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제가 새한철학회58집에 실은 논문입니다. 허접하지만.. 그래도 심사통과한 논문이니까 올려봤어요~ 이번 논문에서 총 세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첫번째는 거짓말쟁이 역설입니다.
이건 논리학문제이지만 수학의 기초랑 연관된 문제니깐 재밌게 읽어주세요ㅎ
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58집 2009․제4권
거짓말쟁이 역설의 성립불가능성에 관한 연구
한계^^;
[한글 요약]
본 논문의 목적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메니데스(Epimenides)가 제기하고 러셀(B. Russel)이 재발견한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있다. 보통 우리는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로부터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함을 순차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하지만 본 논문에선 다소 다른 방향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접근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어떤 한 전제의 인정이 배중률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가정하에 그러한 역설을 발생시키는 그 전제의 논리적 형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역으로 추론해 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렇게 추론된 전제가 논리학의 모순율을 어기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주제분야 : 논리학, 수리철학
주 제 어 : 타르스키, 거짓말쟁이 역설, 배중률, 모순율
1. 서론
좁은 의미로 논리학에서 역설이란 ‘전제나 추론의 과정에 무리가 없음에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결론들이 도출되는 경우’를 일컫는다.1) 고래로 많은 역설이 있어왔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의 이름이 붙은 에피메니데스 역설 만큼 많이 다루어진 역설도 드물 것이다.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 역설(The Liar Paradox)2)라고 한다. 사실 거짓말쟁이 역설을 처음으로 온전한 역설의 형태로 제시한 사람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에우불리데스(Eubulides)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남자가 자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한말은 참인가? 거짓인가?”3)
이같은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하여 20세기 초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러셀, 타르스키, 크립키 등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있어왔지만 아직 명확한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못했다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를 거부함으로써 역설을 해결하고자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역설에 도달하는 추론과정을 거부함으로써 거짓말쟁이 역설을 해결하려 하였지만 그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반박 불가능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이러한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해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았다. 보통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논의는 하나의 전제로부터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함을 순차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시작된다. 하지만 본 논의에서 필자는 만약 어떤 한 전제에 의해서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한다면 그 거짓말쟁이 역설을 발생하게끔 하는 전제의 논리적 형태는 무엇이 될 것인가를 역으로 추론해 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추론된 전제가 논리학의 모순율과 상충됨을 보임으로써 거짓말쟁이 역설이 사실상 성립가능하지 않음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해 논의한 이후 필자는 거짓말쟁이 역설과 근본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결정불능명제’와 러셀(B. Russel)의 ‘집합론 역설’에 대해서도 그 성립불가능성을 그 전제들의 성립불가능성을 통해 보이고자 한다.
2. 거짓말쟁이 역설의 해결을 위한 시도
1)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개
거짓말쟁이 역설은 논리학의 근본원리인 모순율(The Principle of Contradic- tion)4)과 배중률(The Principle of excluded middle)5)이 참이라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했을 때 배중률에 반하는 결과를 발생시키게 된다. 거짓말쟁이 역설은 거짓말쟁이 문장으로 불리는 아래의 문장과 관련된 것이다.
(L)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제 거짓말쟁이 문장(L)으로 인해 발생하는 역설을 하나의 논증으로 구성해 보자. 먼저 배중률에 의해 (L)은 참이거나 거짓이다. (L)이 참이라고 가정하자. (L)이 참이라면 (L)이 의미하고 있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가 참이 되어 (L)은 거짓이 된다. 그런데 이는 (L)이 참인 동시에 거짓이라는 의미로 모순율에 위반된다. 이처럼 (L)이 참이라는 가정은 모순을 초래하므로 부정되어야 한다. 이번엔 반대로 (L)이 거짓이라고 가정하자. (L)이 거짓이면 (L)이 의미하고 있는 ‘이 문장은 거짓이다.’가 거짓이 되어 (L)은 참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L)이 거짓인 동시에 참이라는 의미로 모순율에 위반된다. 이처럼 (L)이 거짓이라는 가정 또한 모순을 초래하기 때문에 부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위의 논리에 따르면 (L)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없게 되는데 이는 배중률에 위반되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2) 타르스키(A. Tarski)의 해결법
이제 본 논의에 앞서 거짓말쟁이 역설의 해결에 가장 커다란 공헌을 한 인물 중 하나인 타르스키(A. Tarski)의 역설해결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타르스키는 언어가 여러 계층으로 나누어진다는 '언어계층설'을 통해 거짓말쟁이 역설을 해결하고자 했다. 여기서 필자는 타르스키가 자신의 언어계층설을 이용하여 어떻게 거짓말쟁이 역설을 해결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기보단 그의 이론의 핵심 개념과 그것들에 대한 의문점만을 제기하고자 한다.6) 먼저 다음의 거짓말쟁이 문장(A)을 생각해보자.
