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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칼럼

[스크랩] 축구 대표팀 닥터 최주영

작성자싸커의 유혹|작성시간11.02.25|조회수92 목록 댓글 0

축구 대표팀 닥터 최주영
축구 대표팀의 몸과 마음을 책임지는 남자
조동진  TOP CLASS 기자
  지난 4월 1일 한국 대(對) 북한의 월드컵 예선전. 늘 그래왔듯 경기 시작과 함께 상암벌에선 90분간의 혈투가 벌어졌다. 벤치에 있는 모두가 살얼음 위를 걷듯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운 채 그라운드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들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다. 두꺼운 뿔테 안경에 긴 곱슬머리, 허리춤에 작은 가방을 멘 독특한 외모도 그렇거니와 벤치와 그라운드를 수없이 오가며 경기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자꾸만 그에게로 시선이 간다. 선수들이 태클에 걸릴 때면, 공중 볼을 다투다 그라운드에 내동댕이쳐질 때면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러곤 반사적으로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며 뛰쳐나간다. 그가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이내 마법이 시작된다. 조금 전까지 꼼짝달싹 못하고 바닥을 구르던 부상 선수들이 그의 손길 몇 번에 마치 꾀병이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를 내달린다.
 
  그는 월드컵을 세 번이나 치른 16년 경력의 백전노장. 김주성과 황선홍, 홍명보, 박지성 등 당대 최고 축구 스타는 물론이고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박종환과 이회택, 차범근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 명장들이 그와 함께했다. ‘어디선가 대표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총알처럼 나타나는 남자. 축구 국가 대표팀 닥터 최주영(57・축구협회 의무팀장) 씨다.
 
  축구 대표팀 닥터로 이름을 알리기 전 그는 중동지역 스포츠계에서 꽤 유명 인사였다. 1982년부터 10년간 카타르 배구 대표팀 닥터이자 스포츠의학자로 활동하며 중동 스포츠계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 스포츠 선수의 해외 진출이 쉽지 않던 1980년대 초. 그는 당시 탁구협회 부회장이던 한상록 씨의 주선으로 한국 1호 스포츠의학자 수출이란 기록을 남기며 카타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6년 5월 17일,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부상 중인 최진철, 박지성, 정경호, 최주영 코치,이을용 선수(왼쪽부터)가 가벼운 재활 훈련을 하고 있다.

  “물리치료를 전공하긴 했지만 스포츠의학은 모르는 분야였죠. 그때는 스포츠의학이란 용어도 없었고, 그런 분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젊은 호기에 가겠다고 해놓고 외국까지 나가 나라 망신시키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말해 카타르에서 제가 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비행기를 탔어요.”
 
  하지만 그의 적응력은 놀랍도록 빨랐다. 틈틈이 미국으로 날아가 스포츠의학을 배워 온 그의 부상치료와 재활치료 솜씨에 카타르 배구 대표 선수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접하면서 재미도 느꼈다. 여기저기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카타르 대표팀은 그를 붙잡아 두기 위해 “다른 곳보다 연봉을 10배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1991년 말, 카타르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생 사업이 커지면서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동생 사업이 곧 제 사업이라고 생각했기에 한국으로 돌아온 거죠.”
 
 
  월드컵에서 다친 발목으로 골 넣던 박지성 못 잊어
 
2008년 8월 8일, 김진규, 박주영(왼쪽부터) 선수가 친황다오 스포츠센터 스타디움 보조경기장에서 최주영 의무팀장과 함께 회복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3년 만에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업가 체질은 아닌 것 같다”며 “사업에 뛰어든 지 딱 1년 만에 땀 냄새나는 운동장이 그리워졌다”고 했다. 1994년, 그는 축구 대표팀의 팀 닥터가 됐다. “어느 날 김정남 당시 축구협회 전무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어요. 김 전무가 대뜸 ‘대표팀을 새로 구성하는데, 한국 축구를 위해 최주영 씨가 꼭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는 거예요. 기뻤지만 확답을 줄 수 없었어요. 사실 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에서 먼저 팀 닥터를 제의해 와 그리로 가기로 결심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는 축구 대표팀을 택했다.
  
