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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의 묘비명을 상상한다

작성자한강의 언덕|작성시간26.06.23|조회수11 목록 댓글 0

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34]
나의 묘비명을 상상한다

 

 

부산의 한 서점에 낭독 행사를 다녀왔다. 전포동에 있는 이 독립 서점 이름은 '그레타'인데, 벽에 낯선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알고 보니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그는 고향 크레타섬에 묻혀 있다. 그러고 보면 작가들의 묘비명은 그들의 삶과 문학을 압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여기, 물에 이름을 새긴 자가 잠들다" 라고 썼고, 미국의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속 마지막 문장 을 새겼다. "그리하여 우리는 물살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평생 은둔했지만 누구보다 깊은 내면의 우주를 탐험 했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돌아 오라는 부름 받음", 밑바닥 인생을 '더티 리얼리즘'으로 승화시킨 찰스 부코스키는 "애쓰지 마라".... .오해도 있다. 

 

흔히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일려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문장은 원래 "이 근처에 오래 얼정거리다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의 오역인데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다. 버나드 쇼는 화장되어 아내의 유골과 함께 자신이 살던 정원에 뿌려졌기 때문에 애초에 무덤 자체가 존재 않는다.

 

이따금 나도 내 묘비명을 상상해 본다. 묘비를 갖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지만, 세상에 남길 마지막 메시지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쓸모가 있을 것이다. 9ㆍ11 테러가 일어났던 세계무역센터 바로 앞 세인트 폴 예배당의 어느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들은 안녕하다(They are in peace)". 나도 같은 단어를 적고 싶다. "그는 평생 썼고, 이제 안녕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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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전씨 중앙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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