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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스크랩] 충간공 사서 전식 불천위 묘우(忠簡公 沙西 全湜 不遷位 廟宇) 중수(重修)

작성자한강의 언덕|작성시간24.02.01|조회수102 목록 댓글 0

충간공 사서 전식선생 묘우 중수

 

충간공 사서  전식 불천위 묘우(忠簡公 沙西  全湜 不遷位 廟宇)가 지붕이 새고 사주문이 기울어져, 묘우(廟宇)에 보관 중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인 『상주 전식 초상 일괄』 문화재의 보존을 위하여 시급히 복구가 필요하였다. 이에 사서 12대 종손(전상룡)이 2022년에 경상북도와 상주시에 묘우 보수 지원을 건의하였으며, 경상북도와 상주시에서 문화재 보존 필요성을 인정받아 예산을 지원받았다. 묘우 본전, 사주문, 협문, 담장, 진입로 보수 등 일체를 중수하였다.

 

 

 

 

 

 

1. 공사명

충간공  사서 전식 불천위 묘우(忠簡公  沙西 全湜 不遷位 廟宇) 중수(重修)

 

2. 공사 기간

2023년 09월 01일---2023년 12월 06일

 

3. 장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전식 사당

 

4. 소요 예산

2억 8천여만 원 (지방자치단체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전액 지원)

 

5. 충간공 묘우 회철 고유문(김세명 찬)

공사 시작전 김세명선생의 도움으로 회철 고유문을 지어 202391일 공사 착공일에 고유제를 지내고 중수공사를 시작했다.

가로 21cm * 세로 29.5cm 크기의 한지에 202391(음력717, 癸卯丙午朔十七日壬戌)에 작성한 사서선생 묘우 회철 고유문으로 의성김씨 김세명선생이 찬한 글이다.

김세명(金世明, 1946~ ) : 의성김씨, )상주농협지점장.

 

6. 사서 선생 묘우 중수 고유문(전병곤 찬)

 

사서 전식(全湜) 사당 정비공사에 즈음하여.

 

역사를 배움으로서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현재를 바르게 이해 할 수 있고 삶의 지혜를 습득 할 수 있습니다.

충간공 사서 전식(全湜) 선조께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는 국왕의 피난길을 호종하였습니다. 특히 63세의 고령에도 명나라 사신으로 중국에도 다녀오셨습니다.

2021년 12월 전식(全湜) 종가 고문서, 초상화, 조복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각각 지정되었으나 현재 상태의 사당에 보관하기에는 문화재로서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현재의 충간공 사서 전식(全湜) 선조 사당은 상주시 외답동에서 1933년 3월 하순 이곳 외서면 관동리로 이건 되었습니다. 이에 상룡(相龍) 종손은 사당의 노후로 인한 문화재의 관리 문제를 두고 노심초사 하던 중, 남영숙 도의원의 적극적인 시, 도비 예산지원으로 90년 만에 전면 정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조의 귀중한 유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후, 이와 같이 잘 정비된 사당에서 보존, 관리할 수 있어서 후손된 자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질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선조의 숨결을 느끼고 지난 역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리라 믿습니다.

 

계묘년 시월

 

종10대손 병곤(柄昆) 근찬.

 

 

7. 사서선생 묘우 중수 고유문(전재몽 찬)

 

사서선생 묘우 중수 고유문

(沙西先生 廟宇 重修 告由文)

 

삼가 아뢰옵니다.

12대조고(12代祖考) 충간공(忠簡公) 부군(府君)의 묘우(廟宇)를 농산(農山)으로 옮긴지 90여년이 흘렀습니다.

오랜 세월에 기둥이 뒤틀리고 서까래가 썩어 지붕이 허물어져 빗물이 새고, 사주문(四柱文)이 기울어 유지보수 관리에 한계가 있어, 묘우(廟宇)에 보관 중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69호인 『상주 전식 초상 일괄』 문화재 보존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묘우를 관리하고 있는 12대 종손(相龍)이 조상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항상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종손(宗孫)을 비롯한 종10대손 병곤(柄昆), 종11대손 부엽(富燁)의 노력으로 시.도(市.道)의 예산을 지원받아 낡은 묘우(廟宇)를 3개월여 만에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환하게 예전 모습 회복하니 농산(農山)의 들판도 더욱 빛나고 주변의 나무들도 눈부시게 찬란합니다.

기와 한 장 서까래 하나에도 후손들의 정성이 돈독하니, 선조님들이 천년만년 수호해 줄 것입니다.

이에 길일을 받아 감히 준공을 고하나니 새로운 묘우(廟宇)에서 편히 쉬소서.