  “알고 보니 김 전무에게 저를 추천한 사람이 제 스승인 석일헌 선생님이었어요. 스승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죠. 게다가 저는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합니다. 이게 제일 큰 이유예요.”(웃음)
 
  1994년 8월 축구 대표팀에 승선한 최주영. 그는 1995년 이후 벌어진 A매치(FIFA가 인정한 성인 국가대표 경기)에 단 한 게임도 빠지지 않고 현장을 지킨 유일한 축구인이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대표팀과 함께하며 가장 기뻤던 기억이 무엇인지 묻자, 망설임 없이 “2002년 포르투갈 전에서 (박)지성이의 골이 터진 순간”이라고 했다. 박지성의 골 이야기에 지금껏 나지막하던 그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올라갔다.
 
  “골이 딱! 들어가는 순간 와~ 정신이 없었어요. 우리가 골을 넣어서이기도 했지만, 그전 경기인 미국전에서 (박)지성이가 발목을 다쳤던 게 생각나서였어요. 경기 직전 발목에 붕대를 감아 주면서 ‘제발 더 심해지지만 말았으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발로 골을 넣은 겁니다. 제가 무덤에 들어가도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혹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지도 물었다. 목소리가 잦아들며 “왜 없겠느냐”며 입을 연다.
 
  “2004년이었죠. 독일 월드컵 예선 몰디브 원정경기에서 0대 0으로 비긴 걸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못잡니다. 결국 이 경기 때문에 명장 코엘류가 한국을 떠났어요. 몰디브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팀이 상대해도 어렵지 않게 이길 만큼 약체인데 한국에서 축구 제일 잘한다는 선수들이 단 한 골도 못 넣고 비겼습니다. 더 절망적이었던 건 경기 내용마저 몰디브가 나았다는 겁니다. 휴~”
 
  한숨을 몰아쉰 그가 다시 입을 연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단 전체가 공황 상태였어요. ‘우리 정말 경기한 것 맞느냐’고 되묻는 선수까지 있었습니다. 호텔과 비행기 안에서 선수단 전체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만큼 비참했습니다. 몇몇 선수들은 한국 언론과 팬들에게서 쏟아질 비난에 공항에 내리는 게 두렵다고 하더군요. 선수단 컨디션 조절과 심리적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저로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육체 부상보다 마음의 부상을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재활 치료에 마지막 단계인 심리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현대의학은 심각한 육체 부상까지 대부분 완치시키지만 마음까지 치료하진 못하더군요. 선수들은 부상을 당하면 약해져요. 시합을 두려워하죠. 신체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선수라도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부상 상태라는 게 눈에 보일 때가 있어요. 그 선수는 공을 두고 절대 상대와 경쟁하지 못합니다. 태클이 들어오면 멈추거나, 플레이를 포기하죠. 그 모습이 제 눈에 띌 정도면 코치진의 눈엔 더 이상 선수로서 가치가 없어진 겁니다. 자연히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는 그런 이유로 어린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부상으로 고통받던 선수들을 대할 때 그는 아버지가 아들 대하듯 애틋해진다. 그들 곁에 붙어서 장난도 치며 함께 생활한다.
 
  “선수들의 심리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부상을 당해도 늘 내 옆에서 나를 일으켜 줄 사람이 있다’는 걸 가슴속에 심어 주는 겁니다. 이 생각을 갖게끔 옆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안타까웠던 선수를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입에서 A씨의 이름이 나왔다.
 
  “그 친구가 고등학생일 때 처음 만났으니 제가 대표팀에서 만났던 가장 어린 친구였죠. 제 눈에는 천재였습니다. 저를 참 잘 따랐는데….”
 
  안타까움에 그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그는 16년이다. “축구 잘하세요?”라고 묻자, 얼마나 참았는지 크게 웃는다.
 
  “정말 못해요. 조기 축구회에 가입한 적이 있는데, 제가 대표팀에 있다고 감독이나 스트라이커 자리를 내줍니다. 난감하죠. ‘저 축구 잘 못해요’라고 하면 ‘아마추어랑 한다고 빼는 거냐’고 핀잔하고. 저는 축구의 전술이나 기술을 보는 게 아니라 선수들의 몸 상태만 집중적으로 살핍니다. 축구 좀 안다는 분이 저보다 더 전략을 많이 아시겠죠. 제가 제일 잘하는 게 공 주워 오는 거예요. 훈련장에서 저만큼 열심히 볼보이 하는 사람 없습니다.”(웃음)
 
  인터뷰 말미 그는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한국인에게 축구는 스포츠 그 이상이다. 때론 기쁨과 환희를, 때론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동시에 안겨 준다. 그는 그런 축구와 함께할 수 있어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며 웃어 보였다.
 
  사진 : 이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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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비전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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