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콜린성 네트워크균형과 주의력의 세계
도파민의 세계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하나의 사실을 배웠다.
움직임의 엔진은 중요하다.
하지만 엔진만으로 자동차가 달릴 수는 없다.
중기 파킨슨병에 들어서면서 환자들은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약은 분명 듣고 있다.
손은 움직인다.
다리에도 힘이 있다.
그런데 발이 바닥에 붙는다.
방향을 바꾸려다 멈춘다.
뒤로 밀린다.
걷다가 누군가 말을 걸면 걸음이 느려진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몸이 갑자기 얼어붙는다.
분명 출력은 충분한데, 몸의 자동운전 기능이 고장 난 듯한 느낌.
도파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은 이것도 도파민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을 더 올려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손은 더 흔들리고 이상운동증은 심해졌지만,
균형과 freezing은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그제야 연구자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파킨슨병에는 도파민 말고 또 다른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중심에는 콜린성(cholinergic) 네트워크가 있었다.
뇌간 깊은 곳에는 작은 구조물이 하나 있다.
Pedunculopontine nucleus.
줄여서 PPN.
크기는 작지만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PPN은 몸의 자동항법장치와 같다.
우리가 걷는 동안
균형을 유지하고,
자세를 조절하며,
방향을 바꾸고,
넘어질 때 중심을 회복하는 일.
이 모든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처리해 준다.
젊었을 때 우리는 걷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걸었다.
걷다가 대화했고,
대화하면서 방향을 바꾸었으며,
커피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모든 것이 자동이었다.
그 자동성의 배경에는 콜린성 네트워크가 있었다.
하지만 중기 파킨슨병에서는 이 자동항법장치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걷는 것이 더 이상 자동이 아니다.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
첫발을 의식해야 하고,
방향을 바꿀 때 집중해야 하고,
좁은 문을 통과할 때 긴장해야 한다.
자동운전이 꺼지고 수동운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기 환자들은 말한다.
"예전에는 걷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걸으려면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콜린성 네트워크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freezing이다.
발은 멀쩡하다.
근육도 살아 있다.
그런데 출발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다.
문턱 앞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방향을 바꾸려는 순간.
발은 바닥에 붙어버린다.
몸은 가고 싶어 하지만 네트워크는 잠시 동기화를 잃는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가 잠깐 박자를 놓친 것처럼.
또 하나의 얼굴은 retropulsion이다.
사람이 뒤로 밀릴 때 정상적인 몸은 즉시 반응한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중심을 회복한다.
하지만 콜린성 네트워크가 손상되면 이 반응이 늦어진다.
한 걸음이면 될 것을 두세 걸음 걷고,
그래도 중심을 못 잡아 넘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반응이 늦은 것이다.
자동항법장치가 고장 난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주의력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중기 파킨슨 환자들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걷다가 말을 하면 걸음이 느려진다.
휴대폰을 보면서 걸으면 발이 붙는다.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 몸은 멈춘다.
자동운전이 사라진 자리를 의식이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CPU가 두 개의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중기 환자들에게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하나씩 하자."
걷는 동안은 걷는다.
돌아설 때는 멈춘 후 돈다.
일어선 뒤에는 잠시 서서 균형을 잡는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단순한 생활의 지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뇌의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전략이다.
흥미로운 것은 콜린성 네트워크는 약보다 운동과 환경에 더 잘 반응한다는 점이다.
리듬.
큐잉.
시각적 단서.
큰 동작.
탁구.
춤.
태극권.
걷기.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 회로들을 깨우고 우회로를 만든다.
그래서 균형장애는 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몸 전체가 새로운 길을 배워야 한다.
중기 파킨슨병은 우리에게 하나를 가르쳐 준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근육의 힘이 아니라 수많은 회로들의 협연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동으로 되던 일들이 더 이상 자동이 아닐 때,
우리는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던 시스템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젊었을 때는 공기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숨이 차기 시작하면 비로소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자동으로 걷던 시절에는 균형의 존재를 몰랐다.
그러나 중기 파킨슨병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걸음 하나에도,
몸의 중심 하나에도,
수많은 신경망들이 보이지 않게 협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조력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
도파민이 흔들리고,
콜린성 네트워크가 지쳐갈 때,
묵묵히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어 주는 숨은 조력자.
제3장. 소뇌 네트워크― 우회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