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신을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시집 『소주병』 2004
1960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6년 동서문학에 <저녁>등 5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등
미안하다, 수캐
수캐를 향나무 아래 매어놓고 키운 적이 있다
쇠줄에 묶였으나 나처럼 잘 생긴 개였다
나는 창문을 열고 그 개를 가끔 바라보았다
그 개도 나를 멀뚱히 쳐다보며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 묶인 삶을 안쓰러워 하였다
언젠가 한밤중, 창이 너무 밝아 커튼을 올렸다가
달빛 아래 눈부신 광경을 보았다
희고 예쁜 암캐가 와서 그의 엉덩이를 맞대고 있었다
화려한 창조 작업의 황홀경, 나는 방해가 될까봐
얼른 소리를 죽여 커튼을 내렸다
엄마 아빠의 그것을 본 것처럼 미안했다
그 개의 사생활을 그 개의 비밀을 지켜 주고 싶었고
그 암캐가 향나무 아래로 자주 오길 기대했다
암캐는 안보이고, 어느 날부터 수캐가 울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개가 울어 재수없다고 항의했다
나는 개장수에게 전화하라고 아내에게 화를 냈다
헌 군화를 신은 개장수가 오토바이르 타고 왔다
개장수는 철근으로 짠 상자를 마당에 내려놓았고
다황한 개는 오줌을 질질거리며 주저앉았다
개장수는 군홧발로 마구차며 좁은 철창에 개를 구겨넣었다
한 두 번 낑낑대다 발길질에 항복하던 슬픈 개
나는 공포에 가득 찬 개의 눈길을 피했다
폭력 앞에 비국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
개는 오토바이에 실려 짐짝처럼 골목을 빠져나갔고
나는 절망의 눈초리가 퍼붓던 개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얼마 후,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던 강아지떼를 보았다
아비 없이 쓰게리통을 뒤져서 먹이를 구하는
설설대는 가아지드을 거느린 슬픈 암캐
나는 그 암캐가 향나무 아래로 몇 번을 찾아왔었는지
팔려간 수캐에게 몇 번째 암캐였는지 모른다
수캐는 나에게 그걸 말하지 않았고 나는
알았어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달빛을 잘 받는 목련나무 아래 수캐를 매어놓았더라면
그가 더 황홀한 일생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미안하다, 평생을 묶여 살다 도살장으로 실려 간 수캐
별국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온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수퇘지
양돈장에서 얻어온 삼겹살을 굽는데
헌 구두를 잘라 구운 가죽맛이다
젖꼭지가 붙어있는 걸 보니
누린내 나는 수퇘지 뱃가죽이다
"어머니,
맛대가리가 하나도 없어요."
"정을 너무 많이 넣은 돼지라 그래."
마당가에 나와 오줌을 누면서
뱃가죽을 자꾸 만져본다
가까운 날 무덤 속 미생물들은
내 뱃가죽이 질기다고 투덜거릴 것이다
걸림돌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 경영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 되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돼지
밥그릇에 평생 입을 쳐박고 사느라
죽는 날까지 땅만 보고 사는 짐승이 있다
살아서 고개를 쳐들어본 적이 없는 이 짐승은
손발이 묶여 넘어져 죽는 날에야 하늘을 처음 본다
목에 칼이 박혀 쿨럭쿨럭 피를 쏟아내면서도
저게 하늘이구나 하고 웃고 있는 짐승
평생 구수에 입을 처박고 산 자신이 우스워
목이 잘린 뒤에도 마냥 웃고만 있는 것이다
친구 사무식 개소식 날
고사상 위에 앉아있는 삶은 돼지머리에 절을 하고
돌아섰다가는 자꾸 되돌아보는
웃음부처
계간 『시와 세계』 2010년 가을호
지족해협에서
—유배일기 1
갯가 푸조나무 아래서 가을단풍을 등불 삼아
향교에서 빌려온 『주자어류』를 읽다가 내려놓고
통무를 넣고 끓인 물메기국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해안을 한참 걸어가 만난 곳이 지족해협이라던가
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굴과 게와 조개와 멍게를 건지고
갈치와 전어와 쭈꾸미를 잡는 노인들을 만나
이곳 풍물을 묻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갈대를 엮어 올린 낮은 지붕에는
삶은 멸치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닮았더군요
아하, 이곳에서는 멸치를 미르치라 부른다는데
용을 미르라고 부르니 미르치는 용의 새끼가 아닐는지요
미르라고 부르는 은하수 또한
이곳 바다에서 올라간 멸치 떼가 아닐는지요
참나무 말뚝을 박은 죽방렴 아래에서는
남정네들이 흙탕물에 고인 멸치를 퍼 담고 있었습니다
흙탕물 바가지에 담긴 멸치들을 보면서
인간의 영욕이라는 것이 밀물 썰물과 다르지 않고
정쟁(政爭)에서 화를 당하는 것은 빠른 물살을 만나
죽방렴에 갇히는 재앙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삶기고 말라가는 지붕 위의 멸치와 다름이 없는 이 몸은
남해의 물을 다 기울여도 씻지 못할 누명이거늘*
오늘 밤,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그리울 뿐입니다.
