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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강연

6.25전쟁70주년특집 9부작 - 제8부 승패 없는 끝나지 않은 전쟁

작성자박경석|작성시간20.04.22|조회수85 목록 댓글 0

 

                       6.25전쟁70주년특집 9부작

 

                                                                                             박경석

                                                한국전쟁문학협회 회장

                                                국제PEN 한국본부 고문

      

 

제8부. 승패 없는 끝나지 않은 전쟁
                          

 전쟁은 그 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구분된다. 모든 전쟁이 그렇게 명백하게 결판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승패로 매듭지어지는 것이 상례이다.
 전쟁, 군사, 전략분야에 있어서 세계적 명저로 꼽히고 있는「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전쟁론 첫 머리에서 "전쟁이란 결국 보다 큰 확대와 규모의 결투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란 우리의 적대자로 하여금 우리의 의지를 완벽하게 이행하도록 강요하려는 폭력행위다"라고 전쟁을 정의하고 있다.
 첫째, 정의는 전쟁이란 단순한 싸움이라는 뜻이 담겨 있고, 둘째, 정의는 전쟁 결과에 따른 승자와 패자의 구분을 언급하고 있다.
 즉 전쟁이란 승리하기 위해 도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패자가 있기 마련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관조한다면, 김일성이 승리하기 위해 도발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대한민국과 유엔 참전국은 그 뜻을 저지했으므로 일단 클라우제비츠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자유진영의 승리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전쟁론 제1장 제2절에서 전쟁의 목적과 수단에 대해 "적의 군사력은 괴멸되어야 한다", "적의 국토는 반드시 정복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전쟁의 목적과 수단은 승리를 위해 지향되어야 하고 그 승리는 적의 군사력 괴멸과 적의 국토 정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자유진영의 승리는 완벽한 것이 못되고 국부적인 의미의 승리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은 어디까지나 섬멸전의 완전한 승리를 전제하고 있다. 전쟁에 있어서 무승부라든가 애매 모호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그는 이어서 "적 군사력의 괴멸과 국토의 점령이 뜻대로 되었다 하더라도 적대감정과 적대적인 행동의소산인 전쟁은 결국 적의 의지를 굴복시키지 못하는 한 아직 종결되었다고 간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전쟁에서의 자유진영 승리라는 해석 또한 까마득한 공허가 되는 셈이다. 결국 공산군측의 의지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므로 승리는 성립이 안된다는 결론이다.

 한편 생각하면,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은 논리의 비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상세히 역사에 비추어 분석한다면 실제 상황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구 한국의 군대 해산으로 군사력을 말살하고 한반도를 점령했지만 한민족의 의지를 굴복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일본이 완전히 승리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은 논리의 비약이 아니라 타당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전쟁의 쌍방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일정기간의 휴식(휴전)상태에 들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반도에 있어서 38선의 설정은 폭팔물의 도화선과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소련의 국제공산주의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두 이데올로기 대립이 첨예화되어 있는 상황하에서 전쟁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당국은 허세만 부렸을 뿐 무엇하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주한 미군의 철수와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한반도 포기선언은 한반도라는 폭팔물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꼴인데도 국방부나 육군본부는 위기 극복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전쟁사」(국방부 발행, 초판)에 의하면, 1950년 3월25일 육군본부는 작전명령 제38호로 방어계획을 성안하여 각 부대에 시달하였다고 하나, 그 내용이 일반적인 방어개념을 추상적으로 열거하였을 뿐 구체적인 작전계획이라 할 수 없는 내용이다. 가령 방어 개념에 제시된 내용가운데 경계진지, 주진지, 예비진지 등의 교범내용의 용어를 나열하였을 뿐 각 단계별 진지의 한계 및 주진지대의 편성개념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교범에 기재되어있는 작전명령 양식에다 각 사단의 모호한 현황을 삽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전명령 제38호가 교범에 충실한 모범답안이었다면 전방에 배치된 1개 연대, 4개 사단의 정면 배분에도 신경을 썼어야 했다. 위기인데도 터무니없이 넓은 정면을 할당하고도 병력 증원이나 사단 증설따위 대비책 강구가 전혀 없었다.

38선 방어임무를 책임지고 있던 각 부대별 방어 정면은 다음과 같다.


• 수도경비 사령부 예하 제17연대 : 옹진반도 45km

• 개성의 제1사단 : 94km

• 의정부의 제7사단 : 47km

• 춘천의 제6사단 : 84km

• 동해안의 제8사단 : 30 km

위와 같은 각 정면은 평균하여 군단급 정면이라 해도 방어에 벅차다. 그런데도 육군본부는 전쟁발발 당시까지 위 전방부대에 농번기 휴가를 장려했고 6월24일 토요일 외출 외박을 허락했다.

당시의 육군 상황을 요약하면 정보부재, 대비책 전무, 화력 약화 조장 등 이적행위의 범람이라 할 수 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은 3년 1개월에 걸쳐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북한군과 중공군에 대해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냈을 뿐만 아니라 전국토의 태반을 초토화 시켰다.

 1953년 8월7일 유엔군 총사령부가 유엔에 제출한 휴전에 관한 특별보고서에 의하면 공산군측 인명피해는 150만~200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국군 및 유엔군이 입은 피해는 약 50만명으로 밝히고 있다.

 그 밖에도 한국은 약 100만명에 이르는 민간인 피해를 입은 외에 막대한 재산피해를 냈다. 전쟁기간중 쌍방이 입은 주요 군사장비의 손실은 국군 및 유엔군측이 항공기 1,992대와 전차 777대, 공산측이 항공기 2,185대와 전차 1,178대를 잃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전쟁은 반만년 한국 역사상 가장 크고 참혹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북한 당국자들이 아직도 적화통일의 망상에 들떠 있다는 사실이다.
국력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많은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굶주림 속에 허덕이며 그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비젼을 갖고 있을까?
 우리는 1950년 6월25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비무환이라는 명제하에 대비책 강구에 임할 때마다 그날의 무방비 무대책의 원인과 비참했던 결과를 상기해야 한다.
20세기의 가장 커다란 퇴물인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붙들고 늘어지면서 발악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한다.

 지난날 휴전선 일대에서의 끊임없는 도발,여러 곳에서의 남침 땅굴 굴착,'한반도비핵화선언' 후의 핵무기 개발,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등 일련의 도발행위는 북한 당국이 얼마나 전쟁광과 같은 야욕에 불타고 있는가를 보여준 실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 접촉에는 일면 타당성이 인정된다. 전제는 철저한 경계와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상호 교류를 통해 우리의 일상과 자유로운 문화가 북한에 유입되면서 해빙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 다같이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한민족 전체의 처지에서 본다면 쌍방 모두 패자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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