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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 박경석

작성자박경석|작성시간22.03.31|조회수2,657 목록 댓글 3
28세의 1사단 15연대 2대대장 1962

 

 국군의 날 보.전.포.공 대대 전투시범 대대장

 1962년 10월 1일. 경기도 성남시 무명 고지

 

 1사단 15연대 2대대장

 1962년 4월 6일~1963년 7월 14일

 

 1군사령부 작전처 작전기획계장

 1961년 4월 4일~1962년 4월 5일

 

1959년 필명 韓史郞으로 시 등단

1961년 필명 韓史郞으로 소설 등단

 

                         

시범 대대 본부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 장군등 귀빈으로 꽉 찼다. 주변 야산에서 언론 추산 17만 명의 시민이 관람했다.

          

한국전쟁 때는 더러 소령 대대장이 있었으나 휴전 후 전방 대대장의 경우 내가 처음 소령 대대장으로 부임했다. 부임 이전에 1군 사령부 작전처 작전기획계장 재직시 청와대에서 '소양강 땜 공사가 작전에 미치는 영향' 연구 과제를 받고 연구에 전력을 쏟았다. 당시 일부에서 '소양강을 땜으로 막으면 전술 상 큰 문제가 야기된다'는 주장이 유력했었다. 그러나 나는 연구를 마치고 '소양강 땜 구축 시 아군의 휴전선 방어 병력 1개 사단을 절약할 수 있고 방어 작전 시 적에게는 큰 손실을 입힐 수 있다' 는 결론을 내리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그 결과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기뻐하면서 소양강 땜 공사에 착수했다.
그 공로로 당시 1군사령부 작전처장 이병형 준장은 1사단장으로 영전하고 나는 이병형 준장의 사단장 부임과 함께 수행해 소령 계급으로 대대장에 보직 됐다. 나는 그 후에도 계속 이병형 장군의 신임을 받고 국가 행사인 '보전포공 대대공격' 시범부대를 지휘 시범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또한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영광을 입었다.

이 시범에서 공군 전투기 1개편대, 포병 105mm 1개 포대, 전차 1개 중대가 추가로 동원됐고 병력 기동중 실제 폭격과 실탄을 퍼부었으나 다행이 안전사고는 없었다. 하늘이 도운 시범이었다.

 

멀리 흰색 점점은 참관하기 위해 모여든 서울 시민들, 왼쪽은 취재 기자들. 인사하는 사단장과 나.

 

중대장으로부터 공격계획 보고를 받는 대대장 박경석 소령

 

                                                      기관총 소대장과 60년만의 해후

60년만의 해후, 전우애

                        보전포공 시범 당시 대대 중화기중대 기관총 소대장 김형도 소위가 '그날의 감동과 대대장님을 몾잊는다'

                             며 가족을 거느리고 2021년 6월 1일 박경석 서재를 방문했다. 선물이 무려 승용차에 가득 찰 정도였다.

가족과 함께

 

상훈

 

보국포장 수훈(국군의날 시범 공로)          http://blog.naver.com/dssskim/222871509664

 

 

중령으로 특진(국군의날 시범 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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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박경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30 위 김형도 소위가 병환 중이다.
    쾌유를 기원한다.
  • 작성자박경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2.15 '60년 만의 해후'.... 김형도 소위가 세상을 떠난 것 같다.
    모든 것이 끊겼다. 삼가 명복을 빈다. 나보다 먼저 떠나다니......
  • 작성자박경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05
    위 김형도 소위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에 접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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