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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흥문학상 / 어느 날, 다시 탈을 쓰고/김해자

작성자박종희|작성시간26.06.22|조회수20 목록 댓글 0
어느 날, 다시 탈을 쓰고
김해자


세월의 흔적만큼 탈위에는 먼지가 앉아있다. 입으로 불기에는 많은 양이어서 물수건으로 닦아 낸 뒤, 양쪽에 달린 줄을 머리 뒤로 돌려 묶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양반탈을 쓴 나의 모습이 보인다. 눈가에 주름 잡힌 얼굴로 미소 짓고 있다. 슬그머니 나는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통나무를 톱으로 잘라낸 뒤 어깨의 힘으로 조각칼을 밀어 나무를 요리하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푸름과 초록만 존재하던 쪽빛 세상이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감각이 싱싱했던 시간들이 탈속에서 흘렀다. 어느 날 만난 바람보다 작은 일들인데, 지독하게 아프게 느낀 길고도 짧았던 시간이었다.
그때는 둥근 통나무 그대로의 모습도 아름답다는 걸 알지 못했다. 사람의 힘과 날카로운 도구로 통나무를 깎아내고 파내어 다듬어야 온전한 작품이 되는 줄 알았다. 나의 삶도 그랬다. 긴장하고 포장해야만 소통이 되는 줄 알았다. 시간이 날 때 마다 탈방에 앉아 나무를 끌어안고 빚었다. 없는 시간도 억지로 만들어 탈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건 애정이 없는 것이란 걸 그때 알았다. 탈을 깎기 위해 설계를 하고 톱질을 하였다. 부네, 각시, 선비, 할매,······, 탈 이름을 익혔다.
얼굴에 그려지는 주름도 일정하게, 눈 꼬리 또한 정해진 틀에 맞아야 했다. 각시는 각시답게 선비는 선비다운 모습이어야 했다. 걸치고 있는 옷과 불리는 호칭에 따라 그 모습은 정해져 있고 그대로 깎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작업을 하면서 나도 내 모습을 포장하면 내가 원하는 호칭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비록 포장에 서툴러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상처가 나도 그것이 내 인생을 살찌우고 윤기 있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던 시간이었다.
결혼과 함께 탈과의 인연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내 손에서 태어난 여러 종류의 탈은 지인들에게 나의 소임을 다하는 것처럼 선물했다. 그리고 마지막 만든 양반탈은 내 청춘에 인연의 연결고리로 꾸린 짐 한쪽에 담았다. 내 사지의 어느 한 부분인 것처럼 소중히 하던 조각칼도 먼지 가득한 탈방에 그대로 두고 금방 돌아갈 것처럼 떠나왔다.
양반탈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신발장 위에서 팽개쳐져 있기도 했었고 때로는 현관 벽에 붙어서 집을 지키기도 했다. 어머니가 주술적 기능으로 해석하여 치우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것이 뭐가 중요한지 그냥 통나무 하나 현관에 자라고 있다 생각하면 되었을 것을. 아낌없이 준 것에 대해 마음을 거두는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그동안 탈을 깎듯이 매사에 모든 것의 모서리를 필사적으로 깎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햇살의 각도나 바람의 살랑거림에 조금 더 신경 쓰며 살았어야 했는데 나에게 드리우는 그늘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이름을 달고 태어난 모든 생명들에게 노래 한 소절 불러주며 싸리나무 담장을 한 작은 능선에 오르길 자주했어야 했다. 그런데 언제나 적당한 속도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허덕이기만 하였다. 그것이 책잡히지 않고 나를 잘 포장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잔망스런 세월이 다시 거울 속으로 들어온다. 케케묵은 먼지 속에 앉아 열심히 사포질하는 청춘을 바라본다. 귓전에 낡은 음악이 흐르고 자맥질하는 삶의 숨결이 들린다. 행복한 날들이었다. 싱싱한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짙은 그리움은 사람에 대한 집착이 있는 풍경이다. 물오른 나무에 핏물을 빼고 불을 피워 얼굴을 그을린다.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이다. 비록 숨 쉬는 것은 아니지만 탄생은 아름답다. 그리고 흘러간 시간은 말 못할 사랑처럼 가슴시리다.
거울 속에는 조선의 양반이 웃고 있다. 문명의 이기로 생의 껍데기는 기름 냄새 풍기지만 그가 꿈꾼 이상세계에 있는 듯 파안미소이다. 그 뒤로 한 발짝 물러나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다. 뒤돌아 볼 여유 없이 앞으로 달려온 양반의 모습을 한 나를 관찰하고 있다.
고독하다. 숙명처럼 앞에 놓인 삶이 두렵다. 양반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 과제가 태산처럼 느껴진다. 탈을 벗고 양반의 옷을 내려놓으려니 그 동안의 행적이 아쉽다. 포기하지 못한 명예욕과 물욕이 미련스럽게 나를 짓누른다.
어렵게 감정을 다스리고 있는데 마음의 섶에도 습관처럼 욕심이 찾아온다. 가슴언저리에 강물 같은 차가운 바람이 나를 할퀴는 듯하다. 다른 종류의 탈들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서, 유독 양반탈을 챙겨둔 것도 아마 남에게 인정과 대접받고 싶은 허망 된 위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욕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감정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스스로를 위로한다.
들고 지는 해의 수만큼 이제 나는 말랑해지고 싶다. 시간의 비탈진 언덕마다 출렁이던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다. 생의 가지가지마다 밤이슬내리면 맑은 수액 품었다가 붉은 꽃술 뭉실뭉실 피워 박처럼 조롱조롱 매달고 사는 질펀한 생을 꿈꾼다. 난무하던 호칭들 훌훌 털어버리고 한 점 바람처럼 능선의 결을 밟고 가다가 소실되는 풍경이고 싶다.
탈을 쓴 내 모습을 본다. 꼿꼿하게 세워 두었던 나의 모습이 비틀거리며 시간 속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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