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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살구

작성자도요새|작성시간26.06.20|조회수18 목록 댓글 0

개살구
김병환

개살구
노력해도
살구 될 수 없다

빛깔
좋으면 됐지
맛까지 닮으면

마음에
상처 입고
천수를 못 산다

대기업
눈치 보는
중소기업 사장

개살구
씹으면서
눈물을 삼키며

오늘도
그들 앞에
허리를 굽힌다


김병환 시인님의 <개살구>는 짧고 명징한 시어 속에 세상의 냉혹한 이치와, 그 속에서 버텨내는 인간의 애환을 날카롭게 포착한 수작(秀作) 입니다. ​겉보기에는 자연물 (개살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조와 소시민의 페이소스를 담아낸 깊은 통찰이 돋보입니다.

​빛 좋은 개살구 라는 속담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속이 빈 강정을 비판할 때 쓰입니다. 하지만 시인님은 이를 다르게 해석하십니다.
​빛깔 좋으면 됐지 맛까지 닮으면 마음에 상처 입고 천수를 못 산다"

​개살구가 진짜 살구가 되려고 아등바등 노력해 봤자 본질을 바꿀 수 없으니, 차라리 '빛깔이 좋은 것' 자체로 만족하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라는 태도입니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 상처받기보다, 자신의 한계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천수'를 누리는 지혜라는 역설적 위로가 마음에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허리를 굽혀야 하는 중소기업 사장의 처지를 '개살구'에 빗댄 것은 매우 탁월한 비유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사장(빛 좋은 개살구) 이지만, 실제 속내(맛)는 시고 떫은 눈물뿐인 그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개살구 씹으면서 눈물을 삼키며 오늘도 그들 앞에 허리를 굽힌다"
​중소기업 사장이 개살구를 씹는 행위는, 자신의 쓰디쓴 처지를 스스로 되새기며 인내하는 모습입니다. 비록 자존심을 굽히고 허리를 숙이지만, 이는 비굴함이라기보다는 지켜야 할 것 (기업, 직원, 가족)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 시대 모든 가장이자 소시민들의 숭고한 생명력으로 읽힙니다.

​김병환 시인님의 <개살구>는 화려한 수식어를 배제하고 담백하면서도 뼈 있는 어조로 쓰여, 읽고 난 뒤의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겉은 화려해 보이나 속은 쓰린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공감과 연민을 보내는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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