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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영상 자료.

[스크랩] 영상회고록 * 귀향 후[3]육군본부 군사연구소

작성자박경석|작성시간24.05.24|조회수65 목록 댓글 1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육군본부 軍史硏究所長 한설 장군 박경석 서재 방문

                                         2016년 7월 14일. 주요 軍史 자문 및 史料확인차

연구원 김상규 박사     연구소장 한설 장군                          박경석         한국전쟁연구과장 김수일 대령

                           한설 장군



                   나의 증언을 녹화 녹음하고 있다

내 영상 자료를 시청하고 있다.


                          해설


국군에서는 군신(軍神)과 전쟁 영웅을 추대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다. 창군 주역인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영역의 군신, 전쟁 영웅은 일본군 출신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백선엽 장군은 전권을 휘여잡고 군사(軍史)를 왜곡했다.

특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해서 부임한 후 軍史의 왜곡 날조는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이에 맞서 문학작품으로 여론 범위를 넓힌 뒤 정면 공격으로 결사 항쟁에 나섰다. 다행이 진실을 존중하는 의인(義人)들이 나타나 마침내 軍史 바로 잡는데 성공했다.

첫째, 옛 중국군 정규 장군이며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 유신헌법에 반대해 외지에 쫓겨났던 채명신 장군을 복원시켰고 가짜 전쟁 영웅 심일 소령을 격하시키고 살신성인의 참군인 강재구 소령으로 대체시키는데 성공했다.

가장 치열했던 경우는 백선엽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 사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심을 끝낸 사안을 뒤집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에 걸쳐 성명서를 내는 한편 청와대에 직보, 그 결정을 뒤집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백선엽은 일본군에서 만주 일대의 독립 운동가와 독립군 소탕작전의 지휘관이었다. 만주의 간도특설대는 일본 관동군 휘하에서 독립운동가와 독립군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악명 높은 부대였다. 그 간도특설대에서 육군중위로 진두에서 활약했다. 따라서 분명한 민족 반역자임을 만 천하에 밝혔다. 그 자료 수집에 영상 회고록 시리즈에 게재한 일본인 다나카 히사히로(田中久弘) 박사의 도움이 있었음을 밝힌다.

여기 사진을 올린 한설 장군은 그 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의 軍史 바로잡기 위한 대장정(大長征)에 도움을 준 의인(義人)은 다음과 같다.


1. 주월한국군사령관을 역임한 채명신 장군-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철회에 솔선

2. 6.25당시 6사단 중대장 이대용 장군-가짜 호국영웅 심일 소령 영웅 조작 증거 제시

3. 3사단장을 역임한 박정인 장군-백선엽 간도특설대 지휘관 죄상 폭로

4. 당시 국방장관 김태영 장군-백선엽 명예원수 철회 작업에 협조

5. 육군본부 군사연구소장 한설 장군-가짜 호국영웅 심일 소령 진상 규명에 솔선

6. 일본인 田中久弘(다나카 히사히로) 박사-백선엽 간도특설대 독립군 토벌 자료 제공

7. 문학평론가 송백헌 박사,충남대 명예교수-간도특설대 역사자료 고증 및 확인

                 

    참고 자료 1 간도특설대 부대가(한글로 번역)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 떨쳐
                              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특설부대를 사랑한다.

 

    연변 작가 류연산씨가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다.’ 에 쓴 간도특설대의 만행.

○ 야간 토벌 작정 중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불태워 죽임
○ 간도특설대의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냄
○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의 머리를 일본도로 자르고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촬영
○ 항일부대원 중 여성을 포로로 생포하고 강간 시도 후 실패하자 모두 살해
○ 항일부대원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살해 후 그의 머리를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품으로 만듬

 

    참고 자료 2       간도특설대의 편성 및 임무


간도특설대는 만주 일대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독립군 토벌을 위해 조직된 일본 관동군 휘하의 특수부대이다. 규모는 대대급이며 본부의 일본군 장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인으로 편성됐다. 일본 관동군은 '조선인 항일 세력은 조선인이 토벌해야 성과가 있다' 고 판단,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란케는 오랑케가 잡이야 한다' 며 편성한 조선인 토벌부대가 간도특설대이다. 백선엽은 만주군 중위로 중대급 토벌대를 지휘했다. 백선엽 외에 김백일의 활약도 돋보였다고 일본인 기자가 술회하고 있다.


  


    참고 자료 3           성명서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는 세기의 난센스다

                                                                      

                                                               한국군사평론가협회 회장 박경석

                                                                              (예) 육군준장

일부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해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내년 건군 60주년을 기해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는 내용에 접했다.

이 보도 내용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해프닝이기에 평론 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여기 사이트 [박경석 서재]에 그 부당한 요점만을 제시한다.

