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바치는 기원
박경석
곱게 단장하여 다가서는
당신의 밝은 체취
세월 조바심의 눈빛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지만
지금은 갈라진 산하
당신의 영혼 잃고 말았습니다
상속받은 천 년 역사의 장 찢기운
후손은 6월을 불태우고
상잔의 모진 상처 남겼습니다
강토의 허리에 철책 둘러
동족의 숨통 죄이고
지하에는 땅굴 빚어
속 가슴까지 뒤척이는 오늘은
차라리 비극입니다
당신의 유산을 간직하지 못하고
두동강낸 우리의 죄과는
표류하는 거센 물살에
내던진 겨레의 긍지였습니다
욕망의 화신으로 변한 당신의
착한 백성은 어제도 오늘도
제각기 탑 쌓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 명징한 당신의 훈도
다시 뜨거운 손길 내리소서
혼돈의 겨레 불쌍히 여기시고
지난날의 역사
통일 신라와 고구려의 기상
빛나는 고려 문화
이순신의 '殺身救國'
상속받은 그때의 자리에
돌아가게 하소서
마지막 교각을 붙들고
구원을 간구하는 심정으로
선진 통일 조국을 염원합니다
*2019년 새해 새 아침에
2P
끝자리 시
내 묘비 앞에서
박경석
나의 평생 신조인 '조국' '정의' '진리'
또한 도전과 성취 실패와 후회로 짜여진
내 젊은 시절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마치 마른 솔잎처럼 홀홀 타오르며
지난날의 가스등처럼 파란 불꽃 되어
조국이 부르면 달려간 전장 곳곳
목숨 아끼지 않았던 젊은 날
저 베트남의 정글에서까지 전공 세워
자랑스러운 열 한차례의 무공훈장
이제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다가오는 시간도 막을 수 없으리라
다만 어느 한순간에도 아무렇게나
허술히 흘러가지 않게 보람차게 살고 싶다
지난 시절의 광영 욕되지 않게 살아가리
그러다가 TV 버튼을 누르면
팔팔 살았던 화면이 일시에 꺼지듯
나는 그렇게 내 생애를 닫고 싶다
숱한 사선을 넘으면서도 용케 살아났구나
정치군인들의 시샘과 견제 잘 견뎌냈구나
참 성실한 정의로움으로 지새웠구나
그러나 이것 또한 지난 시간의 잔해일 뿐
나는 국립서울현충원 내 묘비를 다시 본다
17세의 육군소위 소대장 시절 6.25전쟁 평창전투에서 나는 인민군의 수류탄에 의해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이어서 인민군의 전장정리 과정에서 내가 너무 어려 사살을 면한 후 인민군 야전치료소에 후송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완쾌 후 탈출, 조국으로 돌아왔다. 훗날, 서울현충원에 내 이름의 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혹시 동명이인이 아닌가 해서 군번을 확인 하니 분명히 내 묘소였다. 거기에 무엇이 묻혔는지 나는 알 수 없다.(국립서울현충원 15묘역 730호 육군소위 박경석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