 

2023년 12월

 

12대손 재몽(在蒙) 근찬.

 

 

 

8. 묘우 중수를 마치며

 

충간공 사서 선조의 묘우(廟宇) 위패(位牌 또는 神主)는 노곡의 묘우를 건립하며 모신 위패를 12대에 걸쳐 모시고 있다.

다른 묘우에서는 통상 한 대(代)가 끝나고 다음 대(代)로 이어지며 선대의 위패를 매혼(埋魂)하고 다시 제작하여 모시는 것이 관례이나 충간공 사서 선조의 위패는 1643년(인조21년) 음력 3월에 인조임금이 예조정랑 이이송(李爾松, 1598~1665)을 상주 땅 노동(노곡魯谷)에 보내어, 사서 선조를 위한 사제문을 내리고 불천위 제사를 지내게 하신 이후 선조의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묘우를 선조의 2대손 휘(諱) 후(垕)에 의하여 건립한 이래 현재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

특히 강화최씨 신위 뒤의 암실 지방에는 할머니의 휘(諱)인 옥(玉)자 란(蘭)자가 명기되어 전해지고 있다.

선조의 묘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있는 역사를 후대에 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여겨 기록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 『충간공 사서 전식 - 불천위 묘우 중수를 마치며』의 책자를 발간하게 되었다.

이번 중수에 큰 도움을 주신 경상북도 남영숙 의원님, 상주시청 문화예술과 권양희과장님, 팀장 김진형님, 주무관 김희경님, 주식회사 성우 조용철 대표님, 도편수 권재용님, 석공장 최차호님, 충간공 사서 전식(全湜)선생 영정 모사본 제작에 도움을 주신 상주시 박물관 학예팀장 조연남님, 그리고 충간공 사서 전식(全湜)선생의 묘우 보수공사의 첫 시작과 함께 도움과 격려를 주신 병곤 대부님, 부엽 아재님, 보수공사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이 책을 작성해 준 재몽 동생 등 많은 분들의 도움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2023년 12월

 

사서 선생 12대 종손 상룡(相龍)

 

 

9. 참고사항

① 묘우(廟宇) 중수과정을 후손에게 전할 수 있게끔 전 과정을 기록하고 사진을 정리하여 책자를 만들었음

책명: 충간공 사서 전식 불천위 묘우 중수를 마치며 (전재몽 작성, 전상룡 감수)

 

 

② 해체과정에서 가로  55㎝*세로 105㎝인 정창묵이 찬(撰)한 상량문을 발견하였음.

 

 

 

③ 아울러 『규천선생 사적 행장』도 출판하였다.

『규천선생 사적 행장』의 원문은 사서선생 종가에서 제공하였으며 자료작업은 전재몽님이 하였으며 권세환님 국역하였습니다.

 

 

●  전식 [ 全湜 ]

조선 중기 문신. 정경세∙이준 등과 산수를 유력하여, ‘상사의 삼로’로 불렸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을 방어하였다. 1642년 중추부지사 겸 경연동지사∙춘추관동지사에 이어 대사헌에 보직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식 [全湜]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전극항 [ 全克恒 ]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자는 덕고(德古)·덕구(德久)이고, 호는 규천(虯川)이다. 대사헌을 지낸 전식(全湜)의 아들로 태어났다.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24년(인조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대교·검열·예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예조정랑으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도성을 지키라는 왕명을 받고 다시 돌아왔다. 그는 도성에서 수십 일을 머물며 성을 지키다가 적군에게 피살되었다. 도승지에 추증되으며, 1786년(정조 10) 나라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극항 [全克恒]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冬至日霑醉宮醪憶舍弟

虯川 全克恒

 

北軒欄檻冣留情。[牧之]

湛露鳧鷖入頌聲。[崔塗]

痛飮便拚千日醉。[放翁]

他鄕正遇一陽生。[牧之]

百年佳節今風雨。[后山]

四海相望只弟兄。[無名氏]

萬里有家歸尙隔。[介叔]

休將文字占時名。[子厚]

 

 

동짓날 하사주에 흠뻑 취하여 아우를 생각하다.

규천 전극항

 

북헌 난간에 정을 남겨 쌓아놓았으니

‘담로’와 ‘부예’의 칭송 소리 들리는 듯

술을 흠뻑 마시며 천일을 술에 취해 지내다가

타향에서 바로 만나니 따뜻함 한 올이 생긴다.

100년 명절인데 오늘은 비바람 불지만

온 세상에서 서로 바라보는 이는 다만 형제뿐이네

만 리 밖에 집 있어도 돌아갈 길 막혔으니

이제 글로써 한때 명성 얻는 일 그만두리라.

 

[출처] 규천선생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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