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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장통/ 진해자

작성자박종희|작성시간26.06.15|조회수22 목록 댓글 0
아버지의 연장통

진해자

석공의 손에 들린 메가 허공을 향하여 솟구친다. 순간 석공의 눈이 번쩍이며 치켜든 팔과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석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커다란 바위를 향하여 거침없이 내리친다. 집채만 한 바위가 금이 가고 반으로 쪼개질 때까지 메질은 계속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야산에 자주 갔다. 아버지의 일터는 곧 나의 놀이터였다. 돌을 깨고 다듬어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자랐다. 커다란 돌에 정으로 홈을 파고, 그 홈에 비김쇠를 끼워 수없이 메질한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던 돌덩이가 신기하게 두 동강으로 갈라진다. 두 동강 난 돌을 다시 깨고 정교하게 다듬는다.

주위가 어둑해지도록 돌 깨는 소리는 귓전에 맴돌았다.
돌을 다루는 일에 지식이 없는 아버지가 누구에게 배웠을 리 없다. 낙차落差의 힘을 이용하여 부수고 다듬으며 본능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커다란 바위를 깨트리고 큰 돌을 기술적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작은 체구의 아버지가 천하장사처럼 보였다. 돌 일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공들였지만,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좌절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손에서 연장을 놓은 적이 없다. ‘쩡쩡’ 돌 깨는 소리는 어둠을 밀어내는 새하얀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을 잡은 손이 돌처럼 딱딱해져 갔다. 젊은 사람도 들기 힘든 무게를 매일 감당하다 보니 굳은살이 박여 점점 거칠어졌다. 어쩌면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의 마음에도 굳은살이 박였을지 모른다. 짓무르고 터지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하며 견뎌온 시간이 낡은 연장통처럼 예스럽고 묵직하다.

아버지의 등에는 늘 연장통이 지어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사각 연장통은 삶의 일부였다.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다. 모양도 다르고 이름도 달랐지만, 어느 것 하나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먹줄, 정, 비김쇠, 메 등 대부분이 쇠붙이로 되어있어 무겁고 투박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돌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을 두 다리는 성할 날이 없었다. 비틀거리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잘못된 망치질에 손가락이 뭉개지고 어떤 날은 무너지는 돌무더기에 짓눌려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연장통은 다섯 식구의 밥줄이었다. 부서지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연장을 들었다. 무거운 쇳덩이가 하늘로 치솟을 때마다 어린 자식의 눈동자도 따라 올라갔다. 하루도 놓을 수 없는 석공 일은 남은 생의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젊은 시절 품었던 꿈과 용기와 패기를 낡은 연장통 속에 꼭꼭 담아두고 자식을 위해 참고 견디는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마루에 대자로 누워계셨다. 약주를 과하게 했는지 많이 취해있다. 인기척을 느끼고 일어나서는 어린 나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내심 무서웠지만, 조그만 손으로 아버지의 등을 토닥였다. 어린 마음에도 괴로움에 아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왔다. 부모님의 대화에서 낮에 나를 끌어안고 흐느꼈던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는 이웃 마을 지인의 소개로 일을 도거리로 맡고 몇 달을 쉬지 않고 일했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 그 집 사정으로 공사대금을 거의 못 받게 되었다. 재료비와 인부들 인건비도 계산해야 하는데 고지식한 아버지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아버지의 속앓이는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라는 술잔에 삶의 고통과 우울과 불안을 따르고 단숨에 들이키곤 했다. 돌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집을 짓고, 울타리를 쌓고, 산소 주위에 담을 놓는 일까지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돌을 한참 쌓다가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허물고 다시 쌓는다. 그런 분이 일한 대가를 받지 못했으니 그 고통은 몇 배로 컸으리라. 발부리에 차이고 뒹구는 돌멩이처럼 아버지의 삶도 고달팠다. 무너지면 쌓고, 쌓으면 또 무너지고 그렇게 아버지의 시간이 지저깨비처럼 켜켜이 쌓여 갔다.

돌을 다듬을 때 떨어져 나오는 부스러기나 잔 조각을 지저깨비라 한다. 쓸모없다고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아버지는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건 없다며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돌을 쌓을 때 생긴 공간을 막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버리면 쓸모없는 것이지만, 잘 쓰면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야망과 꿈이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닳아지고 깨지며 지저깨비가 되었지만,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힘주어 말하는 것 같다.

한 번 쪼개져 나가면 다시 붙일 수 없는 게 돌 작업이다. 조금만 실수해도 그 돌은 쓸 수 없게 된다. 힘들게 공들였지만 버려야 할 때면 아버지의 속도 산산이 부서졌다. 그런 연유로 돌을 깎고 다듬는 순간은 여느 때보다 신중했다. 온 정신을 가다듬고 서두르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식사하는 것도 잊은 채 열 번이고 백번이고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바닷가에 있는 자갈이 부딪치고 멍들며 조금씩 윤이 나는 것처럼, 시련을 참고 이겨낸다는 것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난 곳을 수없이 쳐내는 돌 작업 같다. 모난 생각과 비뚤어진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정교한 작품을 위해 백번 넘게 망치질하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공들이지 않으면 뛰어난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돌 작업을 할 때만큼은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였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무렇게나 툭툭 놓아도 제 있을 자리에 있으면 아름답게 보이는 오래된 돌담 같다.

고개 들어 멀리 있는 야산을 바라본다. 젊은 시절 무거운 메를 들고 큰 바위를 향해 힘차게 내리치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버지는 닳아버린 연장통을 저무는 해를 등지고야 겨우 내려놓았다. 주인을 잃은 연장통 위로 세월의 더께가 자꾸만 쌓여 간다. 아버지가 옆에 계셨으면 굳은살 박인 손에 가만히 입을 맞춰 드리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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