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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님의파킨슨일지

몸이 내 편이 아닌 시간 --쉬어가는글

작성자곰돌이푸|작성시간26.06.23|조회수27 목록 댓글 0

 

- ON과 OFF의 변화

건강한 사람들은 흔히 OFF를 힘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약효가 떨어지면 몸이 축 처지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OFF는 단순히 힘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몸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더 이상 내 편이 아닌 시간이다.


건강할 때 우리는 중심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도,

몸이 균형을 잡고 있다는 사실도,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걷는다는 사실도 너무나 당연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OFF가 찾아오면 평생 당연했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몸의 중심이 흐려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몸 어딘가에 있던 경계 시스템이 갑자기 해제된 느낌.

늘 나를 지켜 주던 준비태세가 사라진 느낌.

몸은 내 몸인데 이상하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참 설명하기 어렵다.

아프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힘이 없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어지럽다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그래도 굳이 언어로 옮겨 보자면,

몸은 내 것인데 몸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아마 그것이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 그 느낌을 잠시라도 상상해 보고 싶다면,

하루 종일 산을 오른 뒤 녹초가 된 몸으로 깊은 계곡 위 좁은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된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발밑은 아찔하고,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혹시라도 미끄러질까 봐,

몸 전체가 긴장한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균형 잡기조차 의식해야 한다.

OFF 상태의 파킨슨 환자들이 느끼는 세상도 어쩌면 비슷할지 모른다.

평지를 걷고 있지만 마음은 깊은 계곡 위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스케이트장을 처음 섰을 때와도 비슷하다.

몸은 앞으로 가고 싶은데 중심은 잡히지 않는다.

뒤로 밀리는 것 같고,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넘어질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몸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진짜 힘든 것은 이런 감정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한다는 것이다.

몸이 돌아왔다가,

다시 낯설어지고,

안정감을 찾았다가,

다시 중심을 잃는다.

ON과 OFF가 반복될 때마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고,

이번에는 또 어떻게 지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행된 파킨슨 환자들의 고통은 단순히 움직이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끊임없이 몸과 화해하고,

다시 적응하고,

다시 중심을 찾고,

다시 몸을 믿어야 하는 과정 자체가 고통인지도 모른다.


건강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자기 몸을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행된 파킨슨 환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몸과 다시 인사를 해야 한다.

"괜찮니?"

"조금만 더 가 보자."

"다시 돌아올 거야."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ON이 찾아온다.

신기하게도 세상은 그대로인데 몸이 달라진다.

발밑에 다시 땅이 생긴다.

몸이 다시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가슴이 편안해진다.

걸음은 자연스러워진다.

몸이 돌아왔다는 느낌.

중심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느낌.

그래서 환자들은 "약이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몸이 돌아왔다."

"살 것 같다."

"땅을 다시 밟는 느낌이다."

라고 말한다.


뭐랄까.

이런 감정은 아직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어쩌면 세상에 아직 이름이 없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단순한 힘의 부족이 아니다.

통증도 아니다.

그것은

'내 몸이 더 이상 완전히 내 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다.

그리고 진행된 파킨슨 환자들의 고통은,

그 두려움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면서도

다시 몸을 믿어 보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려는 외로운 노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진행된 파킨슨 환자들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다.

몸이 내 편이 아닌 시간 속에서도,

다시 몸을 믿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절망 속에서도 평범한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가 매일 해내고 있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기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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