(Q) A=‘A는 거짓이다.'7)
타르스키는 (러셀보다는 덜 과격하지만)러셀과 마찬가지로 역설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문장의 자기지시(self-reference)에 있다고 보고8) 언어를 메타언어와 대상언어9)로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10) 다시 말해 타르스키가 보기에 위 문장(A)은 ‘의미론적으로 닫힌(semantically closed) 언어’에 속해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의미론적으로 닫힌 언어란 ‘언어라면 당연히 가지는 표현들 뿐 아니라 그 표현에 대한 이름들 및 그 표현들에 적용되는 ‘참’과 같은 의미론적 명사를 포함하는 언어’11)를 일컫는데 거짓말쟁이 문장 역시 그 언어 자체 내에 자기지시적인 ‘참, 거짓’ 같은 의미론적 명사를 포함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짓말쟁이 문장 자체 내에 의미론적 명사를 포함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타르스키에 따르면 ‘참이다.’, ‘거짓이다.’와 같은 의미론적 술어들은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언어보다 한 차원 높은 메타언어에 속해있어야 한다. 하지만 거짓말쟁이 문장에선 ‘A'에 대해 이야기하는 의미론적 술어인 ‘거짓이다.’를 포함하는 ‘A는 거짓이다.’라는 문장이 대상언어 ‘A’12)보다 더 높은 차원(메타언어)에 속해야함에도 불구하고 A와 동일하다고 정의됨으로써(A=‘A는 거짓이다.') ‘A'보다 더 높은 차원의 언어에 속할 수 없게 되었다. 즉, 거짓말쟁이 문장은 메타적인 언어를 대상언어로 제시했기에 형식적으로 정확히 기술(formally specifiable)될 수 없어 역설을 발생시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모든 명제가 메타언어와 대상언어중 하나에만 속해야 하고 거짓말쟁이 문장(명제A)이 ‘메타언어를 대상언어로 제시’했기 때문에 그릇된 명제라면 거짓말쟁이 역설은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타르스키의 이론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난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하나는 언어에 대한 메타언어와 대상언어로의 구분이 자연어(일상 언어)에 대해서는 잘 맞지 않아 자연언어에 대해서는 적절한 진리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것13)이고 나머지 하나는 모든 명제가 메타언어와 대상언어중 하나에만 속해야한다는 타르스키의 주장이 논리학의 근본 법칙으로부터 추론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14)
3. 거짓말쟁이 역설(Liar Paradox)의 해결
1) 거짓말쟁이 역설
역설은 그것의 전제나 추론 중 적어도 하나가 타당하지 못함을 보임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거짓말쟁이 역설이 일으키는 이율배반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거짓말쟁이 문장이 논리적으로 성립가능한지부터 철저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가 과연 받아들일 만한 것 인지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와 거짓말쟁이 역설의 발생과정을 정리한 아래의 <거짓말쟁이 역설-진리술어화>를 살펴보자.
<거짓말쟁이 역설-진리술어화>
① 전제 I: A = ‘A는 거짓이다.’15)
전제 II: 명제 A는 그것의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모순율)
전제 III: 명제 A는 참 또는 거짓 중 하나이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배중률)
② 명제 A는 참인가?
명제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
우선 전제 I에 의해 ‘A = A는 거짓이다.’가 성립하므로 다음(명제 L)도 참이다.