*『사씨남정기』구절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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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저녁
요즘 깎두기 모서리가 삐뚤빼뚤하고
오이무침 두께가 들쑥날쑥입니다.
어제는 양파를 썰다가 손을 베었는데
손끝이 아니라 가슴이 아렸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묵은 무를 썰다가
구멍이 숭숭한 내 몸을 보았습니다.
저녁 밥상에 국그릇을 올리는데
남편이 또 반찬 투정을 하더군요.
“바람 든 것들은 못써, 맛없으니 버려!”
화들짝 놀란 나는 국을 발등에 쏟았지요.
넘지 못할 곳을 넘어 다니다보니
손발이 이렇게 험해지나봅니다.
화장대 앞에서 연고를 바르다가 문득
집을 나갔던 엄마를 생각하였습니다.
도마소리가 유난히 엇박자 불협화음이었던
제 나이쯤이었을 때 엄마의 저녁을.
파혼
작년엔 홍매 아래서
붉은 얼굴이 다정했고요
올해는 청매가 환해
흰 이마가 아름다웠어요
봄바람에 매화 흩날리기 전
당신을 파혼시키러 가겠습니다
이런 일도 먼 후일엔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지나는
한 점 눈발이겠지요.
계간 『문학청춘』 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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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한 채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예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에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나무문살 꽃무늬단청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얼굴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서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수종사 풍경
양수강이 봄물을 퍼 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겨울 산수유 열매
콩새 부부가
산수유나무 가지에 양말을 벗고 앉아서
빨간 열매를 찢어먹고 있다
발이 시린지 자주 가지를 옮겨다닌다
나뭇가지 하나를
가는 발 네 개가 꼭
붙잡을 때도 좋아 보이지만
열매 하나를 놓고 같이 찢을 때가
가장 보기에 좋다
하늘도 보기에 좋은지
흰 눈을 따뜻하게 뿌려주고
산수유나무 가지도
가는 몸을 흔들어 인사한다
잠시 콩새 부부는 가지를 떠나고
그 자리에 흰눈이
가는 가지를 꼭 붙잡고 앉는다
콩새 부부를 기다리는 사이
산수유나무 열매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고기리
어느 해 여름 고기리 계곡에서
빗소리가 도닥도닥 내리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빈 하늘에서 물푸레나무 잎으로
도!
하고 내리면 물푸레나무 잎에서 생강나무 잎으로
도!
하고 내리던, 다시 생강나무 잎에서 한 여자 얼굴로
도!
하고 내리면 한 여자의 얼굴을 만지던 빗방울이
닥!
하고 천수관음의 손인 듯 나를 도닥거리던
고기리 이후 빗방울은 유리창에 도닥도닥 부딪친다
우산 위에도 도닥도닥 내리고
어깨 위를 도닥도닥 두드린다
고기리 이후 내 비의 역사는 새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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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인터뷰
시인, 공광규 동문(국어국문학과 졸업)을 만나다!
등록일2020-05-12작성자사이트매니저조회수992
※ 인터뷰 기사는 동국 커뮤니티 Vol.15(2014년 겨울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공광규 동문은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 하고,
햇살을 맞으며 ‘따뜻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손을 보며 ‘손가락 염주’를 떠올리는,
그런 시인입니다.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요?
문학도를 꿈꿨고, 고전(古典)들을 읽으며 사색하고
세상을 깨우쳤습니다.
주어진 삶에 치열하게 맞닥뜨렸으며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랑받는 시를 썼고, 많은 이들이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공광규 동문은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 하고,
햇살을 맞으며 ‘따뜻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손을 보며 ‘손가락 염주’를 떠올리는, 그런 시인입니다.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요?
