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나무 김 애 경 미술관에서 한 자화상 앞에 섰다. 동강이 난 척추에 신전 기둥이 박혀있다. 숭고한 여인의 육체에는 쇠못들이 무수히 꽂혀있다. 멀쩡한 곳은 화가의 얼굴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늘 꿈을 꾸며 살아간다. 자신에게 결핍된 그 무엇을 충족시켜 줄 이상향인 ‘그곳’을 갈망한다. 그 이상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자화상 여인, 프리다 칼로의 ‘그곳’은 ‘아이의 소리가 나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세 번의 잉태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좌절되었다. 화가는 다섯 살 때 소아마비로 다리에 장애를, 열여덟 살 때 전차 사고로 불구의 몸이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침대에 붙박이처럼 누워 있는 딸의 머리 위에 거울을 달아주었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화상을 그리며 내면의 척추를 스스로 세워나갔다.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거울을 본다. 그런데 온전하게 내면까지 비추어 보지 못해서일까. 창작이란 대롱 끝에 겨우 매달려 사는 느낌 이다. 중년을 넘긴 나이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괜한 말이 아닐 것이다. 이 기회에 있는 그대로 나를 한 번 바라보자. 자화상과 같은 큰 명제가 아니더라도, 그냥 나를 제대 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도화지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거울을 들었다. 연필로 둥글게 얼굴을 그려 넣었다. 자식들도 곁에 없고, 팔다리 같던 부모님을 여의고 나니, 세상 혼자인 듯 외롭다.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이 마치 커다란 오리알 같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알을 목으로 받쳐주었다. 그러자 흡사 나무 한 그루가 대지 위에 서 있는 형상이다. ‘미루나무’나 ‘자작나무’처럼, ‘얼굴나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얼굴나무’ 한 그루가 고독하게 서 있다. 해마다 나이테 하나씩 보태고 옹이 하나 더했을 그런 나무. 벼락과 가뭄과 홍수에 시달린 흔적, 팔다리 잘린 흔적, 병충해를 극복해낸 순간도 남아 있다. 무슨 나무일까? 어떤 나무일까? 막상 자신의 삶을 마주하려니 두려워진다. 그리기를 멈추려다 용기를 내어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먼저 양쪽 눈썹 자리를 헤아려 보았다. 영장류에만 있다는 눈썹. 양가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균형 있게 잘해드렸던가. 이제 와서 부족한 부분에 아무리 숱을 채워 넣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입버릇처럼 “물 흐르듯 살거라. 순하게 살거라.” 하시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하다. 미간에 천川자를 그리고, 냇물이 흐르듯 코로 갔다. 콧등을 먼저 그린 후, 양쪽 날개를 붙이고 콧구멍을 그렸다. 콧등에 명암을 주어 오뚝 세웠다. 코에 유독 신경을 쓰고 있다. 코는 보통 자존심이라 하지 않던가. 명암을 손끝으로 뭉갰다. 서 푼어치 남아 있는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살아야 자식들과 원만할 것 같다. 서툰 솜씨보다 힘든 건 감정의 변화다. 얼른 양 눈의 형태를 선하게 둥글렸다.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온갖 편견 덩어리인 나는 진정으로 마음의 창을 열지 못할 때가 많다. 눈꺼풀의 편견을 털어내는 심정으로 동자에 빛을 넣었다. 닦인 창으로 주변의 얼굴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좋은 인연들도 있었다. 두렵게만 느껴지던 그림에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을 그릴 차례가 되었다. 입꼬리를 좌우로 움직여 보고 크게 벌려봤다. 자르고 씹는 역할을 하는 치아와 혀가 사이좋게 놓여있다. 언제나 문제의 발단은 공격적인 이빨보다 부드러운 혀에 있었다. 입이 근지러워도 한번 꿀꺽 삼키면 만사 좋을 것을, 항상 혀가 먼저 움직여 사달이 났다. 그래도 나는 대합처럼 꾹 다문 입보다 벌린 입이 좋다. 다문 입은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상처를 곪아 터지게 만들지 않던가. 입을 크게 벌려 괴로움도 털어내고, 고민도 말해주고, 사랑도 표현하고, 감사의 말도 전하면 관계라는 톱니바퀴가 훨씬 더 수월하게 굴러갈 것 같다. “사랑해!”, “감사해!”의 모양대로 입 모양을 그려 넣었다. “고맙다!”라고 하니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용서해줘!” 쏙 불거진 고 입술도 밉지 않았다. 같은 선을 몇 번이나 오간 덕분에 붕어 입처럼 두툼한 하트가 되었다. 입과 심장은 같은 계열인가 보다. 마음에 쏙 든다. 완성된 얼굴은 흡사 사내아이의 얼굴 같다. 내 안의 한 아이가 말을 건다. 말다툼 끝에 대충 짐을 싸서 나간 아들. 독립은 여건상 아 직 때가 이르다고 언성을 높였었다. 세밀하게 연필이 스칠수록 점점 낯익은 얼굴이 되어간다. 세파를 건너느라 얼굴 곳곳에 힘든 상처를 담고 있다. 눈 밑의 그늘은 사회 적응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이리라. 선하게 처진 눈이 외로워 보인다. 내가 불안하고 슬프니, 그 기운이 얼굴에 녹아든 것일까. 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하 는데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하지만 자화상은 자신이 투영한 이상향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너무 외로워하지 말자. 어두웠던 지난 세월을 작은 씨앗의 세월이라 해두자. 그 씨앗을 대지에 심는다. 딱딱한 껍질을 뚫고 싹을 틔우면, 땅속 깊이 잔뿌리를 밀어 넣어 물의 입자를 끌어올리자. 그 입자를 잔가지 끄트머리까지 보내 우듬지를 하늘 높이 밀어 올리며, 하루하루 설레는 꿈을 꾸어 보자. 무슨 꽃을 피울 것인가. 무슨 열매를 맺을 것인가. 창문으로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가 보인다. 저마다 개성 있는 ‘얼굴나무’ 같다. 질주하는 도로 양편에서 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멋을 내는 나무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나붓나붓하다. 바람도 살랑인다. 둥지도 있고 새들이 날아다닌다. 각자 제 소임을 다하는 ‘얼굴나무’의 푸른 맥박이 전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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