를 받아들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가 하면 영국과 미국의 유수한 대학교가 이 문서들의 신앙고백 정신을 따라서 세워지고 교육했던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1800년대 중순까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1413), 글래스고대학교(1450), 애버딘대학교(1495), 그리고 에든버러대학교(1583)의 모든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야 했습니다.하지만 그 이후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이 대학교들의 신학 교수 임명에 관여하지 않게 되자, 교회와 신학교는 사실상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청교도의 영향을 받아 1636년에 설립된 미국 최초의 대학교인 하버드대학교는 1642년 학칙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삶과 학문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음(요 17:3).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주님의 지혜를 구해야 함(잠 2:2-3). 매일 두 번씩 성경을 읽음으로써 언어와 논리 그리고 실천적인 영적 진리에 있어 성경의 진리를 능숙하게 증거할 수 있도록 준비함(시 119:130).”또한, 목회자 양성을 위해 하버드 출신 10명의 목회자가 세운 예일대학교(1701)의 규칙도 비슷했습니다. “모든 교수는 성경에 따라 경건하고 흠 없이 살아야 함, 진리의 원천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야 함, 공사 간에 종교적 의무를 부지런히 수행해야 함, 학장이나 부학장의 부재 시에 대학 채플실에서 교수 중 한 사람이 매일 아침과 저녁에 계속 (대표) 기도해야 함, 그리고 신학 강연이나 종교 행사가 없는 한 성경 한 장이나 적당한 한 단락을 읽어야 함.”
그러나 1729년 필라델피아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모든 목사가 따라야 할 표준문서로 채택했던 미국교회는 1788년에 ‘교회와 관련한 정부의 의무’를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삭제 내지 수정했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명시한 부분도 삭제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1887년에는 제24장 결혼과 이혼의 제4절 일부 내용(근친결혼)을 삭제했고, 1903년에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부각하고 유기교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수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제16장 제7절 중생하지 않는 자의 선행과 제22장 제3절 맹세, 제25장 제6절 로마교황의 본문 변경 및 개정도 이루어졌고, 제34장 성령과 제35장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과 선교를 추가했습니다.
한국장로교회는 1904년 독노회에서 인도 장로교회의 12 신조를 채택합니다. 그 이후 1925년에 배위량 선교사가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교리의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장로교회가 갈라지고 난 후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은 1963년, 통합은 1968년, 대신은 1970년, 고신은 1972년, 합신과 백석은 1981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예배모범과 정치를 교단의 표준문서로 채택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합동 교단은 미국 장로교회가 수정한 부분은 받지 않고 원래의 신앙고백서대로 33장까지만 받습니다.
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구조
이렇게 귀한 가치를 지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장부터 33장까지 이루어져 있고 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장/서론(성경)
2-5장/신론(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 작정, 창조, 섭리)
6-7장, 9장/인간론(인간의 타락, 하나님의 언약, 인간의 자유의지)
8장/기독론(중보자 그리스도)
10-15, 17-18장/구원론
16, 19-24장/성도의 생활
25-31장/교회론
32-33장/종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