문학도를 꿈꿨고, 고전(古典)들을 읽으며 사색하고 세상을 깨우쳤습니다.
주어진 삶에 치열하게 맞닥뜨렸으며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랑받는 시를 썼고, 많은 이들이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공광규 동문은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 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가 있으며,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구름> 등을 펴냈습니다. 신라문학대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동국문학상, 김만중문학상,현대불교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을 받았으며, ‘201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에 선정되었습니다.
문학을 하고 싶었어요.
학교는 스물네 살에 입학했습니다.국립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포항제철에 취직을 해서 제철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아무래도 다른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학을 한 것입니다. 공장생활을 해봤으니, 가능하면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국문과에 입학한 것이죠.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와는 지리적 운명으로 만났습니다.직장과 가까운 포항에 살고 있었고, 동국대는 문학명문이기도 했죠. 학교생활은 동국문학회 활동을 중심으로 했어요. 방학 때 풍기 희방사와 영천 은해사에서 여름 창작교실을 했던 기억이 지금까지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대학생활 중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을 했습니다. 첫 시집도 졸업 무렵 가을에 냈고요.동국대라는 문학 전통과 분위기 때문에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은 현실이었죠
졸업 이후에는 국문과 고(故) 이내수 교수님이 남산에 있는 불교재단에 추천해주셔서 월간지 편집기자 일을 시작했습니다.이후 충무로에 있는 홍보대행 회사로 옮겨서 일을 했는데,거기는 너무 바빠서 개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공기업 홍보실에 시험을 쳐서 옮겼습니다. 그런데 재학 중 낸 첫 시집이 현실 부정적이고 재학 중에 반사회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해직이 되었습니다. 장장 2년 8개월간 복직투쟁을 했어요. 십수 년이 지나 정권이 바뀌어 민주화 운동 관련 명예 회복이 되었습니다. 보상위원회에서 복직 권고를 했지만 다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상급단체노동조합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었고, 문단 활동도 한창이었죠. 문예 창작 박사과정도 진행 중이었고요.치열한 시간 속에서도 문학 활동은 계속 이어왔습니다. 지금껏 시집도 6권 내고 연구서와 평론집을 내면서 문단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작가 회의 사무총장으로 2년간 활동하였고, 올해 임기를 마쳤습니다.
고전(古典)이 원동력이에요
제 문학의 원동력은 학교 도서관의 수많은 책과 자료들입니다. 학창시절, 옛날 신문이나 잡지 등 영인본(影印本)을 보면서 남이 못 보는 자료들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 금서(禁書)들을 읽고 베껴 쓰고, 나름대로 역사와 사회를 보는 방법도 깨달았어요.그래서 <마르크스>를 아직도 끌고 다니고,이때 읽을 수 없었던 정지용의 ‘시’를 만나 몰래 베껴 쓰면서 시 공부를 했어요. <삼국유사>도 관심 있게 보고 유적들을 많이 찾아다녔어요.무엇보다 시가 깊어진 비결은 학교에서 불교를 만난 것입니다. 입학 때 나누어준 <불교성전>을 지금도 책상 오른쪽 책꽂이에 두고 보고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고전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결국은 불교와 고전을 우려먹으며 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무조건 경주 바닥을 돌아다녔으면 해요. <삼국유사>를 들고요. 나중에 큰 재산이 될 거니까요.
‘시’로 소통합니다
좋은 시란 감동을 주는 시라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쉬워야 되고, 잘 읽혀야 되고, 재미있고 의미 있어야 되고요. 그런데 그런 시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려운 시는 시인이 표현력이 부족해서 잘못 쓴 시일 경우가 많아요.그래서 저는 손에서 책과 시를 놓지 않으며 열심히 공부합니다. 물론, 앞으로 좋은 시를 쓰고 싶어요. 위대한 시를 쓰면 더 좋고요. 책도 열심히 내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려 합니다. 콘서트를 하거나 낭독회를 하는 것도 이런 소통을 위한 것이죠. 제가 ‘시’를 통해 소통하듯 학생들도 자기의 전공을 통해 세상과 만났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전공을 확실히 장악해야겠죠. 전공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집중하세요. 그러면 꼭 어떤 스펙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무조건 경주 바닥을 돌아다녔으면 해요.
<삼국유사>를 들고요. 나중에 큰 재산이 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