L: ‘A -> A는 거짓이다.’
그런데 명제 L은 명제 L의 좌변(A)이 참이면 우변(A는 거짓이다.)도 참이란 의미인데 앞서 명제 A가 참이라고 가정했으므로 좌변이 참이 되고 고로 우변(A는 거짓이다.)역시 참이다.
즉, A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A는 거짓이다.’도 참이 된다. 그런데 이는 모순율(전제 II)에 위반된다. 고로 A는 참이 될 수 없다.
③ 그렇다면 ¬A가 참인가?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A)
이번에도 먼저 전제 I(A = A는 거짓이다.)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전제 I가 참이면 다음도 명제 C도 참이다.
C: ¬A16) = ¬(A는 거짓이다.)
④ 전제에 의해 명제 C가 참이므로 다음(명제 H)도 참이다.
H: ¬A -> ¬(A는 거짓이다.)
명제 H는 명제 H의 좌변이 참이라면 우변 ¬(A는 거짓이다.)도 참이란 의미인데 ¬A가 참이라고 가정했으므로 우변(¬(A는 거짓이다.))역시 참이다.
즉, A가 참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 ‘A는 거짓이다.’는 참이 아니다.”가 참이 된다. 그런데 이중 부정은 긍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 ‘A는 거짓이다.’는 참이 아니다.”는 ‘A는 참이다.’와 동일하다. 하지만 이 또한 모순율(전제 II)에 위반된다. 고로 ¬A 또한 참이 될 수 없다.
⑤ 즉, ②, ④에 의해 A는 참도 될 수 없고 거짓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배중률(전제III)에 위반된다.
2) ‘A는 거짓이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선 위에서 전개한 <거짓말쟁이 역설-진리술어화>를 다시 생각해볼 것이다. 거짓말쟁이 역설은 A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A의 정의에 의해) 따라나오는 결론이 A가 참이라는 가정과 모순되고 A가 거짓이라고 가정했을 때 따라나오는 결론도 A가 거짓이라는 가정과 모순되어 결국 A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역설이다. 보통 우리는 ‘A는 거짓이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A’라는 명제와 ‘A는 거짓이다.’는 명제가 동일한 명제인지 또 명제 A가 ‘A는 거짓이다.’란 명제와 양립가능한지에 대해서조차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만한 설명이 제시된 적도 없다. 또한 현재는 ‘의미있는 문장에서 진리술어(‘참이다, 거짓이다.’)는 제거될 수 있다.’는 축소주의17)와 타르스키의 의미론적 진리론 그리고 ‘진리표현은 기술된 명제에 있어서 잉여적이다.’는 진리잉여론(Redundancy theory of truth)18) 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는 거짓이다.’라는 명제 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거짓말쟁이 역설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필자가 보기엔 한계가 있어 보이는데 이는 그것이 우리가 명백히 잘 알고 확신할 수 있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는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A는 거짓이다’라는 명제 자체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그것이 역설의 전개과정에서 해석되는 의미와 동떨어진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에선 역설의 전제에 대한 분석이 전제가 역설의 전개과정에서 해석되는 의미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19). 그러므로 앞으로의 논의에서 필자가 살피고자 하는 것은 거짓말쟁이 문장 자체의 참, 거짓에 대한 문제도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개과정의 논리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도 아닌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와 그 전개과정 사이의 관계이다. 즉,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20)한다는 가정하에 그 역설을 발생시키는 거짓말쟁이 문장의 의미를 추론해내는 것이 본 분석의 목표인 것이다. 때문에 본 분석에선 처음부터 거짓말쟁이 문장의 의미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거짓말쟁이 문장은 ‘A=□’의 형태로 그것이 정의되고 있다는 것만 가정될 뿐 그것의 의미는 한정지어지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것의 의미(□)가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개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추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는 두 가지 가정 ‘① 거짓말쟁이 문장(A)이 정의되고(A=□) 있으며 ② 그 정의로 인해 A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도 모순이 발생하고 A가 거짓이라고 가정해도 모순이 발생한다.’를 토대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필자는 이제까지 대부분의 논의에서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를 바탕으로 ②의 결론을 이끌어냈던 것과는 반대로 위 ②번 가정이 사실이라면 ①에서 명제 A의 정의가 되는 □는 무엇이 될 것이지를 아래의 분석21)을 통해 역으로 추론할 것이다. 이는 거짓말쟁이 역설을 잘 아는 사람이 거짓말쟁이 역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한 전제가 거짓말쟁이 역설을 일으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A는 거짓이다.’가 역설의 전개과정에서 해석되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쟁이 역설-진리술어화II>
① 전제 I: A = B
전제 II: 명제 A는 그것의 긍정과 그것의 부정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모순율)
전제 III: 명제 A는 참 또는 거짓 중 하나이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배중률)
② A는 참인가?
