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한국군사평론가협회 회장)
1. 리더십의 본질, 인도하는 것
인간사회에는 많은 집단이 있다. 집단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이들 집단을 이끌어 나가는 리더Leader의 개념 또한 다양하다. 동서고금에 걸쳐 많은 학자들은 서로 다른 학설을 주장하면서 많은 종류의 리더를 언급하고 있다.
이들 학자들이 열거하고 있는 리더 가운데 비교적 타당성이 인정되고 공통성이 많은 호칭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지도자, 사령관, 지휘관, 수령, 경영자, 집행자, 중심인물 등이다. 근래에 와서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가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외에도 그 수에 있어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리더란 글자 풀이 그대로‘ 선두에 서서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즉‘ 앞장서서 안내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런 개념이라면 군 조직에 있어서 모든 장교는 리더의 기능을 갖는다. 또한 일반 민간 조직에서는 하급 간부부터 리더에 포한될 수 있다.
리더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해하기 좋은 예를 든다면 사교춤socialdance을 상기하기 바란다. 춤을 추는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리더와 파트너partner라고 하는데, 이 경우 남자는 여자를 이끌어 갈책임이 있고 여자는 남자에 협력하면서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다. 리더에 있어서는 춤을 춘다는 결과보다 춤을 추도록 이끌어 가는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 리더는 파트너가 밟아야 하는 스텝을 모두 익혀서 숙달하지 못하는 한 춤은 완성되지 못한다. 남자가 춤을 추겠다고 여자를 이끌면서 상대 여자의 발이나 밟으며 스테이지를 헤매게 된다면 그 한 쌍의 남녀는 협력관계partner ship가 성립되지 못하면서 사교춤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가령 군대에 있어서 소대장과 소대원의 관계는 바로 이들 한 쌍의 남녀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즉 소대장은 소대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동시에 모든 동작 하나 하나를 터득한 후 앞장서서 이끌어 가야 한다. 명령을 해서 동작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인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휘command는 어떤 역할이 적용되는가에 대해 군 조직에서는 리더십과 개념상 상충되는 점이 있다. ‘command’는‘ 명령하다’라는‘ order’와 동의어이다.즉 명령하여 지휘하면서 지배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commander’는 피지휘자와의 관계가 협력관계가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된다.
2. 독서는 리더의 파워
명령과 복종관계가 명확한 군대에 있어서 리더십은 어느 경우나 광의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학설이 유력하게 이해되고 있다. 아무리 명령과 복종관계의 군대조직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명령과 지휘만으로는 목표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전투를 통해서 얻었기 때문이다.
‘command’는‘ lead’가 전제되지 않는 한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전례가 어느 전장에서나 입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하를 지휘하는 군 조직 내의 모든 간부는 광의적인 리더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리더는 이끌어 갈 부하보다 많은 전문지식이 구비되어야 하므로 학습이 필요하다. 즉 리더십은 많은 경험과 학습으로 지휘의 효용성이 증대된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그 학습은 두말할 필요 없이 독서로 성취된다.
우리나라 병역자원의 학력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느 선진국 수준보다 우리 군대의 구성원은 지식 수준이 높으므로 거기에 상응할 리더십이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리더십은 솔선수범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하를 감동시킬 수 없다. 리더에 의해 부하가 감동을 받으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효용성이 증대된다. 이러한 증거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1965년 10월에 파병되기 시작한 맹호사단, 청룡여단, 백마사단 등 주월한국군은 국군 현대화는 물론 국군이 세계 최강의 전투부대임을 만방에 입증한 역사적 쾌거를 성취했지만, 그보다 더 괄목할 만한 업적은 국군 최초의 한국 독자적 군사교리를 탄생시킨 경우라 할수 있다. 1965년까지만 해도 우리 국군의 모든 군사학은 100% 미국의 군사교범에 의존하고 있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을 지휘한 채명신 장군은 재직간 전승의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국군 역사상 최초의 한국적 군사교리를 창출케 하는 역사적 과업을 성취시켰다. 채명신 장군은 이름난 독서광이었다. 해방 후 단신 월남한 후 국군에 몸담으면서 독서로 영어를 마스터, 미국 참모대학에 유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을 뿐만아니라, 그 후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육군의 전력증강에 획기적 업적을 남겼다.
