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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님의파킨슨일지

3강

작성자곰돌이푸|작성시간26.06.22|조회수25 목록 댓글 0

 

제3장. 소뇌 네트워크우회의 세계

도파민의 세계를 지나고, 콜린성 네트워크의 세계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기 파킨슨병은 잃어가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무너지는 회로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그 빈자리를 메우려 애쓰는 회로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말없이 일하는 조력자, 소뇌가 있다.


의과대학 시절 소뇌는 운동을 조절하는 기관이라고 배웠다.

운동의 타이밍.

균형.

협응.

미세한 움직임.

소뇌가 손상되면 비틀거리고, 손끝이 떨리고, 정확한 움직임이 어려워진다고 배웠다.

하지만 파킨슨병에서 소뇌는 단순한 조연이 아니었다.

도파민 네트워크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소뇌는 조용히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망가진 길을 대신할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 걷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자동으로 걸었다.

기저핵이 모든 것을 처리해 주었다.

하지만 중기 파킨슨병에서는 자동항법장치가 흔들린다.

그때부터 사람은 걷기 위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소뇌는 외부의 도움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리듬.

박자.

시각적 단서.

계단.

음악.

큐잉.

모두 소뇌가 좋아하는 언어들이다.


그래서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평지는 어렵다.

그런데 계단은 잘 오른다.

넓은 복도에서 발이 붙는데,

바닥에 선을 그어주면 걷는다.

첫발은 안 나가는데,

메트로놈 소리에 맞추면 움직인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근육의 힘은 그대로인데.

도파민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닌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길이 바뀐 것이다.

망가진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형이 발견한 다이아몬드 보행.

스케이트 보행.

발목 dorsiflexion.

발목 보호대.

큐잉.

탁구.

어쩌면 이것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소뇌가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

도파민의 길이 막혔을 때,

몸은 포기하지 않는다.

조용히 다른 길을 찾는다.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다.


탁구를 칠 때를 생각해 보자.

공이 날아온다.

눈이 움직인다.

몸통이 회전한다.

발이 움직인다.

균형을 잡는다.

손이 반응한다.

이 모든 일이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탁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눈과 몸통, 전정계와 소뇌, 감각과 균형이 동시에 연주하는 작은 오케스트라다.

그래서 많은 파킨슨 환자들이 탁구를 좋아한다.

어쩌면 탁구대 앞에서는 뇌가 잠시나마 자신이 가진 모든 회로를 총동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계단이 평지보다 쉬운 이유도 비슷하다.

평지에서는 내부 리듬이 필요하다.

스스로 걸음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계단은 다르다.

다음 발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시각적 단서가 있다.

리듬이 있다.

소뇌는 이런 정보를 좋아한다.

그래서 평지에서는 발이 붙어도 계단에서는 잘 움직일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박자가 있는 음악.

리듬.

메트로놈.

발걸음 소리.

이런 외부 신호들은 소뇌를 깨운다.

그리고 잠시 동안 무너진 자동항법장치를 대신한다.

큐잉이 효과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리고 소뇌는 외부에서 길을 찾는다.


운동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운동은 근육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신경망을 만드는 일이다.

신경가소성.

뇌는 변한다.

반복하면 배우고,

사용하면 강화된다.

잃어버린 길이 있으면 새로운 길을 만든다.

마치 홍수로 다리가 끊어지면 사람들은 우회도로를 만드는 것처럼.

소뇌는 평생 동안 그런 일을 해왔다.

묵묵하게.

불평 없이.


그래서 중기 파킨슨병은 단순한 상실의 과정이 아니다.

무너지는 회로가 있는가 하면,

새롭게 적응하는 회로도 있다.

소뇌는 늘 뒤에서 조용히 일한다.

화려하지도 않고,

주목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길이 끊어졌을 때 가장 먼저 삽을 들고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소뇌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운동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몸은 생각보다 영리하다.

뇌는 생각보다 끈질기다.

길이 막히면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리고 소뇌는 평생 동안 그 우회로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기술자라도 혼자서는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몸은 늘 중력과 협상하며 살아간다.

눈을 감으면 흔들리고,

어두운 밤에는 더 불안해진다.

왜 우리는 넘어질까?

왜 뒤로 밀릴까?

그리고 왜 밝은 빛과 시각적 단서가 중요한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은 또 다른 세계에 숨어 있다.

제4장. 전정계 네트워크― 중력과 균형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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