명제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
우선 전제 I에 의해‘A = B’가 성립하므로 다음(명제 L)도 참이다.
L: ‘A -> B’
그런데 명제 L은 명제 L의 좌변(A)이 참이면 우변(B)도 참이란 의미인데 명제 A가 참이라고 가정했으므로 좌변은 참이 되고 고로 우변(B)역시 참이다.
즉, A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B도 참이 된다. 그런데 A와 B는 모순된다.22)
③ 그렇다면 ¬A가 참인가?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A)
이번에도 먼저 전제 I(A = B)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전제 I가 참이면 다음도 명제(C)도참이다.
C: ¬A = ¬B
④ 명제 C가 참이므로 다음(명제 H)도 참이다.
H: ¬A -> ¬B
명제 H는 명제 H의 좌변이 참이라면 우변(¬B)도 참이란 의미인데 좌변(¬A)이 참이라고 가정했으므로(③에서) 우변 (¬B)역시 참이다.
즉, ¬A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B 역시 참이다. 그런데 ¬A와 ¬B 또한 모순된다.23)
⑤ 즉, A라고 해도 모순이고 ¬A라고 해도 모순이므로 A는 참도 될 수 없고 거짓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배중률(전제 III)에 위반된다.24)
<거짓말쟁이 역설-진리술어화II>에서 우리는 ②에서 A와 B가 모순이라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그런데 A와 B가 모순이라는 것은 곧, ‘¬(A&B)'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이 변형될 수 있다.
¬(A&B)= ¬A∨¬B (드모르간의 법칙)
= ¬A∨¬B = A->¬B (¬P∨Q=P->Q)
= A->¬B = B->¬A (대우 법칙)
즉 A와 B가 모순이면 다음이 성립한다.
‘B->¬A'
또한 ④에서 ¬A와 ¬B가 모순이라는 것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A와 ¬B가 모순이라는 것은 즉, ‘¬(¬A&¬B)'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이 변형될 수 있다.
¬(¬A&¬B)= A∨B (드모르간의 법칙)
= A∨B = ¬A->B (¬P∨Q=P->Q)
= ¬A->B
즉 ¬A와 ¬B가 모순이면 다음이 성립한다.
‘¬A->B’
이처럼 ②와 ④에서 이끌어낸 두 결론 ‘B->¬A', ‘¬A->B'에 의해 다음이 성립한다. ‘B=¬A'(B와 ¬A는 필요충분조건)
이제 우리는 우리가 처음에 정의 내리지 않았던(A=B의 형태로) 명제 A의 의미를 얻게 되었다. 즉, 거짓말쟁이 역설이 성립한다고 가정했을 때 거짓말쟁이 문장의 의미는 ‘A=¬A’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25) 그런데 우리가 결론으로 얻어낸 거짓말쟁이 문장의 정의 ‘A=¬A’는 명백히 모순율에 위반되는 명제이다.26) 즉,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는 사실 ‘A=¬A’로 모순율에 위배되는 명제였으며 그렇기에 거짓말쟁이 역설이라는 배중률에 반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게 되었던 것이다.27)
3) 거짓말쟁이 역설- 기호화
이제 전제(I)가 어떻게 역설을 불러오게 되는지를 논의 초반에 살펴보았던 진리술어를 사용한 거짓말쟁이 역설과 이를 기호화한 거짓말쟁이 역설과의 비교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거짓말쟁이 역설-진리술어화>
① 전제 I: A = ‘A는 거짓이다.’