 

1. 백선엽(일본이름-시라가와 요시노리-白川義則)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육군소위로 임관,만주국 간도 특설대에 근무,  만주 일대의 독립군 소탕작전에 참가했다.

 

2. 2009년 11월.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친일인명사전' 제2권 208P~209P에 그의 친일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중위로 진급 후 해방이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평안남도 도인민위원회 치안대장으로 일했다.이어서 친일파 소탕 기미를 감지한 그는 월남, 미 군정하 군사영어학교에 입교 국군장교가 되었다.

 

3. 북한 인민군의 6.25남침 당시 개성의 38선 경계중인 1사단을 지휘한 백선엽 대령은 춘천 전선의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6사단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응전도 못하고 거의 모든 장비를 버리고  패주,수도 서울 조기 함락의 원인을 제공했다.

 

4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그의 공적은 일부 미군 장성과 자신에 의해 과장 되었으며 낙동강 방어선의 영웅적 방어는 미국과  워커 장군의 불퇴전의 의지, 그리고 미군의 절대 우세한 화력과 국군 장병과 유엔군 장병 모두의 총력 혈투의 결과였다.

 

5. 미국과 미군당국이 그를 한국군 최고의 영웅으로 대우하는 것은 그의 절대적 친미행위의 결과로 기인한다.가령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시절을 비롯한 군 재직간 자기의 미군 고문관인 하급자를 상전대우 하는 굴욕적 행태로 일관하였다.심지어 하급자인 미군 고문관을 상석인 찝차 앞자리에 태워 모시고 다녔다.

 

6. 대한민국 국군은 독립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독립군,광복군의 위대한 항일투쟁의 정신을 계승해야 하며 만약  만주군 장교 출신인 그를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면 국군 건군의 존엄성이 결정적으로 훼손된다.

 

7. 나는 일찍이 국군 건군의 정신적 기둥으로 6.25초기 한강방어선에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정규 중국군 장군 출신이며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을 '오성장군'으로 호칭,단행본 [오성장군 김홍일]과 단행본 [ 별 ]을 출간하였다.

 

8. [오성장군 김홍일]은 육군본부 추천으로 KBS TV 3부작으로 국민의 절대 호응하에 방영된바 있고 KBS라디오에서는 그 단행본 전문을 1년간 낭송 방송하였다.

 

9. 만일 국군 최초의 명예 원수를 추대하려면 김홍일 장군 외 대안이 없음을 역사 앞에 밝힌다.그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명예로운 정통성이 역사에 각인 될 것이다.

 

10. 특히 백선엽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위촉받아 6.25전쟁 전 이적행위로 일관,비극을 초래케한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의 이적 행위를 감추기 위해 [채병덕장군 평전]을 출간케하여 이적 행위 하나하나를 변명 감쌓다.   (참고 : 채병덕의 이적행위인 10대 불가사의 - 이형근 회고록 '군번1번의 외길 인생)제3부 6.25전쟁 / 50P~64P / 중앙일보사 발행)

 

11.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새 6.25전사 편찬 자문위원장을 맡아 전쟁 초기의 전사를 임의로 개작, 상당부분 기 발행된바 있는 [한국전쟁사]내용을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유리하도록 조종 기술케 유도하였다.이 문제의 1권과 2권 권말에는 본인 박경석이 마치 자문한 것처럼 전우신문사 회장과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직함으로 인쇄되어 있으나 본인은 오찬행사에 참여 하였을 뿐 단 한 곳 자문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다.

 

12. 국방부와 청와대는 미국과 미군 당국의 오판에서 연유,엉뚱한 한국전쟁 영웅설에 속지말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한국전쟁 4대영웅은 김홍일,김종오,맥아더,워커 장군이다.김홍일 장군에 이어 김종오 장군 전기도 육군본부 추천하에 출간되었으며 KBS TV 3부작으로 방영된바 있다.

 

13. 내 글에 이의가 있어 이 사랑방에 내용을 밝히면 토론에도 응할 것이다.한편 여기에 기술한 내용은 무한 책임을 진다.

 

14. 참고사항 / 박경석 홈페이지 들어오는 방법.naver를 제외한 모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박경석 서재] 입력 클릭하면 아이콘이 뜨고 다시 아이콘을 클릭하면 됀다.

