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프로필
1933년 세종시 출생. 대전고등학교 31회 졸업, 육군사관학교 생도2기 명예졸업(한국전쟁 발발), 미국 Fort Benning 보병학교 장교 기본과정 졸업, 육군대학 정규과정 졸업, 국방대학원 졸업 등을 거친 전형적인 야전 지휘관이었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전투 지휘관으로 참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삼일장 및 외국 훈장 등 11개의 각급 훈장을 수훈했다.
1959년 현역 장교 시절 필명 韓史郞으로 시와 1961년 소설로 등단, 많은 작품을 썼다. 특히 베트남전 맹호 제1진 초대 在求大隊長으로 참전, 진중 에세세이 '十九番道路'와 '그대와 나의 유산'을 정글 속에서 집필, 이 책이 1966년과 1967년 각각 베스트셀라에 올라 KBS 1TV '1967년을 빛낸 인물'에 선정 방영되었다.
1981년 정치군인과 결별,육군준장 7년 만기를 채우고 전역, 그 후 본명 박경석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박경석 에세이 정의와 불의' 는 통산 87권 째 작품집이다.
작가는 국제PEN본부 시문학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전쟁문학상 시 부문, 소설 부문 등 총 13회 문학상을 받았다. 한편, 용산 전쟁기념관 '서시', '조국' '추모시' 세 시비를 비롯하여 전국에 11개의 박경석 시비가 건립돼 있다.
설명 17세의 육군소위 소대장 시절, 6.25 한국전쟁 평창전투에서 나는 인민군의 수류탄에 의해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이어서 인민군의 전장정리 과정에서 내가 너무 어려 사살을 면한 후, 인민군 야전치료소에 후송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완쾌 후 적지를 탈출, 3개월 만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훗날, 서울현충원에 내 이름의 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혹시 동명이인이 아닌가 해서 군번을 확인 하니 분명히 내 묘소였다. 거기에 무엇이 묻혔는지 나는 알 수 없다.(국립서울현충원 15묘역 730호 육군소위 박경석의 묘) 지금은 내가 서울현충원에 알려 이 묘를 없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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