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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오돈(全五惇)의 겸양(謙讓)

작성자한강의 언덕|작성시간15.04.19|조회수16 목록 댓글 0

 

전오돈(全五惇)의 겸양(謙讓)


1379년 왜()의 기병 700명과 보병 2,000명이 침구하자, 양백연이 경상도상원수(慶尙道上元帥) 우인열과 도순문사 배극렴, 한방언, 김용휘, 경의, 홍인계 등과 반성현(班城縣)(1)에서 쳐서 크게 깨뜨리고 13급을 베었다. 나머지 무리들은 산골짜기로 도망하였다. 판사 김남귀와 중랑장(2) 전오돈이 첩보를 올리자 우왕은 기뻐하여 김남귀 등에게 각각 백금 50냥을 하사하니, 전오돈이 공도 없으면서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도당(都堂)에서,

임금이 하사하는 것은 사양할 수 없다.”

하니 오돈(五惇)

그러면 이미 내 물건이 되었으니 도로 도당에 바치고자 합니다.”

하였다. 당시 의논이 이를 훌륭하게 여겼다.


[原文]

倭賊騎七百·步二千寇晉州, 伯淵與慶尙道上元帥禹仁烈, 都巡問使裵克廉·邦彦·用輝··仁桂等戰于班城縣, 大破之, 斬十三級, 餘黨悉竄山谷. 遣判事金南貴, 中郞將全五惇獻捷, 禑喜賜南貴等白金各五十兩, 五惇辭以無功不受. 都堂曰, “君賜不可辭.” 五惇曰,“然則旣爲吾物, 請納都堂.”時議多之.

출처: 고려사 열전 양백연


(1)반성현(班城縣 :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신라 때 불린 이름은 알 수 없다. 현종 9(1018)에 내속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주목 [晉州牧] -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


(2)중랑장[ 中郞將 ]

고려 시대의 무관직. 중앙군에 있어서 장군(將軍) 다음가는 계급으로 정5품관임. 문종 30(1076)에 개정된 전시과에 의하면 제6과에 속하여 전() 70, () 27결을 지급받았음. 중랑장의 총수는 26위를 90인을 포함하여 도부외(都府外)1, 충용위(忠勇衛)12인 등 모두 13인이 편제되어 있었음. 26위에는 장군 밑에 각기 두 사람의 중랑장이 있는데 이들은 장군의 보좌관으로 여겨짐.

() 나라와 한() 나라의 금중(禁中)의 경비 책임자. 이는 낭중령(郞中令)에 예속되어 있는 오관서(五官署)좌서(左署) 우서(右署)의 장관이었음. 관위(官位)는 장군 다음으로, 별명은 중랑(中郞)이며, 오관서좌서우서 중랑장이라고도 일컬었음. 후한(後漢) 말에 동 북 중랑장을 증설하여 배치한 것 외에 또한 호책중랑장(虎責中郞將) 및 사흉노중랑장(使匈奴中郞將) 등의 관직명이 있었다가 원() 나라 때 폐지되었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중랑장 [中郞將]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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