전제 II: 명제 A는 그것의 긍정과 그것의 부정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모순율)
전제 III: 명제 A는 참 또는 거짓 중 하나이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배중률)
② 명제 A는 참인가?
명제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
우선 전제 I에 의해 ‘A = A는 거짓이다.’가 성립하므로 다음(명제 L)도 참이다.
L: ‘A -> A는 거짓이다.’
그런데 명제 L은 명제 L의 좌변(A)이 참이면 우변(A는 거짓이다.)도 참이란 의미인데 명제 A가 참이라고 가정했으므로 좌변이 참이 되고 고로 우변(A는 거짓이다.) 역시 참이다.
즉, A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A는 거짓이다.’도 참이 된다. 그런데 이는 모순율(전제 II)에 위반된다. 고로 A는 참이 될 수 없다.
③ 그렇다면 ¬A가 참인가?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A)
이번에도 먼저 전제 I(A = A는 거짓이다.)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전제 I가 참이면 다음도 명제(C)도참이다.
C: ¬A = ¬(A는 거짓이다.)
④ 전제 I에 의해 명제(C)가 참이므로 다음(명제 H)도 참이다.
H: ¬A -> ¬(A는 거짓이다.)
명제 H는 명제 H의 좌변이 참이라면 우변 ¬(A는 거짓이다.)도 참이란 의미인데 ¬A가 참이라고 가정했으므로 우변(¬(A는 거짓이다.)) 역시 참이다.
즉, A가 참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 ‘A는 거짓이다.’는 참이 아니다.”가 참이 된다. 그런데 이중부정은 긍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 ‘A는 거짓이다.’는 참이 아니다.”는 ‘A는 참이다.’와 동일하다. 하지만 이 또한 이율배반(Antinomy)으로 모순율(전제 II)에 위반된다. 고로 ¬A 또한 참이 될 수 없다.
⑤ 즉, ②, ④에 의해 A는 참도 될 수 없고 거짓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배중률(전제 III)에 위반된다.
<거짓말쟁이 역설-기호화>
Ⓐ 전제 I: A = ¬A28)
전제 II: 명제 A는 그것의 긍정과 그것의 부정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모순율)
전제 III: 명제 A는 참 또는 거짓 중 하나이다.
즉, (A∨¬A) 는 항상 참이다.(배중률)
Ⓑ A는 참인가?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전제 I로부터 다음명제(L)는 참이다.
L: ‘A -> ¬A'
그런데 이는 A가 참일 때 ¬A도 참임을 의미한다. 위에서 우리는 A가 참이라고 가정했고 그러므로 ¬A도 참이다. 하지만 이는 A와 ¬A가 동시에 참이라는 의미로 명백히 거짓이다. 즉, A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모순율(전제 II)에 위반되는 결론을 얻게 되므로 A는 참이 아니다.
Ⓒ ¬A는 참인가?
¬A가 참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전제 I에 의해 ‘A = ¬A’가 성립하고 고로 다음명제(Z)도 성립한다.
Z: ¬A = ¬(¬A)
Ⓓ Z로부터 다음명제(H)는 참이다.
H: ¬A -> ¬(¬A)
H 명제는 ¬A가 참일 때 ¬(¬A)도 참임을 의미한다. 위에서 우리는¬A가 참이라고 가정했으므로 ¬(¬A)도 참이다. 그런데 ¬(¬A)는 곧 A를 의미하므로 A도 참이다. 하지만 이도 ¬A와 A가 동시에 참이라는 의미로 명백히 거짓이다. 즉, ¬A가 참이라고 가정해도 모순율(전제 II)에 위반되는 결론을 얻게 되므로 ¬A 역시 참이 될 수 없다.
Ⓔ 이처럼 Ⓑ, Ⓓ에 의해 A는 참도 될 수 없고 거짓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배중률(전제 III)에 위반된다.
