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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10주년 - 박경석의 꽁트

작성자박경석|작성시간22.05.25|조회수177 목록 댓글 0

                                                   

     박경석의 꽁트

                                         귀향 10주년

                                                                         박경석

 

1950년 6월 1일, 4년제 첫 정규 육사에 응시 합격 통보를 받고 고향을 떠난 지 2022년 6월 1일이면 72년이 된다. 현역 장교 시절은 휴전선을 비롯해 전선 여러 곳에서 근무하느라 일정한 거주처가 없었지만 영관 장교 시절 서울로 거처를 정해 반세기 가까이 주소지로 등록했다. 여러 아파트에 옮겨 다니면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과 더불어 아파트 평수도 늘어났다.

서울에서의 내 삶은 영광과 함께 굽이굽이 고난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여느 사람이 겪는 모든 과정을 겪어가며 연륜을 더해갔다.

육군준장 8년 차 직전 군복을 벗고 문인으로 창작의 길에서 30여 년을 서울에서 지냈으나 고향의 그리움을 느끼면서 귀향해야겠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당시 군복을 벗는 장군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서울이 최종 주소지였다. 그것이 관례처럼 되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귀향을 결심하기까지 여러 문제가 얽혀 있었지만 마침내 결단을 내려 2012년 6월 1일 대전 유성으로 귀향했다.  이주 과정에서 놀란 것은 대전의 아파트 가격이 서울에 비해 너무나 낮았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에 비해 손색이 없는 주상 복합 아파트 인데도 무려 4분지 1 값이었다. 물가도 저렴하고 주변 경관은 아름다웠다. 가까운 거리에 국립공원 계룡산에다 대청호는 그 규모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경관 또한 빼어났다, 이 외에도 대전에는 명산이 많다. 식장산 보문산 장태산 계족산 등 어느 관광지에 손색이 없다.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관광할 수 있는 자원이 얼마든지 있다.

도시의 교통은 4통8달 불편함이 없고 도심을 가로 세로 이어지는  8차선 간선 도로는 서울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발달 돼 있다. 도로 양측 도로변 공원은 끝없이 이어지고 여름이면 정글을 방불케 한다. 특히 유성자이아파트와 연결된 유성천에는 철새 오리 원앙 등이 겨울이되어도 북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눌러 지낸다. 천변을 연한 자전거 겸 도보  도로는 수십 Km에 달하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천국과 다름 없다. 나는 이 천변로에서 매일 30분식 워킹을 즐기며 건강을 다진다.

귀향 후 10년간 서울의 아파트 값이 상승 해 지금은 4배에서 2배  이상 값이 뛰었다. 즉 서울 아파트는 8배 이상 고가인 셈이다. 따라서 서울에 비해 재산세는 놀라울 정도로 적다. 가히 천국에 온 기분으로 오늘도 30분 워킹을 위해 타이핑 후 유성천으로 나가야겠다. 아내와 함께 천변로에서의 30분 워킹은 하루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과다.

오늘 아침에 잰 내 혈압은 120~75였고 식전 혈당은 92였다. 이 정도면 나이 90에 괜찮은 편이 아니겠는가.

한곳 한집에서 계속 10년의 삶, 아내와 함께 가정의 행복을 누리며 무탈하게 살아 온 유일한 보금자리. 더구나 이곳에서 6권의 저서를 출간했고 유의미한 문학의 업적도 남겼다. 아직도 출간을 미루고 있는 작품이 3권 더 있다. 더구나 박경석장편소설 '육사생도2기' 가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이 체결돼 머지않아 드라마로 상영될 예정이다. 귀향 10주년을 맞는 2022년 6월 1일은 그래서 나의 축일로 기린다.

 

유성자이아파트 박경석 서재 거실

 

 

 

*김무일 전우의 독후 답신

 

존경하옵는 박경석장군님 建安하신모습 떠올리며 안부글월 올립니다.

지금도 변함없으시지만, 대하소설 '따이한'을 집필하실무렵의 젊은열정과 서울 강남구 어느 강연장에서 

토하시던 反共강연회에서의 사자호를 거의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생생히 떠오르는 지금 ~, 

그리고 박민식대령과 찿아뵙던 사직동에서의 옛일은 앞으로도 잊혀지지않는 장군님과의 추억일 것입니다.

 

아울러 대전 유성으로 보금자리를 옮기신 얼마후, 권준택장군과 방서남대령을 모시고 찿아뵙던날, 

정갈하게 가꾸신 장군님의 전망좋은 거처 또한, 저희들에게 감동을 주셨는데, 그 세월이 어언 10년을 

보내셨다는 글월을 반가히 읽으며, 다시한번 세월의 유수함을 실감하는듯 합니다.

 

보내주신 고향예찬글을 읽으며, 생도시절과 前,後方을 넘나드시던 주옥같은 장군님의 생애는 

감히 일반인들이 범접할수없는 많은 산 교훈을 축적하셨겠지만, 또한편 쇄퇴와 낙후를 거듭하는 

이나라 문학세계를, 선봉장이 되셔 저희들 後學들을 이끌어 주심에 항상 용기백배하고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머지않아 장군님의 일대기나 다름없는 '생도 2기생.'은 아마도 이나라 격동기를 겪어보지 못한 미흡한 

청년들에게, 장군님세대 선각자들의 생애와 나라를 위한 애국심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몸소 

가르쳐주시는 좋은 기록물이 되시리라 기대해보겠읍니다.

 

오랫동안 혼미를 거듭하던 사회도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찿아가는듯한 요즘, 아무쪼록 장군님께서

건강하셔, 저희들의 앞날에 빛과 소금이 되어주실것을 부탁올리며 항상 主님의 가호하심을 

기원드리겠읍니다. 뵙는날까지 건강하십시요.     金 武 一  올림, 

 

   

 

 

                       유상자이아파트와 유성천 그리고 워킹 코스 - 대전 갑천과 반대편인 세종시까지 연결돼 있다.

                                                우리집은 중앙(40층)      중간 20층에 있다.

 

 

오늘의 교훈

 

盡人事待天命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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