추가 의견 : 백선엽장군은 국군의 원로 장성이며 국가에 기여한 바 크다.또한 나의 상관이었다.예의상 나의 결례임이 확실하다. 내가 밤잠을 설치면서 고뇌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에 훼손된다는 명제 앞에서 나는 결례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맥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둘수 없다. 그렇게 하면 훗날 역사에서 북한 인민군이 정통성에서 우위가 될지 모른다.북한 인민군의 주력은 항일 투쟁 세력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장교 출신을 국군의 최초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면 훗날 역사가는 북한 인민군의 남침을 이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인민군의 남침이 민족의 원수인 일본군 만주군 잔당에의 공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항일 전쟁을 중국군 육군 소장으로 지휘했고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을 대한민국 국군의 건군의 기둥으로 두고 싶어 두 권의 단행본을 썼다. 그 단행본은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소설체로 기술했지만 내용은 전사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세력을 이용할수 밖에 없었던 정치 상황에서도 국군의 정통성을 고려, 유독 김홍일 장군 단 한 사람 만을 국군의 유일한 장군으로 임관 시켰다.따라서 나는 중국의 별과 대한민국의 별을 합쳐 또한 일본군 만주군 출신을 압도하기 위해 김홍일 장군을 5성장군으로 호칭했다.
그가 명예 국군 최초의 원수가 되어야 한다는 이치의 배경이다.
독립군과 김홍일장군의 우국충정 그리고 항일전쟁 내막, 독립운동과 6.25전쟁에 관한 비사는 이 서재 외의 [박경석 문학서재] '전자논저' 에 전자책으로 입력한 [오성장군 김홍일]과 [별] 두 권의 단행본에서 읽을 수 있다.

                                                                                       2009년 3월 27일

 

 

참고 자료 4         2차 성명서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는 세기의 난센스다

엽 명예원추대는 세기의 난센스다

                    한국군사평론가협회 회장 박경석 (2010.4.19. 2차 성명) 


2009년 초엽,일부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해 백선엽 예비역 장군을  건군 60주년을 기해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는 내용에 접했다.그래서 나는 그 부당함을 지적, 관계 요로에 내 의견을 전하여 없었던 일로 일단락이 되었으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역사 의식이 희박한 전직 국방장관, 일부 국회의원 등이 다시 거론, 재 추대하려는 몰지각한 움직임에 경종을 울리고자 이 글을 싣는다.

추대를 획책하는 일각의 행태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해프닝이기에 평론 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여기 '박경석의 서재'에 그 부당한 요점만을 제시한다.

  1. 백선엽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육군소위로 임관,만주국 간도 특설대에 근무,  만주 일대의 독립군을 비롯한 항일세력 소탕작전에 참가했다.
     
  2. 2009년 11월.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친일인명사전' 제2권 208P~209P에 그의 친일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중위로 진급 후 해방이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평안남도 도인민위원회 치안대장으로 일했다.이어서 친일파 소탕 기미를 감지한 그는 월남, 미 군정하 군사영어학교에 입교 국군장교가 되었다.
     
  3. 북한 인민군의 6.25남침 당시 개성의 38선 경계중인 1사단을 지휘한 백선엽 대령은 춘천 전선의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6사단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응전도 못하고 거의 모든 장비를 버리고  패주 ,수도 서울 조기 함락의  원인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4.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그의 공적은 일부 미군측과 자신에 의해 과장 되었으며 낙동강 방어선의 영웅적 방어는 미국과  워커 장군의 불퇴전의 의지, 그리고 미군의 절대 우세한 화력과 국군 장병과 유엔군 장병 모두의 총력 혈투의 결과였다.
     
  5. 미국과 미군당국이 그를 한국군 최고의 영웅으로 대우하는 것은 그의 절대적 친미행위의 결과로 기인한다.가령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시절을 비롯한 군 재직간 자기의 미군 고문관인 하급자를 상전대우 하는 굴욕적 행태로 일관하였다.심지어 하급자인 미군 고문관을 상석인 찝차 앞자리에 모시고 다녔다.
     
  6. 대한민국 국군은 독립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동립군,광복군의 위대한 항일투쟁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만약 독립군 토벌  만주군 장교 출신인 그를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면 국군 건군의 존엄성이 결정적으로 훼손된다.
     
  7. 육군본부 참모총장의 요청에 의거 나는 일찍이 국군 건군의 정신적 기둥으로 6.25초기 한강방어선에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케한 정규 중국군 장군 출신이며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을 '오성장군'으로 호칭,단행본 [오성장군 김홍일]과 단행본 [별]을 1984년,1986년 출간하였다.
     
  8. [오성장군 김홍일]은 육군본부 추천으로 KBS TV 3부작으로 국민의 절대 호응하에 방영된바 있고 KBS라디오에서는 그 단행본 전문을 1년간 낭송 방송하였다.
     
  9. 만일 국군 최초의 명예 원수를 추대하려면 김홍일 장군 외 대안이 없음을 역사 앞에 밝힌다.그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로운 정통성이 역사에 각인 될 것이다.
     
