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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때문에 쓴 탁구입문기

작성자랭보|작성시간17.12.15|조회수295 목록 댓글 16

13일의 금요일,

2015년 3월 이었다.

중앙선을 불법 유턴하던 덤프트럭과의 충돌로 두부가 으깨지듯 간이 파열되었고,

무릎이 운전석 밑에 박혀 119가 와서도 30분간 차를 해체하고서야 앰뷸런스에 탈 수 있었다.

차는 폐차되었고 사경을 헤메던 일 주일 간의 중환자실과 두 달 간의 병원생활 중에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 접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은 그 동안의 내 가치관과 생활철학을 흔들었다.

 

음악과 사색을 즐기는 정적인 생활방식을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했던 나에게 탁구를 종용하던 사랑하는 우리 문지숙 여사가 마침내 포기하고 아들과 탁구장에 갈 때까지만 해도,

평소 10시만 넘으면 밀려드는 잠을 주체하지 못하던 문여사가 탁구장에만 가면 11시가 넘어도 오지 않아 어쩌다 궁금해서 탁구장에 가 볼 때만 해도,

오늘날 꼬맹이 총무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나에게 탁구이야기를 써보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늙어서도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 탁구라는 끈질긴 문여사의 설득으로 처음으로 탁구장에 갔을 때,

나는 이방인이었고, 외톨이였으며, 탁구에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레슨만 받고 집으로 바로 와 버렸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문여사에 의해 소처럼 끌려 다니다,

설상가상으로 재활치료를 위해 다니던 산행에서 무릎인대를 다쳐서 2~3개월을 쉬어야 했고,

탁구장에만 가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탁구에 대한 열정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하지 않을(왜냐하면 우리 탁구장의 심여사 때문에..^0^ )

우리 문여사의 기쁨조로써의 사명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학창시절에 야구시합을 하면 공을 맞추지 못해 거기에 끼지도 못 할 만큼 나는 운동이나 스포츠에는 소질이 없었다.

어떤 분들에겐 제가 제법 드라이브도 하고 가끔 어려운 공을 치니까 빨리 느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다른 분들보다도 시간여유가 많아 내가 탁구를 치던 시간이 꽤 많다고 생각하기에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려운 공을 치는 것보다는 쉬운 공에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은 그만큼 운동신경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 큰 야구공도 맞추지 못하던 내가 훨씬 더 작은 탁구공을 맞추는 것은 순전히 탁구채가 넓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10년을 열심히 하면 거기에 전문가가 된다지 않는가?

요즘에는 문여사를 놀리는 재미로 다니기에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탁구복도 사고 본격적으로 회전감각도 익히면서 탁구가 좋아지고 치고 싶어서 스스로 탁구장에 가기 시작한 지는 올 여름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이제 입문한지 15개월쯤을 지나고 탁구라는 운동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름대로 목표를 세웠다.

나는  탁구로 재능기부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기르기를 희망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진정한 고수란 현란한 동작의 실력이나 높은 부수보다도 하수를 배려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라 생각한다.

탁구장에 와서 보니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끼지만 진정으로 탁구 고수라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상대의 실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방식의 탁구만을 고집하고, 

어떤 이는 자기보다 하수와는 상대도 하지 않고 고수에게만 상대하려 하고,

어떤 이는 따뜻한 마음으로 일부러  하수와 적극적으로 같이 치려하고,

어떤 이는 이제 입문하여 뭔가 부족한 사람이나 슬럼프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끈임없이 격려하려는 등등...

많은 부류가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하기에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생각과 잘 하려는 욕심이 있다

그러나 탁구를 조금 못 치면 어떻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친들 뭐 그리 대단한가?

비교하는 순간 불행시작이란 걸 철학으로써의 불교를 접하고 알았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던 학창시절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을 이해하지 못했었고,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다르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단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나는 사람들을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침묵의 사나이란 별명으로 콧대 높던 시절 간혹 여자들에게 거만하단 소리도 들었지만 지금은 아주 순한 양이 되었으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의 깊은 의미를 나이가 50이 넘어서야 알았다.

 

시간이 가면 분명 나도 남들처럼 탁구를 잘 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노력할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저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특히 실력이 조금 부족한 분들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오지원님과 열공님에게는 감사패라도 수여하고 싶은 심정이다.

 

탁구공의 무게도 모르는 게  평가하고 정의를 내리는 게 같잖아 보여도 용서하시라.

이 모든 것은 순전히 꼬맹이 총무님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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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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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쎄레스Ceres/하양유리 | 작성시간 17.12.16 랭보님의 스타일과 저또한 쉽지않은 생각에
    편히 다가가지 못하였던점
    송구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잃었던 몇가지를
    탁구를 통하여 많은것을 스스로 얻으신 랭보님의
    행보에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
  • 작성자작은거인 | 작성시간 17.12.17 그렇게 큰 사고를요.!!?
    천운이십니다그려!
    현수님의 사려깊은마음씨는
    겜 하면서 슬적슬적 느끼곤 했습니다.
    눈치밥좀 마니매니 먹다보니 눈치하난
    빠릅니다.
    멋진 남이죠 랭보님~
    웃음보따리 지숙님도 속깊은 여인내이구요.
    암튼 고생 많이 하셨네요.
    앞으로 운동 마니매니 하셔서 더 튼튼한 몸 만드시고 즐건시간 보내시길~
  • 작성자김은정 | 작성시간 17.12.17 미소만큼이나 글 솜씨가 좋으시네요 ㅎㅎ
    부부가 서로 좋아서 하는 운동이 있다니는게
    엄청행운이라는 생각이들어요
    두분이서 항상 밝게 웃으시면서
    탁구치는거보면 부럽더라구요 ~~
    항상 응원합니다
    홧팅!!!!!!!
  • 작성자딩가딩가 | 작성시간 18.01.01 깊고..높고...넓은 생각...형님의 마음...그중.,.으뜸은 나눔...형님과같이할수 있어 행복합니다..새해복 많이 가져가세요..
  • 작성자단아 | 작성시간 18.01.13 글을 참 잘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지난정모때 조별리그 1등을 랭보님한테 막혀서...2등.
    자유시간에 잠깐 함께 연습했는데 착착 잘 맞으니 정말 재미있었답니다.
    다음에 만나면 한게임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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