특히 베트남전쟁에서는 미군 군사교리에도 없는 ‘중대전술기지개념’을 창안하고 미군 측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 전체 주월한국군에 적용하여 시행케 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맹호의‘ 두코전투의 신화’와 청룡의‘ 짜빈동전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더하여 한국군 특유의 야간침투작전을 계발하여 월맹군과 베트콩의 전유물이었던 야간전투의 주도권을 비로소 한국군이 되찾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채명신 장군의 쾌거는 6·25 한국전쟁의 전투경험에 더하여 독서광이라는 비판의 눈을 극복해 가며 자신의 사유세계를 넓힌 독서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3. 독서로 보완되는 리더십
어디 독서의 필요성이 현대뿐이랴. 중국 고대 병서의 하나로 <손자병법>과 함께 양대 병서로 꼽는 오기 장군의 <오자병법>에서도 독서를 통한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기 장군은 병법 서두에서 『문과 무를 아울러 지녀야만 군의 장수로서 자격이 있다』고 설파하면서 『문은 곧 무이고 무는 곧 문이다』라는 이론을 세웠다. 여기서 언급한 문은 바로 현대의 일반적 개념의 학문을 총칭한 것이며 학문은 독서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그 유명한‘ 학익전법’ 또한 독서를 통한 학문에서 연유하였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독서 기록이 있다. 특히 이순신은 권모술수의 <손자병법>보다 정공법의 <오자병법>을 선호했음도 그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1965년 10월 육군대학에서 대부대전술학을 강의하다 맹호사단 제1진 보병대대장으로 선발되는 영광을 안고 참전하여 15개월간 전투를 지휘하면서 제대별 대대단위 최고 무훈을 기록,‘ 재구대대(在求大隊)’의 신화를 남겼으며,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19번도로>와 <그대와 나의 유산>이란 두 권의 진중기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베트남 전선에서의 빛나는 수훈이 필자의 독서와 집필의 결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밤중에 불빛이 CP 천막에서 새어 나오도록 독서와 집필에 열중하는 대대장에게 어떤 신뢰와 정감이 작용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 증거로 대대장의 전투명령이 단 한 번도 장애나 오류를 겪은 적이 없었다. 그때의 대대 참모와 중대장 모두가 장성의 영예를 얻었고, 지금은 필자와 별 차이 없는 노병이 되었지만‘ 재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회식을 갖고 담소를 나눈다.
그들이 회고하는 핵심은 늘 필자의 독서와 집필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그러한 점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독서와 집필의 불빛이 장장 40여 년 동안 꺼지지 않고 살아왔음을 생각할 때 필자는 무한한 행복에 젖는다.
독서는 감동을 느끼게 하면서 낭만을 잉태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사랑의 시로 환희에 도취한다. 필자가 독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대전중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당시 담임은 국어를 가르치는 윤종만 선생님이었는데 늘 입버릇처럼 독서를 권했다.
선생님은 흑판에다‘ Learn by doing’이라고 크게 써놓고“ 실천하면서 배워야지 배운 다음에 실천하면 늦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권하는 실천은 곧 독서다”라고 어린 필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필자는 교과서는 물론 다른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필자가 얼마나 독서에 열광했으면 장성 진급 후 골프 배우는 것도 포기했을까. 그래서 군복을 벗을 때까지 7년 7개월간 주변으로부터 많은 눈총을 받았다. 지금은 누구나 골프를 치지만 당시는 장군이 되어야 골프 치는 것으로 여겼다. 독서에 집념을 둔 탓으로 군복을 벗은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현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4. 다양하고 폭 넓은 독서
장교들에게 독서를 권유하면‘ 바쁜 일정 때문에’, 혹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그 말은 곧‘ 게으름의 고백’이라고 볼수밖에 없다. 바쁠수록 독서는 필요하다. 바쁘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것인데 그 일의 해결책을 독서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후배 장교가 군의 고급장교로서 독서의 범위를 묻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무엇이든 읽으라”고 대답한다. 필자가 말해준 ‘무엇이든’의 뜻은 군사부문에 국한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군사학에만 치중하다 보면 다른 지식분야에 어둡게 될 염려가 있기때문이다.
부하를 가진 리더가 가끔 부하들과 담소를 나눌 때 군사부문 이외의 전혀 뜻밖의 학문분야 난제에 대해 해결책이나 명쾌한 해답을 내렸을 때 부하는 또 다른 의미의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은 지휘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작용으로 승화할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는 결정적 복종을 유도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6·25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서 전투시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심이 발휘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부하들은 리더에 의해 그 충성도가 좌우된다. 따라서 전장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경우大義도 있지만 자기 상관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가 직접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인데, 그 인품을 구성하는 요인이 도덕성과 함께 학문에서 연유하기 때문에 리더에게 있어서 학문계발을 위한 독서는 필수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군복을 벗고 30년간 한결같이 군대 일과시간표대로 생활하고 있으며 일과시간 반은 창작으로, 반은 독서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독자 여러분. 특히 고급장교 여러분. 지금 곧 독서 대열에 참여하기 바란다. 7순 노병도 끊임없는 창작과 독서로 금싸라기 같이 시간을 아껴 쓰는데 팔팔하게 젊은 여러분이 독서에 이의를 단다면 되겠는가.
아마 몇몇은‘ 독서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푸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무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적절한 기회임을 알리고 싶다.
이제 평균 수명이 120세까지 연장될 것이라는 의학계의 보고도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직 청춘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7순 노병도 아직 갈 날이 까마득하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이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큰 모순인가.
새로운 위대한 군사부문 한국학의 출현을 기대하면서 노병의 글을 이것으로 끝맺겠다. 후배 여러분의 무운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국방리더십저널>, 2008년 8월 31일 Vol.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