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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詩碑 6선

<서시> 전쟁기념관

작성자박현우|작성시간24.02.25|조회수132 목록 댓글 0

<서시> 전쟁기념관

 

 

서 시

 

여기 맥맥히 흐르는 숭엄한 겨레의 숨결과 거룩한 호국의

발자취 살아 있어 경모의 정 뜨겁게 솟구치리

 

한핏줄 이어온 자존과 삶의 터전 지킨 영웅들 위훈으로

이 하늘 이 땅에 해와 달 고이 빛났어라

 

침략 물리친 선열의 얼 좇아 불뿝는 조국애 드넓게 떨치어

자랑스러운 민족사 영원토록 보전하리라


                                                                 지은이 박경석

 

 

 

 

전쟁기념관 시비 <서시>

 

전쟁기념사업회에서는 당시 시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견 시인들을 선별, 서시 작시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영광스럽게도 본인으로 확정되었다. 따라서 나는 전쟁기념사업회 이병형 회장으로부터 전쟁기념관 정문 중앙에 건립하게 되는 시비에 헌정하게 될 '서시' 창작을 위촉받았다.

 

나는 '서시' 를 쓰기전에 약 보름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현충사를 비롯한 선열의 유적지를 답사했다.특히 '서시' 는 전쟁기념관의 현판격인 정문 중앙에 설치되는 것이므로 최대한 절제된 시문으로 해달라는 것이 국방부의 요청이었다. 참선하는 마음에서 온 정성을 다하여 쓴 '서시' 가 바로 다음 글이다.


'서시' 제1연~ 여기 맥맥히 흐르는 겨레의 숨결과 거룩한 호국의 발자취 살아있어 경모의 정 뜨겁게 솟구치리.

'서시' 제2연~ 한핏줄 이어온 자존과 삶의 터전 지킨 영웅들 위훈으로 이 땅에 해와 달 고이 빛났어라.

'서시' 제3연~ 침략 물리친 선열의 얼 좇아 불뿜는 조국애 드넓게 떨치어 자랑스러운 민족사 영원토록 보전하리라.


각 연의 의미는 따로 해설할 필요 없이 총론적인 의미로 함축 설명 하겠다. 역사를 이어온 선열에 대한 외경과 조국을 위해 숨져간 호국의 열사에게 경외의 뜻으로 '서시' 의 첫 부분을 열고 다음으로 국난을 극복하여 민족의 맥을 이은 영웅들의 공훈을 찬양 하면서 오늘날의 풍요와 행복이 선열 때문임을 강조했다. 끝으로 선열의 위훈을 기리며 그 거룩한 뜻에 따르겠다는 우리들의 각오를 천명했다.

 

즉 전쟁기념관은 선열의 얼을 기린다는 측면과 그로부터 위훈을 이어받아 조국을 위해 헌신 하겠다는 맹세로 끝을 마무리했다. 따라서 전쟁기념관은 현재의 국가보위와 앞으로의 조국수호를 다짐하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교육장이다. 전쟁을 잊고 있을 때 위기가 닥쳐온다. 항상 전쟁에 대비할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울 한복판에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유비무환' 의 진리를 일깨워 줄 것이다.

 

이 글 끝에서 한가지 밝힐 것이 있다. 전쟁기념관 정문 중앙에 서있는 시비 '서시' 에 관한 것이다.이 시비에는 그동안 기이하게도 시 제목과 시인의 이름이 없었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전쟁기념관이 준공되었지만 그무렵까지 정치군인의 입김이 통할 때 였으므로 나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했다.즉 전쟁기념관에 먼저 세워진 시비 '조국' 도 박경석인데 또 시비 '서시' 에까지 박경석 이름을 조각할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무려 10여 년간 시 제목과 작시자 이름없는 유일한 시비가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2004년 당시의 전쟁기념관장 김석원 장군은 이사회를 소집 심의케 하여 합의를 도출한 다음 제목 , '서시 ' 와 ' 지은이 '박경석 ' 을 시비에 조각케 했다.


더 첨부 한다면 원래 정문 중앙에 설치토록 게획되었으나 그간 구석에 쳐박혀 있던 것도 김석원 관장이 원래 위치인 정문 중앙에 옮겨 세웠다. 내 걸어온 험난했던 발자취처럼 이 시비도 험난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정치군인들은 이와 같이 끊임없이 나의 진로를 가로막아 왔다. 나는 그럴수록 힘이 더 솟구쳤다. 더 의욕이 샘솟았다. 내가 지치지 않고 창작을 계속 하고 있는 것도 이들의 견제를 헤쳐나가야 되겠다는 의지와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지금 용산 삼각지 전쟁기념관 정문 안쪽에 있는 시비가 바로 그 시비이다. 서시의 주제인 시비 바깥쪽 '전쟁기념관' 글씨는 건축공사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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