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규애

작성자박순철|작성시간26.06.22|조회수18 목록 댓글 0

                                                                     수필가 이규애

 

새벽을 여는 금강 변은 늘 고요하다. 나는 사계절 내내 이 길을 걷는다. 봄날에 벚꽃잎이 흩날릴 때나 한여름 푸른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 때도, 가을 낙엽을 밟으면서도 걷는다.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강변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에 잠기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이 행복하다.

 

아파트를 벗어 나 강변으로 나오면 동쪽과 서쪽으로 갈린다.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느냐에 따라 주변 풍경과 만나는 사람이 다르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강변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싶어 소나무 숲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산길로 향했다.

 

숲 입구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얼굴의 땀을 부채로 식히면서 노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몇 시냐고 물었다. 시간을 알려 주면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밥하시려고요? 하고 묻는 내게 노인은 그렇다고 멋쩍게 대답하면서 황급히 아파트 쪽으로 사라졌다. 가족의 아침밥 걱정을 하는 노인의 뒷모습에 내 어머니도 저렇게 사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었을 때 어머니는 희망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섰다. 내 기억 속에 어머니는 늘 머리에 똬리를 얹어 보따리를 이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같으면 단단한 가방이라도 있었을 텐데, 당시엔 정사각형의 보자기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장사 보따리 속에는 옷이며 마른오징어, 잡화 그리고 곡식까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보따리에 우리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어, 어머니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도 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먼 길을 걸어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 날에도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떠올리면서 힘을 냈다고 하셨다.

 

쌀 두어 말보다 무거운 보따리의 무게가 어머니의 가슴을 누르고 허리를 굽게 했다. 얇디얇은 코고무신에 의지해 마을을 누비던 어머니는 무릎도 온전하지 못했다. 끼니를 거르며 발품 파느라 밤새 앓는 소리를 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보따리를 꾸렸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가 걷는 길의 무게를 몰랐다. 하지만 나이 들어 세월이 내 어깨에도 무거운 짐을 얹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가 걸어오신 고난과 역경의 길이 깊은 사랑의 길이었다는 것을. 그 길을 걸으며 어머니는 청춘을 다 바쳤고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자라났다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가 걷던 그 길은 단순히 장사를 하기 위해 걸어온 길이 아니라 희생과 사랑의 길이었다. 자식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준 길이었다. 어머니의 길은 평탄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숭고하고 위대한 길이었다. 이제 나는 어머니의 길을 기억하며 나의 인생길 또한 묵묵히 걸어가려 한다.

 

가끔 나는 어머니가 걷던 그 길을 찾는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그 길의 어느 한 모퉁이에 서본다. 그 길 어디선가 눈,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어머니가 보이는 것처럼 마음이 시려서다.

 

어머니가 내준 길을 생각하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한솔정에 올라 강 건너를 바라본다. 먼 길 위로 어머니의 발자취가 아스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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