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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복숭아문학상 우수상/황도와 잉태의 신비 / 김화순

작성자박종희|작성시간26.06.11|조회수31 목록 댓글 0

대전으로 내려오는 KTX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러 날 며느리의 해산 뒷감당으

로 피곤했으나 자리에 앉아서도 이내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자니 말똥거리는 첫손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버스가 출발하여 한참을 갔을 무렵 뒤쪽에서 차멀미를 하는지 젊은 여자가 구토를 시작했다.

“그러게 내가 그만 먹으라고 했잖아.”

젊은 남편은 아내를 나무라며 토한 분비물을 치우고 있었다. 내가 뒤돌아 자세히 보니 젊은 여자가 구토를

하는 건 임신으로 인한 차멀미가 분명했다. 여자는 이렇게 토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거의 초죽음에 이

르고 있었다. 버스안의 사람들은 여자의 구토에 하나같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런 부부의 행동에

서 나는 주마등처럼 스치는 옛일에 살며시 웃음 지었다. 내가 젊어 아들을 임신했을 때의 일이었다.

“여보, 할아버지 제사가 내일 모레인데 공휴일이 아니니 당신 혼자서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집에 갈 때는

황도 복숭아 통조림 한 통 준비하는 것 잊지 말고요.”

 

남편은 고향인 대전을 떠나 서산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할아버지 제사에 나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물론 지금처럼 도로시설이 좋고 자가용이라도 있었다면 서산에서 대전까지 두어 시간 거리일 테지만

30여 년 전에는 네댓 시간은 족히 걸렸다. 결혼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으니 혼자서 시집

에 가기가 왠지 두려웠다. 그래도 결혼을 해서 처음 맞는 시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는 남편이 준비하라는 황도 통조림 한 통을 사가지고 들어갔다.

“그래도 윤재가 잘 가르쳐 줬구나. 네가 황도 통조림을 사온 걸 보니.”

시어머니께서는 몹시 흐뭇해하시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나는 그런 시집의 행태에 의문이 생겼다. 옛

날부터 복숭아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데 이 집은 무슨 일로 황도 통조림을 제사에 사용하는지…….

낮부터 준비한 음식으로 아버님께서는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하셨다. 마지막으로 황도 통조림을 땄는데 그

속에서 풍겨 나오는 복숭아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데 이건 마치 고문과 같았다. 노란 빛깔의 매끄러운 황

도의 몸매에서 풍기는 향 때문에 입안에는 어느새 침이 가득 고였다. 파블로프가 개를 이용한 조건반사의

실험에서처럼 이제는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올 지경이었으니 다른 일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시집

온 지 1년도 채 안된 새색시가 많은 시집 식구들 앞에서 황도 통조림을 먹겠다는 말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직 제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아가, 우리 집은 네 시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황도 통조림을 준비해놓고 제사를

지낸단다. 다만 상위에 올리지는 않고 이처럼 상 아래에 차려놓고서…….”

시아버님의 말씀을 듣자니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전에 어른이 좋아했던 음식을 차려놓는 게

더 실질적이라 생각했다.

‘얼른 제사만 끝나라. 그러면 내가 저 황도를 그냥…….’

그런데 그날따라 왜 그리 제사지내는 것이 더뎠던지……. 어느새 제사가 끝났다.

“음복들 해라.”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내 귀에 시아버지의 말씀이 들렸다. 나는 식구들이 먹을 국을 푸고 있었기에 얼

른 달려가 황도 통조림을 먹을 수 없었다.

“너는 국을 푸는 것이 왜 이리 깔끔치 못하냐?”

시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퍼 놓은 국그릇을 보니 미역 건더기가 국 그릇 가장자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이었다. 온 신경이 황도 통조림에 쏠려 있었으니 국을 푸는 것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식사

를 준비하는 동안 작은 집 시동생들이 황도를 집어 들더니 후루룩 마시는가 하면 노란 황도 덩어리까지 씹

어 먹는 것이었다.

“역시 술 먹은 후 숙취에 시달릴 때는 황도 통조림을 꼭 먹어줘야 한다니까”

결국 할아버지를 위해 내가 사왔던 황도는 모두 시동생들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순간 숨이 멎

는 것 같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푹 쓰러질 것 같았다. 정말 시동생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바보 같

은 나 자신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깟 것 먹고 싶으면 왜 시어머니께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는가? 시어

머니도 여자인데 임신한 내 마음을 헤아려 주었을 텐데……. 그날 저녁 어떻게 잠을 잤는지 전혀 생각이 나

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온통 복숭아만 떠다녔고 입에는 달콤한 황도 즙만 가득 고였다.

“조심해서 가거라.”

이튿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시댁을 나설 때 시어머니의 당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황도만 생각

날 뿐이었다. 나는 버스터미널로 가기 전 뛰다시피 하여 시장에 다다랐다.

“아주머니, 황도 통조림 한 통만 주세요.”

나는 깡통 따는 칼도 하나 샀다. 그리고 우선 가게에서 황도 한 통을 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그렇게 맛있는 복숭아 통조림은 일생에 처음 먹어봤다. 그리고 황도 통조림 하나를 더 사 봉지에 쌌다.

“새댁이 워낙 황도 통조림이 먹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하기야 뱃속에 애가 설 때처럼 먹고 싶은 것이 또 있

을 라고…….”

과일가게 주인은 내 심정을 이해해 주었다. 버스터미널에 와서 버스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대합실에서 나머

지 황도 한 통도 따 단숨에 해치웠으니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자 속이 울렁

거리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계속되는 구토

는 나를 초죽음으로 몰고 갔다. 황도를 살 때 싸준 비닐주머니는 오물로 가득했다. 차안에서 싸늘하게 쳐다

보는 시선에 주눅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계속된 구역질에 나 살기에 바빴다. 황도 두 통이 다 거꾸

로 넘어오고서도 구토는 끝나지 않았다. 서너 시간이 지나 서산에 도착할 때 쯤 울렁거리는 속이 겨우 진정

되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기어서 집에 닿아 남편 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게 어지간히 좀 먹지.”

남편의 그 한마디를 기억하면 지금도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나는 뒷좌석에서 계속 구역질을 하며 토하고 있는 젊은 여인의 심정을 나에 비추어 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지청구를 하는 남편이 꼭 예전 우리 남편을 닮은 것 같아 밉살스러웠다. 그녀의 토

사물이 더럽다는 생각도 잠시뿐 그 새색시가 무엇을 어떻게 먹었고 그 때 상황이 어떠했는지 궁금할 뿐이

었다. 거기다 여자라면 모두가 겪어야 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드리워진 신비가 아니던가! 그 때 황도

를 모두 토해냈다 해서 지금 황도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황도의 맛은 그 무엇도 따라갈 수 없

다. 복숭아로든, 아니면 통조림으로든, 황도의 과즙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그 뿐이 아니다, 그 때 태어난

아들이 지금 복숭아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아마 내가 그 때 먹은 황도 통조림 때문인 듯하다.

버스에서 내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가는 새색시의 뒷모습이 수십 여 년 전 나와 꼭 닮은 것 같아 무

척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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