<거짓말쟁이 역설-기호화>에서 Ⓑ번 ‘A -> ¬A'는 “명제 A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A는 거짓이다.”를 의미하고 Ⓓ번 ‘¬A -> ¬(¬A)'는 “명제 A가 거짓이라고 가정하면 ‘A는 거짓이다.’는 거짓이다.”를 의미한다. 즉, 이들은 각각 <거짓말쟁이 역설-진리술어화>에서의 ②와 ④에 해당한다.(사실 각각 Ⓐ-①, Ⓑ-②, Ⓒ-③, Ⓓ-④, Ⓔ-⑤와 같이 대응된다.)
이처럼 명백히 ‘A = ¬A’라고 가정하면 역설이 발생한다. 우리는 여기서 “A = ‘A는 거짓이다.’ ”고 가정했을 때 역설이 발생했던 것처럼 ‘A = ¬A’라고 가정했을 때도 역설이 발생하고 그 역설이 발생하는 과정은 “A = ‘A는 거짓이다.’”고 전제했을 때 역설이 발생하는 과정과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역설이란 참인 전제와 타당한 추론에서 나오는 모순된 결론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보듯이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29)는 거짓이므로 거짓말쟁이 역설은 명백히 거짓인 전제(A = ¬A)를 부정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30) 즉, 거짓말쟁이 역설은 그 자체가 모순된 명제를 전제로 삼았기 때문에 발생한 역설이었던 것이다.
주석
1) 엄정식,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철학연구, 제19집, 철학연구회, 1984, 169쪽.
2) 이를 반 프라센은 ‘약화된(Weakend) 거짓말쟁이 역설이라 부른다.(Van Fraassen. B. C., “Presupposition, implication, and self-reference”, Journal of philosophy, vol. 65. No.5. p.150.) 하지만 이 ‘약화된 거짓말쟁이 역설’은 피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것은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하는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의 말에 에피메니데스 본인만 거짓말쟁이라고 결론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에피메니데스가 거짓말쟁이라고 가정하면 그의 말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 거짓임을 의미하는데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의 부정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가 아니라 “어떤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이므로 에피메니데스가 한 말이 거짓이라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 에피메니데스가 꼭 거짓말쟁이가 아니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거짓말쟁이가 아닌 ‘어떤 크레타인’이 에피메니데스가 아닌 다른 크레타인이어도 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에피메니데스의 말은 거짓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고 여기서 아무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3) 이를 ‘단순(Simple) 거짓말쟁이 역설’이라며 보통의 거짓말쟁이 역설은 이 단순 거짓말쟁이 역설을 지칭한다. 이외에도 ‘이 문장은 거짓이거나, 아니면 무의미하다.’와 같은 ‘강화된(Strengthened) 거짓말쟁이 역설’이 있다.
4) Q∼Q=0; ¬(Q&¬Q) : 어떠한 문장도 동시에 참이면서 거짓일 수 없다.
5) Q+∼Q=1; (Q∨¬Q) : 모든 문장은 참이거나 거짓이다.
6) 이는 이미 타르스키 이론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 이론의 문제점 또한 충분히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또 타르스키 이론을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거짓말쟁이 역설의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본 논문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7) 여기서 A는 앞의 거짓말쟁이 문장, 즉 ‘이 문장은 거짓이다.’와 동일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에서 ‘이 문장’은 실질적으로 ‘이 문장은 거짓이다.’ 전체의 문장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다음의 동일성 관계가 성립한다.
“이 문장 = ‘이 문장은 거짓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을 ‘A'라고 놓는다면 위 명제는 결국 “A=‘A는 거짓이다.’”(Q)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명제 Q와 명제 A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에 주의해야한다. 명제 Q는 거짓말쟁이 문장인 A를 정의내리고 있는 명제이다.
8) 하지만 역설의 원인이 ‘자기언급’에 있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이 비판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언급 때문에 역설이 발생한다는 러셀의 주장과 자기언급을 통제하는 유형론을 따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난관에 봉착했었다.
