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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도 안 한 중대장 거짓글로 훈장 도둑질.

작성자장태순|작성시간26.01.11|조회수115 목록 댓글 0

   참전도 안 한 중대장 거짓글로 훈장 도둑질.
                                                 장     태      순 
  백마부대 29 연대 수색중대에 재파월한 나는 1967년 12월 초, 연대 '특수 정찰대(1/9)'에 파견되었습니다.
  1968년 1월 초, 해체될 때까지 특정대는 철모 대신 작업모에 명찰, 계급장 부착 안 하고, 연대 정보과 지휘를 받아 정찰,
매복을 수시로 나갔습니다. 2월 초, 연대본부로 이동하면서 '박쥐 장거리 정찰대'로 확대(A, B팀) 개편되었습니다.                   
  A팀은 김상덕 중위(팀장), 허중회 중사(선임하사), 전복동 하사(1 분대장), 조갑석 하사(2 분대장), 무전병, 1/20로 편성되고,
B팀장은 이오현 중위였습니다. 3월 말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4월 초에 연대장을 비롯, 여러 참모진 참관하에 시범까지
보였습니다. 계급장, 명찰 안 붙이고, 작업모 또는 벙거지, 한 때는 베트콩 복장까지(미군 헬기 오인 사격받아 취소) 하며 연대
회의실에 가 연대장 훈시를 직접 받는 등 특혜를 받다 보니 신병들의 도에 넘치는 촌극을 벌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작전 때,
정보과 지휘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백마 6호 작전 때, 헬기 3대에 분승, 혼바산 서쪽 1000여 고지 됨직한 정상에, 착륙도 안 하고 랜딩 했습니다. 우측은 계곡
깊은 대정글인데, 좌측은 우리 키 보다 큰 억새풀이 끝이 없는  대평원이었습니다. 1967년 5월 11일 첨병은 총열로 억새풀을
젖혀 가며 전진했습니다. 전진하다 보니 3~4m 됨직한 바나나 밭이 장막을 치듯이 앞을 막아, 고랑을 타고 전진하니 지옥 같이
캄캄했습니다. 고양이들처럼 민첩하고, 기도비익 철저, 독립 가옥 발견했는데, 억새풀로 이엉을 엮어 뒤쪽만 가려 발견될
위기였지만 일촉즉발, 일사불란하게 완전 포위 상태에서 집중 사격, 괴멸시키고 첨병은 좌측, 나는 우측으로 제일 먼저
진입했습니다. 좌측 벽에 총걸이가 있어 내가 먼저 총을 발견했습니다.(당시 총 최초 발견자가 훈장 우선순위)
 *신문보도 전과; 소화기 6정과, 권총 1정을 비롯하여 수류탄 45발, 실탄 3762발, 마이샤오 진중일기등 문서 102 기타 302건,
특공대장 마이샤오와 그 일당을 전원 사살하면서도 아군은 피 한 방울 안 흘렸다는 것이 대단한 승전입니다.
 
