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는 방식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
누구나 어릴 적에 이런 말 한번쯤 해봤지 싶다. 훌륭한 사람이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판사·검사·변호사·의사·교수·고위 공직자 등의 직업군을 갖다 붙였을 것이다. 나의 장래희망은 이들과 달랐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죄도 짓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무결점일 거라는 생각에는 이의가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들은 철학의 영향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죄를 짓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주장했다. “정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정의롭게 행위하며, 만약 어떤 사람이 부정의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그가 정의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저지르는 악행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지라고 하는데, 나는 지식인들이 악행은 어디 갔던지 부정의한 일을 저지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 예로, 내가 지금까지 목격한 바로는 그 어떤 변호사도 의뢰인에게 소송에서 질 거라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 법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볼 때도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데, 변호사는 무리하며 소송을 대행했다가 패소하면 그 뿐, 미안하다는 말도 안 했다.
지난 해 갑자기 기침이 심해져 병원들을 찾았는데 차도가 없어 한의원까지 갔다. 삼십 년 넘게 부정기적으로 잔기침을 해 이번에는 뿌리를 뽑고자 찾은 거였다. 일주일에 한번 치료를 받고 비싼 돈 들여 한약까지 먹었는데도 호전되지 않았다. 양방과 한방을 병행코자 호흡기와 순환기를 함께 보는 병원을 찾아갔다. 농부처럼 순박해 보이는 의사에게서 들은 병명은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뜻밖이었다. 비로소 나는 오랫동안 내 몸을 괴롭힌 병을 자세히 복기했고 역류성 식도염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동안 내가 방문했던 여러 병원과 한의원은 내 병명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내가 그 한의원을 찾아간 것은 호흡기 질환을 고친다는 홍보물을 보고 전문병원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광고는 그럴 듯한데 오진까지 했다. 하긴 남성의 정력에 집중하던 한의사들이 비아그라가 출현하자, 하루아침에 호흡기·순환기·피부미용·탈모·다이어트 등 다양한 종목의 전문의로 변신했다.
우리 주변에는 다이어트·탈모·작은 키 같은 것들과 관련해 수많은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관련 상품들에 대한 성공담이 빼곡하다. 나도 아이의 작은 키를 늘려보겠다고 여러 가지 키 성장 프로그램들을 구입했지만, 효과를 본 것은 하나도 없다. 거액을 주고 산 키 성장 장비는 내가 스트레칭용으로 쓰다가 중고로 팔아버렸다. 당시 그 회사에 항의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들이 “그래서, 아드님의 키가 전혀 크지 않았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뭐라 답할 것인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품들이 이제까지 버젓이 팔리는 이유를 생각했다. 효과를 보지 못한 소비자들은 상품의 불량을 따지기보다는 자신의 어떤 잘못 때문에 광고에서처럼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제품을 파는 회사들은 실패의 원인을 소비자에게서 찾도록 교묘하게 포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식품 A를 판매하는 회사가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칼로리 계산해서 먹기, 러닝머신 스피드 6에 놓고 30분 이상 걷기, 금주하기, A 먹기"의 조건을 제시했다. 살이 빠지는 요인은 적게 먹고, 시속 6킬로미터로 30분 걸으면서 땀을 빼고 금주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A를 먹지 않아도 그 외 것들을 시행하면 대개 효과를 본다. 적게 먹고 땀이 나도록 걷고 금주를 하기란 쉽지 않다. 다이어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광고회사는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홍보하면서 A 먹기를 권한다. 실패할 게 분명한 다이어트를 위해 비싼 돈 들여 여전히 A를 구매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도 유명 연예인처럼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품을 개발하는 데 대학 교수들도 일조한다. 소비자를 호도하기 위해 저명한 대학 교수들이 나선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해보지 않고 검증되지도 않은 이론들을 사회에 적용하고 정책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수많은 교수들이 정치권력에 줄을 서고 자기 이론을 정책으로 실행시키고자 여념이 없다. 실패했을 때 일어나는 사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때쯤이면 그들은 ‘떴다방’처럼 퇴장해 교수로 돌아가서는 잘 먹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연전에 저명한 출판전문가인 K씨와 이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 이익과 프레임, 취미생활 이런 거죠. 해서 맞으면 기분이 좋고 안 맞으면 그만이고요.” 내가 되물었다. “그런 프레임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입는 국민들은 억울하지 않을까요?” 그는 웃으면서 순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국민들은 그런 것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았다 해도 집단으로 저항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나는 세상을 영리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속이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속이는 데에는 아주 효율적인 단어들이 있는데, 가령 소통·인권·평화·분배·평등 같은 것들이다. 대중은 이런 단어들만 들어도 구원자가 왔다고 흥분하면서 속기 시작한다. ‘속이기’가 성공하는 까닭은 대중이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속을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진정성 있는 태도만 보여줘도 속아 넘어간다. 친구에게 커피 한 잔 사지 않고 절약하는 어느 연예인을 보면서 사람들은 많이 벌지 못하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서 그런 줄 알았다. 그의 드러난 속살은 달랐다. 엄청 비싼 아파트에 벤츠 에스클래스를 타고 다녔다. 연예인의 겉모습은 인기를 얻기 위한 허상의 캐릭터이다.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속을 대상을 찾아 나선다.
사람이 죄를 짓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대답과 상관없이 이후 나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훌륭한 사람은 적고 속이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잘 속이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
- 김은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