첫째, 자신을 포함하는 전체를 언급한다고 해서 모두 악순환은 아니며, 따라서 모든 자기언급이 모순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어떤 자기언급은 일상생활이나 철학, 과학에선 없어선 안 될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셋째, 자기를 언급한다고 해서 무의미한 문장은 아니며, 어떤 문장은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 러셀이 제시한 악순환의 원리는 비경제적인 표현에 의존해 있다는 점과 유형론은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러셀의 유형론이 ‘유의미성의 범위’에 대해 말하는 요점은 자기언급적인 문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므로, 러셀을 따르게 되면 모든 자기언급을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점이었다.”(이운형, 거짓말쟁이 역설, 한국학술정보(주), 2002. p. 128.)
9) 타르스키는 언어를 대상언어, 메타언어2) 이렇게 두 가지 언어로 구분한다. 만약 언어H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언어H₂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먼저 언어H₂안에서 이야기되어지고 있는 언어H₁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상언어이다. 그리고 언어H₂는 언어H₁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언어로서 메타언어이다.
(Tarski, A., “The Semantic Conception of Truth and the Foundations of Semantics”; in Linsky, 1944, p. 21~22.참고)
10) 러셀의 유형론과 타르스키의 언어계층이론이 다른 점은 러셀의 유형론은 자기언급이 있는 문장들은 모두 배재시키는데 반해 타르스키의 언어계층이론은 자신의 진위를 언급하지 않는 자기언급적 문장은 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 Tarski, A., “The Concept of Truth in Formalized Languages” in Trans. Woodger, J. H., Logic, Semantics, Metamathematics, oxford, 1956, p. 59.
12) ‘거짓이다.’라는 의미론적 술어에 의해 이야기되어지고 있는
13) Ibid. p. 153.
14) 즉, 타르스키의 언어에 대한 메타언어와 대상언어로의 구분이 논리학적 근본법칙에서 또는 선험적 직관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출된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쟁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임의적인 가정인 것처럼 생각되어진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타르스키의 언어관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이론은 “따옴표 안의 이 문장은 참이다.”라는 문장으로부터는 왜 역설이 발생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직관적으로 의미 있어 보이는 문장들도 모두 무의미하다고 제거된다는 점이다. 둘째, 타르스키의 이론체계에는 언어의 계층 모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대의 계층 언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따옴표 안의 이 문장은 참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의미 없는 문장이다.”라는 주장자체가 그의 이론체계에서 유의미하게 주장될 수 없다는 점이다. 셋째, 언어 계층이론에서도 역설이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는 하나의 문장에 계층을 정하여 사용하는 것이 경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이운형, 거짓말쟁이 역설, 한국학술정보(주), 2002. p. 128.)
15) 전제 I는 거짓말쟁이 문장(A)을 정의내리고 있다.
16) ‘A∨¬A'는 항상 참이므로 A인 경우(Ⓑ)와 ¬A인 경우(Ⓒ)로 나눴음에 유의하자.
17) JcBeall, “A neglected deflationist approach to the liar”, Analysis61. 2001, p. 127.
18) Ramsey, F. P., “Facts and Propositions”,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supp. vol., 1927, p. 16-17.
19) 거짓말쟁이 문장은 그것이 역설의 전개과정에서 해석되어지는 의미를 통하여 규명되어져야한다.
20) 앞으로의 논의에서 거짓말쟁이 역설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거짓말쟁이 역설’뿐만이 아니라 전제가 무엇이 되었든 ‘배중률과 모순율이 성립한다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했을 때 배중률에 어긋나는 결론을 도출하는 모든 논리적 추론’을 통칭한다.
즉, ‘어떤 명제 A가 있어 A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모순이 일어나고(모순율 위반) A가 거짓이라고 가정해도 모순이 일어나는(모순율 위반) 상황’을 의미한다.
21) 단, 여기선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 A=‘A는 거짓이다.’에서의 ‘A는 거짓이다.’를 B로 치환했음에 유의하자.(이는 ‘A는 거짓이다.’의 의미와 전혀 상관없이 역설의 발생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22) 거짓말쟁이 역설이 성립하기 위해선 가정(A가 참이다.)의 결론이 가정과 모순되어야 한다.
