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어
모처럼 새벽잠이 깨었다.
아마 최근 며칠 동안 계속해 온 약물 실험 때문일 것이다. 마도파 HBS를 써 보기도 하고, dyskinesia를 줄이기 위한 여러 약물 조합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내 몸의 리듬도 함께 흔들렸을 것이다.
다시 잠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조용한 새벽, 생각을 정리해 볼까 하는 마음에 펜을 들었다.
최근 약물학 실험을 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환과 치료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약을 가지고 자기 몸에 직접 실험을 해 볼 기회를 가진 환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파킨슨병은 참 독특한 병이다.
논문을 뒤적이다 보면 10년 전, 20년 전 연구자들과 환자들이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온 시간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상운동증을 줄일 수 있을까.”
“왜 같은 용량인데도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나쁠까.”
놀랍게도 그 질문들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지도 모른다.
의학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파킨슨병이라는 거대한 퍼즐은 아직도 수많은 조각들이 비어 있다.
문득 생각해 보면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빠르다.
병을 진단받은 것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14년이 흘렀다.
그동안 고통스러운 날도 많았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날도 있었고,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감사한다.
파킨슨병은 내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진 않았다.
암처럼 극심한 통증을 주지도 않았고, 하루 스물네 시간을 전부 빼앗아 가지도 않았다.
약이 잘 듣는 몇 시간 동안 나는 여전히 걸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자유를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다.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매일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병실을 돌다 보면 나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뇌졸중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환자.
암이 전신으로 퍼져 극심한 통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환자.
어제도 토요일 당직 중 유방암이 전신으로 전이된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 보냈다. 통증이 너무 심했다. 병실을 나서는 가족들의 표정을 보며 한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환자들을 보고 돌아와 내 몸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물론 파킨슨병도 결코 가벼운 병은 아니다.
나 역시 두려움과 좌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아직 나는 걸을 수 있다.
생각할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쩌면 감사함이란 완벽한 건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 나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올린다.
신들은 시지프스에게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내렸다. 하지만 바위는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끝없는 반복.
끝없는 노동.
처음에는 잔인한 형벌처럼 보인다.
그러나 까뮈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시지프스를 행복한 인간으로 상상해야 한다.”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 과정 속에서,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나는 그 말이 이해된다.
파킨슨병 역시 비슷하다.
오늘 조절한 약은 내일 다시 맞지 않을 수 있다.
겨우 찾은 균형은 며칠 뒤 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기록하고, 다시 관찰하고,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지금도 논문을 읽고 약물 그래프를 그리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정상에 도착한 바위가 결국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다시 밀어 올린다.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한다.
오늘은 dystonia가 없었다.
오늘은 보행이 조금 더 부드러웠다.
오늘은 한 시간 더 자유로웠다.
그 작은 승리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새벽 창밖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이제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바위를 밀어 올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굴러 떨어지더라도, 정상에 가까워지는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