  훈장 수여에 대한 소식은 전우회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무관심이다 가, 2016년 조선일보에 미국에서 파월 당시 전공을 세운
망인에게  훈장 수여한 보도를 보고, 국방부, 청와대 등 여러 곳에 훈장 청원글을 보냈습니다. 국방부의 당시 주월사에 일임,
종결되었다는 답변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미국은 2차 대전, 남북 전쟁 전공도 수훈하는데, 한국은 파월 당시 부당한 훈장 수여를
번복할 수 없다니, 너무 답답하고 어처구니없습니다. 특정대, 박쥐 장거리 정찰대 창설 멤버이고, 파월 선임, 상황 벌어졌을 때
제일 먼저 진입, 무기 최초 발견자를 감쪽 같이 속이고, 제일 졸병까지 표창했다니 황당하고 괘심 합니다.
  2023년 8월, 백마 파월 당시 상황을 '총구 앞에 피어난 전우애'에 기록, 책을 출판했습니다. 2024년 4월, 국방부 군사 편찬 연구
위원 모 박사가 인터뷰를 요청, 전쟁 기념관 4층에 가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습니다. 이분이 다행히 백마 6호 작전에 참전도
안 하고 새빨간 거짓글로 훈장 탄 내용을 보내줬습니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가짜 내용인 것이 우리는 A팀장 1, 2분대로 편성
되었는데, 동굴을 발견, 1개 조는 동굴 입구 접근, 2개 조는 L자형으로 배치, 우왕좌왕, 동굴은 구경도 못하고 독립 가옥 발견,
완전 포위, 집중 사격으로 섬멸했는데, 순전 가짜글로 훈장을 도둑질했습니다. 현역 당시 여러 가지 혜택, 예편 후에도 수당과
각종  혜택을 몽땅 받고도, 생전 전우회 모임에서 몇 번 해후했지만 단 한 번도 사과가 없었으니 너무도 분합니다. 
  김상덕 팀장은 2001년에 사망하고 조철헌 중대장은 2023년에 사망했습니다. 부도덕한 중대장은 사망하고, 나도 기껏 살아야
10년, 훈장은 날아갔어도 어느 정의의 사도라도 나타나 저 악랄한 중대장 충무훈장 삭탈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2000년, 가수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 '아시나요'에서 백마부대 특공대가 베트콩한테 전멸한 장면이 말썽이 되어 예비역들의
반대 시위로 부대 마크를 지우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대에서 올바른 역사 기록을 했더라면 반박도 용이했을 것입니다.
 
  1966년 7월 31일, 맹호 교차 1진으로 퀴논 도착, 8월 9일, 파월 최대의 전과를 올린 두코 전투에 밤새워 기동, 패잔병의
최후 발악을 잠재웠습니다. 21일 기지 청소하고 제일 마지막 헬기로 풀레이크 외곽에 철수했습니다. 맹호, 백마 랑데부 
작전인 '오작교 작전' 때는 첫날 20여 명 헬기로 후송 보내고, 마을 수색을 계속해도 민간인 피난 갔는지 동굴에 숨었는지
구경을 할 수 없었습니다. 1967년 4월 10일, 부비트랩 폭발로 3명 전사, 10명 중경상 발생, 절체절명 순간, 위생병과 소대장을
재빠른 응급조치로 생명을 연장시키고, 절반 밖에 안 남은 소대원을 안전지대로 인솔, 매복을 지휘했습니다. 계급은 상병
중참이었지만 계급장을 부착 안 할 때고, 2 분대장 대리 할 때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선임하사, 1 분대장 전사, 소대장, 3 분대장 후송, 화기분대장 신병.)
 
  특정대 활약하다 정찰대로 29 연대 전 지역을 다녔고, 맹호 당시 두코, 투이안, 원정 다닌 것을 합하면 사병, 하사관, 장교
통 털어 그 넓은 지역을 가장 많이 다닌 보병(사냥개)은 본인 일 것입니다.
  1972년 여름, 예비군 동원 훈련에 차출, 12박 13일, 홍성에서 경기도 이천까지 기동 훈련(기차이동)을 하고, 1973년 8월, 7일
간 동원 훈련할 때, 사회 초년생으로 생존경쟁 할 때라 경제적 피해는 물론 너무 고달팠습니다. 42세(출생신고를 2년 늦게 함)
에 예비군 끝내고, 민방위가 생겨 50세에 모두 마쳤으니 남다르게 국가에 충성했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서 차출, 선발, 시범,
모범에 걸리면 제일 고달픈 일입니다.
  국가의 근간은 상벌이 엄정해야 되고, 토사구팽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훈장 청원한 글 1.

훈장 청원한 글 2.

국방부에서 답변 온 글.

참전도 안 하고 훈장 도둑질한 중대장 가짜 글.

신문에 보도 된 글.

파월 당시 이동 경로.

베트콩 특공대(대장 마이샤오) 본부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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