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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4대 영웅 선정의 진실 - youtube 4편

작성자박경석|작성시간22.02.14|조회수1,748 목록 댓글 1

  

 

                  한국전쟁 4대 영웅 선정의 진실

 

전쟁에는 영웅이 출현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영웅을 추대하라면 단연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이다. 어디 임진왜란뿐이랴, 우리나라는 반만년 동안 수 없는 외세의 침탈에서 그때그때 영웅이 나타나 나라를 지켰다.

한국전쟁, 우리는 6.25전쟁으로도 쓰인다. 역사상 가장 처참한 동족상잔은 한국전쟁일 것이다. 그 전쟁에서의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이 역사상 가장 큰 것으로 유추하기 때문이다.

1983년,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전역 후 전업 작가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나에게 중요한 과제가 줬다. 한국전쟁의 영웅을 부각해 그 영웅의 전기 소설을 집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그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KBS 1TV에서 3부작 드라마로 방영하겠다고 했다. 창군 이후 군부에 관한 홍보 프로젝트로서는 그 규모가 가장 컸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선배 장군들을 인사법까지 고치면서 임기를 단축해 60여 명을 예편시킨 데 대한 반대 여론을 누그러트리기 위한 유화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딴에는 선배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고 있다는 의도로 선심을 쓴 셈이었다.

처음에는 내심 마음이 내키지 않아 망설였지만 작가인 나에게 던져진 '미끼'로서는 욕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바른 군사(軍史)를 정립핳수 있고 나의 작품 세계를 넓히는 기회라고 생각해 받아들였다.

나는 우선 한국전쟁 4대영웅의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한간에 떠돌고 있는 4대영웅은 한강방어의 성공으로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김홍일 장군, 6.25 한국전쟁 초전에 춘천 전선에서 일시 적 저지에 성공한 6사단장 김종오 대령, 그 후 백마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운 김종오 장군 그리고 미군측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과 낙동강전선의 영웅 워커 장군이었다.

나는 단독으로 확정 할 수 없어 원로 장군들을 초청해 의견을 듣고 확정 하기로 하여 1군사령관을 역임한 이한림 장군, 2군사령관을 역임한 이병형 장군, 국방부전사편찬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박정인 장군과 함께 심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전원 이의없이 원안대로 4대 영웅을 선정,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알렸고 당국은 그대로 동의했다.

한국전쟁 4대영웅 선정 당시인 1983년 무렵에는 한국전쟁 참전 당사자가 거의 생존해 있었다. 특히 한국전쟁과 관계되는 중요 장성들 모두 건재했기에 사실 취합이 어렵지 않게 결론이 맺어졌다.

 

나는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내 의중을 알리고 이 가운데 김홍일 장군 전기 소설을 집필하기로 하였다. 집필에 착수한 지 3개월만인 1984년 10월 1일 '五星將軍 김홍일'을 서문당 출간작으로 완성했다. 김홍일 장군은 옛 중국군 유일한 정규군 중장으로 2성이었고 한국군 중장 3성을 함께 해 5성장군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나의 깊은 뜻은 지금까지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에 의해 독점됐던 4성장군 보다는 한 수 위라는 상징성을 역사에 각인하기 위해서였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군 장군으로 항일전에서 전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그 무렵 중국에서 귀환한 독립운동가에게는 거의 모두 장군으로 호칭되어 있을 때여서 정규군 장군과 구별하기 위한 내면의 의도도 있었다. 특히 6.25전쟁 초기 김홍일 장군에 의한 한강방어작전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고 미국의 군사 개입 또한 불가능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다음 해인 1985년에 당국에 내가 추천한 유현종 작가에 의해 한국전쟁 초 6사단장으로 춘천전투에서 적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김종오 대령, 그후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전보를 남긴 9사단장 김종오 소장을 묶어 '白馬高地'를 을지출판사에서 출간, 김종오 장군 전기소설을 당국에 제출됐다. 김종오 소장은 일본군 출신 유일 한국전쟁 영웅이다.

1985년 KBS 1TV는 박경석 원작 3부작 '五星장군 김홍일'을 3일간에 걸쳐 국군의날을 기해 골든 타임에 방영되었다. 편당 두 시간씩 무려 6시간의 대하드라마가 많은 국민이 시청하는 가운데 그해 최고 시청률 신기록을 남겼다.

다음 해에 유현종 원작 '白馬高地'가 역시 골든 타임에 KBS 1TV에서 방영했다. 한편, 맥아더 장군과 워커 장군은 영상 자료를 편집해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특히 김홍일 장군을 밟고 '새치기'로 4대 영웅에 끼어든 백선엽 장군의 경우 낙동강전선의 다부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마치 구국의 영웅처럼 알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자 한다. 낙동강 방어선은 총 길이가 240km에 달하며 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이 투입되었다. 바로 백선엽은 8개 사단장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의 공적 또한 8분지 1에 지나지 않았다. 낙동강 전선의 영웅은 세계가 공인한 불퇴전(不退轉)의 명성을 떨친 미 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이다. 낙동강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지켜 대한민국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의 아차산 기슭을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딴 '워커힐'로 명명하고 워커 장군의 동상과 워커힐 호텔을 건립, 워커 장군의 무공을 기념하게 했다.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가로채다니 '천인공노' 할 일이 아니겠는가.

백선엽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해서 부임한 뒤 무려 30년 가깝게 '6.25전쟁사'를 편찬하면서 철저하게 자기의 전공을 부풀렸다. 일부 역사의식 없는 국방장관의 비호하에 백선엽 추종세력들이 합세하여 명예 원수 추대까지 탐욕의 공작이 이어졌으나 결국 무산되어 진실 앞에 손을 들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 명예 원수 추대를 취소했다.

한편 백선엽의 공적 가운데 평양 탈환작전의 무공을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을 과장한 셀프 영웅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졌음도 확인 되었다. 백선엽 자신이 늘 '평양 탈환'을 자랑해 왔지만 터무니 없는 과장이라는 것이 중국측과 북한측 사료(史料)에서 밝혀졌다. 당시 평양에는 인민군 주력이 모두 빠져 나가서 탈환이 아니라 '무혈 입성'이라는 평가였다. 중국의 군사평론가들이 한국전쟁시 한국군을 조롱하는 '단골 메뉴' 가 바로 '백선엽의 평양 탈환작전' 이란 사실은 우리가 얼굴을 붉혀야 할 일이다. 그러한 변화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육군에서는 아직까지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 이란 정훈교육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 이어지자 KBS는 마침내 1985년 TV 방영 작품을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2020년 11월 중순. KBS에서 youtube를 통해 박경석 대하드라마 '五星將軍 金弘壹' 3부작 6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만천하에 내놓았다. 3부작 각각 첫 화면에 국방부 마크가 선명한 공식 국방부 문장과 박경석 저서 '五星將軍 金弘壹' 표지가 영상으로 보이고 '원작 박경석' 자막이 대문자로 나타나면서 백선엽 추종 세력의 엉뚱한 주장이 일시에 무색해졌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의혹이 해소되었다. 결과적으로 KBS 1TV 3부작 youtube 동영상이 숨죽였던 진실을 살려낸 셈이다.

 

 

자료 - youtube 동영상 4편 

https://youtu.be/oVW0pMCV9U0

https://youtu.be/uHulUoP3EmQ

https://youtu.be/K8JQOV2c8QY

https://youtu.be/giMpxMS2f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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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경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5.20 최종 완결작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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