23) 거짓말쟁이 역설이 성립하기 위해선 가정(¬A)의 결론이 가정과 모순되어야 한다.
24) ②에서 A와 B가 모순이라는 것은 ¬A∨(B&¬B)임을 의미한다.
<증명: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A=B)에서 A->B가 성립하고 거짓말쟁이 역설이 성립하기 위해선 A와 B가 모순 즉, ¬(A&B)이 또한 성립해야 하는데 이는 (A->B)&[¬(A&B)]가 참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A->B)&[¬(A&B)]는 (¬A∨B)&(¬A∨¬B)를 의미하고 이는 또한 ¬A∨(B&¬B)와 동일하다.>
또 ③에서 ¬A와 ¬B가 모순이라는 것은 A∨(B&¬B)임을 의미한다.
<증명: 거짓말쟁이 역설의 전제(A=B)에서 ¬A->¬B가 성립하고 거짓말쟁이 역설이 성립하기 위해선 A와 B가 모순 즉, ¬(¬A&¬B)이 또한 성립해야하는데 이는 (¬A->¬B)&[¬(¬A&¬B)]가 참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A->¬B)&[¬(¬A&¬B)]는 곧 (A∨¬B)&(A∨B)를 의미하고 이는 또한 A∨(¬B&B)와 동일하다.>
이처럼 ②에서 ¬A∨(B&¬B)가 성립하고 ③에선 A∨(¬B&B)가 성립하므로 ②와 ③이 둘 다 타당하다면 [¬A∨(B&¬B)]&[A∨(¬B&B)]가 성립한다. 그런데 이것은 즉, (¬A&A)∨(¬B&B)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배중률에 반하는 것이다.
25) 즉, ‘A=¬A’ <-> ‘A=A는 거짓이다.’
26) 거짓말쟁이 문장 A를 정의내리는 전제I 즉, ‘A = ¬A’는 모순율에 위반되는 명제이다.
27) 귀류법을 사용하면 위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분석될 수 있다.
[이제까지 ‘A=¬A’라는 결론을 얻게 한 추론의 전제는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론이 모순(모순율 위반)이므로 귀류법에 의해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한다는 애초의 우리의 가정은 잘못이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거짓말쟁이 역설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거짓말쟁이 역설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은 ‘A=¬A’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는 명백히 모순(모순율 위반)이므로 거짓말쟁이 역설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8) A와 ¬A는 필요충분조건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거짓이다.(모순율 위반)
29) 거짓말쟁이 문장 A를 정의내리는 전제I 즉, ‘A = ¬A’는 모순율에 위반되는 명제이다.
30) 여기서 우리는 명제의 중요한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모든 명제는 항상 그것이 전달하는 정보가 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F. Ramsey에 의하면 “‘내가 밥을 먹었다.’는 것은 참이다.”라는 명제는 ‘내가 밥을 먹었다.’라는 명제와 동일하다. 이러한 F. Ramsey의 관점은 본 논문의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그것은 거짓말쟁이 문장이 ‘스스로가 거짓이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스스로가 전달하는 주장이 참이다.’라고 주장하는) 명제 본연의 기능에 반하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명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 본 논문에서 이야기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즉, 거짓말쟁이 문장은 ‘자기 자신이 참이라는 주장’과 ‘자기 자신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동시에 하게 됨으로써 모순에 이르게 된다. 러셀은 거짓말쟁이 역설의 발생원인을 거짓말쟁이 문장의 자기언급에서 찾았고 타르스키는 거짓말쟁이 문장이 자기 자신의 참,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이러한 해결책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였을 때 역설을 일으키지 않는 많은 명제들 또한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타르스키의 주장이 러셀의 주장보다 덜 과격하긴 하지만 타르스키에 따르면 역설을 일으키지 않는 “따옴표 안의 이 문장은 참이다.” 같은 명제 역시 무의미한 명제이다. 하지만 본 논문에선 거짓말쟁이 문장이 역설을 발생시키는 이유를 그 문장이 자신의 진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만 찾고 있으므로 역설을 발생시키지 않는 위의 문장과 같은 명제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