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2사단의 서울 북방 DMZ-GOP 인수 연대장
1971년 3월 3일~1972년 2월 6일-GOP. DMZ 전담
1970년 8월 8일~1972년 2월 6일-연대장 재직
1사단 12연대장
그외 주요 보직
1969년 6월 26일~1970년 8월 7일
성균관대학교 ROTC 단장(103학훈단)
이날 브리핑을 위해 며칠 전부터 영문 시나리오를 작성 연습을 거듭한 끝에 내가 직접 영어로 브리핑 했다.
통상 외국인 VIP브리핑시에는 통역장교를 활용한다.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유창하지는 않아도 내가 직접 하는 편이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 미군 장성들은 미국 Fort Benning 보병학교 동문관계이기에 더 설득력이 있었다.
브리핑 서두에 "본인 박경석 대령은 한국전쟁시 정규 육사생도 및 소총소대장으로 전투했고 미국 Fort Benning 보병학교 출신이라고 말하며 베트남전에는 맹호사단 제1진 보병대대장으로 참전 했다"고 하자 레어드 미 국방장관을 비롯해 미군 장성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박수로 응답했다.
오른쪽부터 서종철 육군참모총장, 정래혁 국방장관, 레어드 미 국방장관, 태평양지구 미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 뒷줄에는 미 1군단장을 비롯한 미군 장성 등 VIP 일행.
영광된 나의 군대 생활은 이 경우가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이 브리핑이 끝난 후 1년이 지나면 장군 진급에 해당되면서 나는 계속 정치군인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 및 하나회 전두환 등이 노골적으로 장군 진급을 방해했다. 특히 윤필용에 의한 나의 바꿔치기가 도화선이 되어 윤필용 사건으로 비화됐다. 정치군인이 아닌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나 박경석과 김성배와 바꿔치기 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증거를 포착, 김성배 준장을 구속, 세상에 그 진상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하나회 전두환 정치군인에 의해 역습, 퇴장되면서 나 또한 계속 장군 진급에 탈락해 대령 만기를 앞두고 별 하나를 달았다. 그후 준장 7년간의 별 하나는 무력하고 변방의 별이었다. 눈물의 별이었다. 그러나 그 눈물의 시절에 나의 문학이 성숙하여갔다.
상훈
보국훈장 삼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