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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아카이빙 박경석 육군준장

작성자박경석| 작성시간24.02.25| 조회수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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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김영록 작성시간25.11.27 1970년도 내가 소대장 시절에 박경석 장군이 당시 대령으로 우리 연대장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부대는 그해 년말 미군의 DMZ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경기도 현리 에서 파주 지역으로 이동을 하였으며, 나는 그 다음 해 10월경 월남에 있는 백마부대로 전쟁에 참전 하였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약 40 여 년 후 2012년 어느날 같은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당시 연대장 박경석 장군을 뵙게 되었고 지금 까지 아버지, 큰 형님 처럼 믿고 의지하며 연대장님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한곳에서 살고 있다.

    평소 덕장이시고 지장이며 나라사랑이 충일하신 연대장님을 익히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전쟁기념관 아카이빙 박경석 육군준장" 이란 동영상을 시청하고 보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박장군님의 조국에대한 충정심을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17세의 어린나이에 입학 하기 어려운 육사 생도2기생(4년제) 모집에 당당히 합격하여 입교후 한달도 채 않된, 전술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6.25전쟁을 맞아 생도의 신분으로 전방으로 전투에 투입되어 동기생 330명중 86 명이 전사한 그러한 치열한 전쟁을 겪었으며 또한 소위 임관 후에는 인민군에게 포로가 되어 생사를
  • 작성자 김영록 작성시간25.11.27 넘나드는 상황 하에서 생환하는 불굴의 투지를 보았다.

    또한 전쟁기념관 건립에 참여하여 모 대통령에 의해 기념관 건립이 무산 될 위기에 직면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병형장군과 박장군 께서 끈질기게 기념관의 건립 취지를 피력하여 결국에는 호응을 받아 오늘의 전쟁기념관이 탄생 하여 지금 까지 많은 후대들에게 산 교육장이 되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씨조선 후기 외부의 침탈, 일제의 압박, 6.25전쟁의 비참함과, 월남전쟁, 등 을 거치면서 오늘의 선진국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응축한 하나의 과정을 우리 후대에게 남겨 주기 위한 큰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박장군 께서는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며 특히 동족 간에는 절대로 싸워서는 안된다는 구국충정의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나 역시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전쟁, 우크라이나전쟁, 아프간사태 등 국가안위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라가 없으면 돈과 명예와 목숨이 내 것이 아님을 ~

    재 삼 우리 후손들에게 깊히 나아 가야 할 바를 제시해 주신 박장군님의 공로에 큰 감명을 느끼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예비역 육군대령 김 영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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