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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영상 자료.

[스크랩] 철원 땅굴 DMZ작전

작성자박경석|작성시간24.05.24|조회수29 목록 댓글 1

 

           철원땅굴 DMZ작전

                 1975년 1월 10일~1975년 7월 23일

       철원DMZ특수임무부대장 (6사단 작전 부사단장 겸직)



철원 북방 DMZ 내에서 땅굴 탐색 작전을 지휘하는
7개월 동안 숙소로 사용했던 탑차 앞에서...



장군이 DMZ 내에서 상주한 경우는 국군 역사상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내가 이 탑차 안에서 때때로 눈물을 흘린 까닭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박경석의 서재 [작은강의]와 [연재코너]를 탐색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당시 정치군인들의 나에게 가한 핍박과 보복은 오히려 오늘날 박경석의 정의와 불굴의 문학정신으로 굳힐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윤필용,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 가해자는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모두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
아마 그때 정치군인들은 내가 DMZ에서 잘못되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 후 땅굴작전 공로가 인정되어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정치군인들이 내 무공훈장 많은 것을 시샘했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한 방 먹인 꼴이 되었다.


장군 진급과 동시 강원도 철원 북방 DMZ에 투입, 엄동설한에... 난방시설도 없는 구닥다리 화물 탑차에..., 국군사(國軍史)에 또 이런 경우가 있었을까?.




철원 북방 DMZ내 북한군 땅굴 탐색작전 특수임무부대장시절(중앙). 북한군은 그들이 뚫어놓은 땅굴 중간지점에 침투시 재정비를 위해 비교적 넓은 공간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공간을 '땅굴 광장'으로 호칭했다. 참고: 내가 왼쪽 팔에 찬 백색 완장의 영문 ' TF ' 표지는 '특수임무부대'를 가리키는 ' Task Force' 의 약자이다.





철원 북방 DMZ 북한군 땅굴 탐색작전을 지휘. 특수임무부대장시절 땅굴 내부확인중. 광장을 벗어나면 허리를 굽히고 두 사람이 함께 걸을만한 공간으로 좁혀져 있다. 앞에 가로 지른 가는 철선은 우리가 지뢰지대임을 표시.북한군이 우리에게 땅굴이 폭로되자 도망가면서 지뢰를 깔아 놓았다. 왼쪽 하단의 원통 파이프는 지뢰폭파후 폭염을 빨아내기 위해 우리가 설치했다.




국내는 물론 외신에 철원 DMZ내 땅굴이 발견되었다고 크게 보도가 되자 미국 본토에서 고위 장성들이 줄이어 땅굴을 찾았다. 이 사진은 미국 육군참모총장일행에게 땅굴을 안내하고 있는 나. 일행이 땅굴 천장에 뚫린 천공(다이나마이트 설치를 위해 뚫은 구멍)을 확인하고 있다. 이 천공이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뚫려 있었으므로 한국군 조작설이 쑥 들어갔다. 당시 일각에서는 한국측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 시절 미국측은 박정희의 영구집권 획책으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였다.
사진 오른 쪽은 미국 육군참모총장, 그 바로 뒤 주한 UN군 사령관 (앞 참모총장에 가려 헬멧만 보인다), 중앙은 한국군 제5군단장 이건영 장군, 맨 좌측은 천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나.박경석 특수임무부대장.
한미 두 고위 장성이 열심히 천공을 확인하고 있다. 이 확인으로 말미암아 미국측이 북한군 소행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작은 사안이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다.
미국 육군참모총장이 손전등을 직접 비추면서 천공을 뚫어지게 주시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그의 미소를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음날 모든 내외신은 '철원 땅굴은 북한군에 의해 굴착되었다' 고 일제히 보도하였다. 비로소 한국군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정치군인들에게 밀려 어렵게 4수만에 장군이 된 나는 유배 아닌 유배처로 철원 DMZ 내 땅굴 개척을 위한 특수임무부대 (Task Force) 장으로 임명(보병 제6사단 작전 부사단장 겸직)되어 DMZ내에서 기거하면서 땅굴 작전을 지휘하였다.장군이 DMZ 내에서 장기간 상주한 것은 내 경우가 처음이며 마지막이었다.
이 사진은 땅굴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후 땅굴을 국민에게 개방, 연예인 일행에게 땅굴 내부를 안내하는 장면.
좌측은 설명하는 나,우측은 텔런트 이순재 및 일행.
텔런트 이순재를 비롯해 연예인 모두가 헌병MP헬멧을 쓰고 있다.원래 정전협정에 따라 DMZ는 비무장지대로 해서 관리하는 병력만 출입하게 되어있다.따라서 한국군과 미군은 헌병MP, 북한군은 우리의 헌병에 해당하는 '경무원'으로 한정되어 있다.
미국 국방장관.미국 육군참모총장,UN군사령관을 비롯한 연합군 장성과 우리나라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모든 출입자는 예외없이 헌병MP헬멧을 썼다.
유독 나만은 위장무늬 전투헬멧을 쓰고 있다. 즉 나는 북한군의 불법 남침 땅굴에 대한 대응 작전 지휘관이므로 정전협정과 무관하다. 불법 행위에 대한 응징차원의 전투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력 일간신문 기자들이 매일 구름처럼 몰려왔다. 처음엔 한국군이 조작했다고 의심했었으나 이들이 실제 확인한 다음에는 북한군의 소행임을 믿게 되었다.
이 사진은 외신 기자들에게 갱도 안으로 들어가기 전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는 나.