  10. 특히 백선엽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위촉받아 6.25전쟁 전 이적행위로 일관,비극을 초래케한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의 이적 행위를 감추기 위해 [채병덕장군 평전]을 출간케하여 이적 행위 하나하나를 변명 감쌓다.   (참고 : 채병덕의 이적행위인 10대 불가사의 - 이형근 회고록 '군번1번의 외길 인생)제3부 6.25전쟁 / 50P~64P / 중앙일보사 발행)
     
  11.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새 6.25전사 편찬 자문위원장을 맡아 전쟁 초기의 전사를 임의로 개작, 상당부분 기 발행된바 있는 [한국전쟁사]내용을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유리하도록 조종 기술케 유도하였다. 이 문제의 1권과 2권 권말에는 본인 박경석이 마치 자문한 것처럼 전우신문사 회장과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직함으로 인쇄되어 있으나 본인은 오찬행사에 참여 하였을 뿐 단 한 곳 자문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다.교할한 착상으로 나를 역사의 공모자로 끌어드린 것이다.이 점 법적 대응을 강구중이다.
     
  12. 국방부와 청와대는 미국과 미군 당국의 오판에서 연유,엉뚱한 한국전쟁 영웅설에 속지말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한국전쟁 4대영웅은 김홍일,김종오,맥아더,워커 장군이다.김홍일 장군에 이어 김종오 장군 전기도 육군본부 추천하에 출간되었으며 KBS TV 3부작으로 방영된바 있다.
     
  13. 내 글에 이의가 있어 이 사랑방에 내용을 밝히면 토론에도 응할 것이다.한편 여기에 기술한 내용은 무한 책임을 진다.
     
  14. 참고사항 / 박경석 사이트에 들어오는 방법. 모든 포틀사이트 검색창에 [박경석의 서재] 및 [박경석 서재]클리하면 아이콘이 뜨고 다시 아이콘을 클릭. 박경석 사이트는 제1서재와 제2서제 두 곳에 개설되어 있습니다.


추가 의견 : 백선엽 장군은 국군의 원로 장성이며 국가에 기여한바 있다.또한 나의 직속 상관이었다.예의상 나의 결례임이 확실하다.내가 밤잠을 설치면서 고뇌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국군의 건군 이념에 훼손된다는 명제 앞에서 나는 결례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대한민국 국군의 맥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둘수 없다.그렇게 하면 훗날 역사에서 북한 인민군이 정통성에서 우위가 될지 모른다.

북한 인민군의 주력은 항일 투쟁 세력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장교 출신을 국군의 최초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면 훗날 역사가는 북한 인민군의 남침을 이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인민군의 남침이 민족의 원수인 일본군 만주군 잔당에의 공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항일 전쟁을 중국군 육군 소장으로 지휘했고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을 대한민국 국군의 건군의 기둥으로 두고 싶어 두 권의 단행본을 썼다.그 단행본은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소설체로 기술했지만 내용은 전사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세력을 이용할수 밖에 없었던 정치 상황에서도 국군의 정통성을 고려, 유독 김홍일 장군 단 한 사람 만을 국군의 유일한 장군으로 임관 시켰다.따라서 나는 중국의 별과 대한민국의 별을 합쳐 또한 일본군 만주군 출신을 압도하기 위해 김홍일 장군을 5성장군으로 호칭했다.

그가 명예 국군 최초의 원수가 되어야 한다는 이치의 배경이다.

독립군과 김홍일장군의 우국충정 그리고 항일전쟁 내막, 독립운동과 6.25전쟁에 관한 비사는 '한국디지털종합도서관 박경석의 서재' [전자논저]에 전자책으로 입력한 [오성장군 김홍일]과 [별] 두 권의 단행본에서 읽을 수 있다.

 

참고 자료 5           결과

 

*김태영 국방장관이 본인 광화문 서재에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육군소장)과 담당 과장(육군대령)을 보내 본인의 의견 청취 후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국방부에서 철회 결정2010년 5월.

참고 - [1]본인이 국방부와 의견 교환 과정에서 전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이 본인의 의견에 동조, 명예원수 추대 철회에 힘을 보탰다.
참고 - [2]백선엽이 국방부장관 앞으로 보낸 공문에 "간도 특설대에 근무는 했지만 독립군 토벌에는 참전하지 않았다"는 내용과 상반되는 백선엽 자신의 회고록 관계 부분을 아래에 게재한다.
  

          아래 내용 가운데 백선엽이 기술한 '게릴라'는 독립군과 항일 무장세력임
       

 

          백선엽 기록 가운데 以夷制夷(이이제이)가 있다. 그 뜻은 '오랑캐는 오랑캐로 잡는다' 이다.

         비록 빗댄 말이지만 우리 독립군을 오랑캐로 보고 토벌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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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관장 | 작성시간 24.05.24 대단하신 분들께서
    함께의 구국정신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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