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문』 5월 호 월평
<체험의 숙성과 성찰의 깊이: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인생의 비의(秘義)>
수필은 한 존재가 통과해온 시간의 무늬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복기(復記)하는 것만으로는 수필의 향기가 완성되지 않는다. 수필의 참된 가치는 박제된 체험을 현재의 사유로 불러내어, 그 속에 숨겨진 생의 비의(秘義)를 발견하고 의미의 새살을 돋게 하는 데 있다. 즉,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보편적인 삶의 통찰로 치환될 때 비로소 한 편의 수필은 독자의 가슴에 단단한 마디로 남게 된다.
이달의 수필 스무 편을 마주하는 일은 스무 개의 인생 정원을 거니는 것과 같았다. 어떤 정원은 화려한 조경으로 눈을 즐겁게 했고, 어떤 정원은 투박하지만 깊은 흙내음으로 발길을 붙들었다. 특히 이번 호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기다림’과 ‘인연’이라는 인류 보편의 화두를 자신의 생애와 결합해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 작품들이었다.
이달의 수필 중 가장 무게 있게 주목한 작품은 이규애의 「그늘막」이다. 이 작품은 도심 사거리의 ‘그늘막’이라는 일상적 사물을 매개로, 오십 년 세월을 함께해온 남편과의 인연과 삶의 궤적을 반추한다. 젊은 날의 회한과 노년의 깨달음을 교차시키며 삶의 굴곡을 다 지나온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진솔한 고백을 담았다.
나와 아이들이 평온한 날들을 보낼 수 있게 해주려고 그 사람은 모진 세파와 맞서 참고 견디느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의 처진 어깨와 굽은 등, 아픈 무릎과 얼굴의 주름살, 흰 머리카락이 생각나 콧마루가 찡했다. 남편의 그늘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편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고맙다기보다 더 큰 그늘을 만들어 달라고 투정 부렸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했다.
- 이규애, 「그늘막」 중에서 -
이 문단은 작품의 정서적 클라이맥스이자 화자의 내면적 성장을 보여주는 전환점이다. 사거리 건널목의 '그늘막'에서 남편의 신체적 쇠락(굽은 등, 주름살)을 유추하고, 그것을 다시 '미안함'이라는 도덕적 각성으로 연결하는 솜씨가 빼어나다. 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체험이 오랜 시간 발효되어 나온 진액이다. 작가는 그늘막의 녹색 지붕을 보며 비로소 가장으로서의 남편의 무게를 이해하게 된다.
삶의 갈림길에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는 하지 말자. 늘 최선을 다했으니 그러면 족하다. 이제 해가 기울면 뜨겁던 햇살도 사그라지고 그늘막 안이 한결 시원해질 것이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지나가고 편안한 날이 오듯이 말이다. 지나가는 차들이 멈추고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다. 잠시 햇빛을 가려준 그늘막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건널목을 건넌다.
- 이규애, 「그늘막」 중에서 -
이규애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으나 정갈하고 담백하다.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를 하지 말자”는 다짐은 수필이 도달할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정점이다. 작가는 인생의 건널목에서 잠시 멈춰 서서 과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다시금 현실의 길을 건너갈 힘을 얻는다. 사물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인문학적 성찰로 승화되는 이 지점은 독자에게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 특유의 정직한 문체는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생의 철학으로 붙들어 매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로 주목할 작품은 김영희의 「거꾸로 신은 신발」이다. 이 작품은 어린 자녀의 서툰 몸짓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을 통해 성장의 본질과 기다림의 미학을 설파한다. 작가는 아이의 어질러진 방과 거꾸로 신은 신발이라는 구체적 일상을 삶의 태도로 확장하며 사유의 밀도를 높였다.
대나무가 비바람과 뙤약볕을 견뎌내야 마디가 굵어지듯 아이도 서툴고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단단해진다. 어른의 보호망 속에서만 자란 대나무는 온실 속에서 웃자란 것과 다를 바 없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첫 바람에 휘청거린다. 거꾸로 신은 신발을 스스로 바로잡아 본 아이와 늘 바로 신겨진 아이는 훗날 전혀 다른 단단함으로 세상 앞에 선다. 그 모든 서툼이 단단한 자아의 벽돌이 된다.
- 김영희, 「거꾸로 신은 신발」 중에서 -
이 대목은 수필의 ‘의미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거꾸로 신은 신발’이라는 사소한 결핍에서 ‘단단한 자아’라는 존재론적 결실을 이끌어낸다. 특히 대나무의 마디와 온실 속 성장을 대비시킨 비유는 수필의 사유적 깊이를 더한다. 작가는 아이의 실수를 고쳐주고 싶은 조급함을 누르고, 아이가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과정을 “온몸으로 버티는 적극적인 사랑”이라 정의한다.
나는 전략을 바꿨다.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거꾸로 신은 신발을 그냥 바라보는 일에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속으로 ‘그냥 둬, 그냥 둬’ 주문을 외우며 두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온몸으로 버티는 일이었다.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 김영희, 「거꾸로 신은 신발」 중에서 -
작가는 기다림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버티는 적극적인 인내’로 재정의한다. 부모로서 아이의 서툰 시간을 대신 가로채지 않고, 그 고단한 시간이 아이에게 ‘자기만의 마디’를 만드는 과정임을 인정하는 대목에서 독자는 깊은 공감을 얻는다. 비록 후반부에서 주제를 설명하는 방식이 다소 직접적이라는 아쉬움은 남으나, ‘거꾸로 신은 신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에서 뽑아낸 ‘기다림의 철학’은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명확한 종결어미의 사용은 작가의 사유에 단단한 신뢰를 부여한다.
이번 호의 수필들을 읽으며 다시금 확인한 것은, 좋은 수필은 기교가 아니라 삶의 무게로 쓰여진다는 사실이다. 문장의 세련미나 지적인 탐구도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겠으나, 인생의 진액이 묻어나는 진솔한 고백 앞에서는 그 힘이 더욱 선명해진다. 수필은 결국 작가의 삶이 문장 속에 얼마나 깊이 투항했느냐에 따라 그 울림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삶의 굴곡을 외면하지 않고 그 정면을 응시하며 길러 올린 문장들은 기교를 넘어서는 숭고함을 지닌다.
5월의 햇살 아래서, 스스로 고쳐 신은 신발을 신고 묵묵히 자신의 그늘을 일구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들이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가슴으로 써 내려간 진솔한 문장들이 독자들의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삶의 문양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박종희 essay022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