이 사진은 외신 기자 일행에게 갱도내부작전현황을 직접 부리핑하는 나. 처음에는 이들 외신기자들이 한국군이 파놓고 위기감을 고조시킨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외신기자 일행에게 설명을 마치고 땅굴로 안내했다. 그리하여 땅굴 천정에 무수히 뚫린 천공을 기리키며 북쪽에서부터 뚫린 흔적을 확인하도록 유도하자 비로소 한국측 조작설에 대한 의심을 철회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자리에는 미국의 유력 일간지 뿐만 아니라 영국의 유력 일간지 런던타임즈 기자도 참석했다. 내 부리핑과 땅굴 내부 안내 및 설명에 이들 외신기자들이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외신에 내 부리핑하는 모습이 크게 게재되자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사진은 그때 게재된 외신 사진을 복사한 것이다.
내가 왼쪽 팔에 차고 있는 완장 영문 TF 글씨는 특수임무부대를 기리키는 Task Force의 약자이다.이 벙커는 DMZ내에 위치하고 있다.나는 땅굴 작전 중 DMZ내에서 기거했다.




땅굴 내부 개척작전에서 북한군은 아군 작전에 쫒겨 많은 장비를 버리고 북쪽으로 도주하였다. 땅굴 안에서 노획한 장비를 방문 장군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 나. 내 좌측은 소준열 장군.
북한군은 남침 땅굴이 한국군에 의해 발견되자 북쪽으로 도주하면서 무려 500미터에 걸쳐 각종 지뢰를 매설했다. 땅굴 내부 개척 작전을 전개하면서 초기에 그 지뢰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지뢰 폭파 후 갱도 내부의 폭염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 했다.
내가 들고 있는 양철판은 북한군이 부비트랩을 설치후 그것으로 덮어 위장해서 우리 병사가 손으로 제거 하는 순간 폭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이미 월남전에서 베트콩의 술책을 견뎌냈으므로 우리는 속지 않았다.




당시 거의 모든 국회의원이 땅굴을 방문하였다. 이 사진은 국회 국방분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게 땅굴에 대한 설명을 하는 나(왼쪽).
이때만 해도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이 한국군 조작설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나는 언쟁까지 벌이면서 그들을 설득하느라 애먹었다.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은 박정희가 유신헌법으로 영구집권을 위해 긴장을 조성하는 수단이라고 우겼다.




당시 일부 보도매체에서는 북한군이 굴착한 땅굴이 아군이 조작한 것으로 보도하자 국방부는 언론인, 주로 일간지 편집국장들에게 개방 방문토록하였다.
이 사진은 일간신문 편집국장들에게 땅굴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나 (오른쪽).
이때만해도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집권 로드맵에 따라 긴장을 조성하기 위한 계략으로 한국군이 굴착했다는 추축이 난무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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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박경석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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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관장 | 작성시간 24.05.24 이 모듬의 공로는
    나라의 보배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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