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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나무/ 김애경

작성자박종희|작성시간26.06.17|조회수23 목록 댓글 0
얼굴나무


김 애 경




미술관에서 한 자화상 앞에 섰다동강이 난 척추에 신전 기둥이 박혀있다숭고한 여인의 육체에는 쇠못들이 무수히 꽂혀있다멀쩡한 곳은 화가의 얼굴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늘 꿈을 꾸며 살아간다자신에게 결핍된 그 무엇을 충족시켜 줄 이상향인 그곳을 갈망한다그 이상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자화상 여인프리다 칼로의 그곳은 아이의 소리가 나는 평범한 가정이었다하지만 세 번의 잉태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좌절되었다화가는 다섯 살 때 소아마비로 다리에 장애를열여덟 살 때 전차 사고로 불구의 몸이 되었다그녀의 어머니가 침대에 붙박이처럼 누워 있는 딸의 머리 위에 거울을 달아주었다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화상을 그리며 내면의 척추를 스스로 세워나갔다.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거울을 본다그런데 온전하게 내면까지 비추어 보지 못해서일까창작이란 대롱 끝에 겨우 매달려 사는 느낌 이다중년을 넘긴 나이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괜한 말이 아닐 것이다이 기회에 있는 그대로 나를 한 번 바라보자자화상과 같은 큰 명제가 아니더라도그냥 나를 제대 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도화지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거울을 들었다연필로 둥글게 얼굴을 그려 넣었다자식들도 곁에 없고팔다리 같던 부모님을 여의고 나니세상 혼자인 듯 외롭다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이 마치 커다란 오리알 같다허공에 둥둥 떠 있는 알을 목으로 받쳐주었다그러자 흡사 나무 한 그루가 대지 위에 서 있는 형상이다. ‘미루나무나 자작나무처럼, ‘얼굴나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얼굴나무’ 한 그루가 고독하게 서 있다해마다 나이테 하나씩 보태고 옹이 하나 더했을 그런 나무벼락과 가뭄과 홍수에 시달린 흔적팔다리 잘린 흔적병충해를 극복해낸 순간도 남아 있다.


무슨 나무일까어떤 나무일까?
막상 자신의 삶을 마주하려니 두려워진다그리기를 멈추려다 용기를 내어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먼저 양쪽 눈썹 자리를 헤아려 보았다영장류에만 있다는 눈썹양가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든다언제나 균형 있게 잘해드렸던가이제 와서 부족한 부분에 아무리 숱을 채워 넣어 봐야 무슨 소용인가입버릇처럼 물 흐르듯 살거라순하게 살거라.” 하시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하다미간에 천자를 그리고냇물이 흐르듯 코로 갔다콧등을 먼저 그린 후양쪽 날개를 붙이고 콧구멍을 그렸다콧등에 명암을 주어 오뚝 세웠다코에 유독 신경을 쓰고 있다코는 보통 자존심이라 하지 않던가명암을 손끝으로 뭉갰다서 푼어치 남아 있는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살아야 자식들과 원만할 것 같다.


서툰 솜씨보다 힘든 건 감정의 변화다얼른 양 눈의 형태를 선하게 둥글렸다눈동자를 그려 넣었다온갖 편견 덩어리인 나는 진정으로 마음의 창을 열지 못할 때가 많다눈꺼풀의 편견을 털어내는 심정으로 동자에 빛을 넣었다닦인 창으로 주변의 얼굴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좋은 인연들도 있었다두렵게만 느껴지던 그림에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을 그릴 차례가 되었다입꼬리를 좌우로 움직여 보고 크게 벌려봤다자르고 씹는 역할을 하는 치아와 혀가 사이좋게 놓여있다언제나 문제의 발단은 공격적인 이빨보다 부드러운 혀에 있었다입이 근지러워도 한번 꿀꺽 삼키면 만사 좋을 것을항상 혀가 먼저 움직여 사달이 났다.


그래도 나는 대합처럼 꾹 다문 입보다 벌린 입이 좋다다문 입은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상처를 곪아 터지게 만들지 않던가입을 크게 벌려 괴로움도 털어내고고민도 말해주고사랑도 표현하고감사의 말도 전하면 관계라는 톱니바퀴가 훨씬 더 수월하게 굴러갈 것 같다.


사랑해!”, “감사해!”의 모양대로 입 모양을 그려 넣었다. “고맙다!”라고 하니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용서해줘!” 쏙 불거진 고 입술도 밉지 않았다같은 선을 몇 번이나 오간 덕분에 붕어 입처럼 두툼한 하트가 되었다입과 심장은 같은 계열인가 보다마음에 쏙 든다완성된 얼굴은 흡사 사내아이의 얼굴 같다내 안의 한 아이가 말을 건다말다툼 끝에 대충 짐을 싸서 나간 아들독립은 여건상 아 직 때가 이르다고 언성을 높였었다세밀하게 연필이 스칠수록 점점 낯익은 얼굴이 되어간다세파를 건너느라 얼굴 곳곳에 힘든 상처를 담고 있다눈 밑의 그늘은 사회 적응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이리라선하게 처진 눈이 외로워 보인다내가 불안하고 슬프니그 기운이 얼굴에 녹아든 것일까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하 는데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하지만 자화상은 자신이 투영한 이상향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너무 외로워하지 말자어두웠던 지난 세월을 작은 씨앗의 세월이라 해두자그 씨앗을 대지에 심는다딱딱한 껍질을 뚫고 싹을 틔우면땅속 깊이 잔뿌리를 밀어 넣어 물의 입자를 끌어올리자그 입자를 잔가지 끄트머리까지 보내 우듬지를 하늘 높이 밀어 올리며하루하루 설레는 꿈을 꾸어 보자무슨 꽃을 피울 것인가무슨 열매를 맺을 것인가.


창문으로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가 보인다저마다 개성 있는 얼굴나무’ 같다질주하는 도로 양편에서 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멋을 내는 나무들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나붓나붓하다바람도 살랑인다둥지도 있고 새들이 날아다닌다각자 제 소임을 다하는 얼굴나무의 푸른 맥박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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