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맹호사단 제1진 초대 在求大隊長 1965~1966
박경석 중령의 베트남 전쟁 맹호 제1진 파월 직전 보직은 진해 육군대학 대부대학부 교관으로 군단 방어작전을 강의하고 있었다. 맹호사단 제1연대와 기갑연대가 베트남 전쟁에 출진하게 되었다. 육군본부 선발 심사 과정에서 6개 보병 대대장 전원이 육군대학 교관으로 선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육군대학에서는 한때 교수부가 마비된다며 육군대학 총장이 참모총장에게 재고를 건의 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만큼 파월 부대 편성에 군 당국은 중시했다. 나는 지금도 당시 제1진 대대장으로 선발된 것을 최고의 영예로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6개 보병 대대장 가운데 육사 생도2기 출신이 반수 3명 포함돼 생도2기에 대해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육사의 '비운의 기', '죽음의 기' 생도2기에 대한 기막힌 이야기는 이때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맹호 제1진 在求大隊長 재직 1965년 9월 4일~1966년 11월 19일
맹호 대대장 파월 전. 1사단 15연대 2대대장 재직 1962년 4월 6일~1963년 7월 14일
베트남 남북을 잇는 1번도로에서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대대장 지휘지침으로 대민선무작전
에 충점을 두고 피난민 수용을 위한 재구촌을 건설하자 빈딩성장의 감사장이 전달되었다.
푸캇 군수 록 대위가 대대장인 나에게 감사장을 전달하고 있다. 선무공작이 발전하자 산 속에 은신중인
베트콩이 대대에 귀순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전 전 기간을 통해 재구대대 제1진에 귀순한 베트콩이 가장
많다.
그후 채명신 주월한국군 사령관 요청으로 대대장 지휘지침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
의 양민을 보로한다'가 주월한국군사령관의 훈령으로 격상됐다.
육군본부 박경석 을지무공훈장 수여식에서. 총장 김계원 대장
상훈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외국훈장 제외
파월 직전 직위
진해 육군대학 교수부 대부대학 교관
군단 방어 강의 - 한국전쟁 발발 당일 전방에 배치된 1사단 7사단 6사단 8사단을 중심으로 초기 방어작전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