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ther에 이어T-34/85를 만들었습니다.
이번것은 지난번 M4A3E8에 이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version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즘 북한하고도 관계가 안좋은데...
1. 제작 동기
2차대전 MBT시리즈의 마지막으로 T-34까지 왔군요
Easy-Eight와 마찬가지로 작년에 전쟁기념관에서 실물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차때문에 2차대전에 연합군이 승리를 거둔 원인이 되었으나 한국전쟁에는
아군의 피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Easy-Eight에 대응되는 북한군 version으로 만들었으며 하기 사진을 참조했습니다.
한국전쟁당시 서울에 진주한 북한군 전차 (차량번호 215번 : 107전차여단 추정)
단, 차량번호는 급하게 그린것으로 보이며 매우 투박해보임
전쟁기념관의 T-34-85
2. 제작 과정
Tamiya Kit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실물 자체가 단순하고 생산성있게 설계된지라 모형자체도 단순하게 조립하였습니다.
(사실 "단순조립" 은 2년전에 하였으나, 도장등은 판터 이후 바로 작업하였습니다.)
유명한 "다카니 요시유키"씨의 T-34/85 Box Art
T-34/85형과 76형 설명서 (저의 76형은 박스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3. 모형 사진
: 서울에 진주한 상황으로 간주하여, 먼지에 뿌옇게 쌓인 설정을 하였고 한국이 습기가 많은 지역인 만큼
철제 캐터필러는 녹이 많이 슨상태로 표현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캐터필러에 녹이슨 표현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장마도 있는 만큼
이부분은 표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처럼 차량 번호는 투박하게 그려져 있어 붓으로 그대로 그렸습니다.
4. 실물 전차에 관하여 :
T-34에 대하여는 너무도 유명하여 별다른 설며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전쟁당시 본 전차와 관련한 몇가지 사항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105전차여단
기갑전을 중시한 소련군은 북한군에 전차연대 창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1947년 5월 17일
115 전차연대를 시작으로 기갑부대를 보유하게 됩니다.
T-34전차를 대량으로 지원받은 북한은 후에 105기갑여단으로 확대개편되게 되며 3개 전차연대로
120대의 T-34를 보유하게 됩니다. (107, 109 및 203전차연대)
(일부 보병사단에 속한 전차대 까지 포함하면 총 240여대의 T-34/85를 보유하며 SU-76자주포도 176대를
보유하게 됨)
중요한 사실은 그당시 여단장으로 유경수 중좌(중령)이 초대 115전차연대장이 되는데 2차대전 당시 소련군
전차부대 대위출신으로 독일과의 전투경력이 있다는 점이었고 전차부대원도 상당수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장비도 우수하였으나 북한군은 상당수가 실전경험이 있는 정예부대였다는 점입니다.
결국 전쟁 발발그해 105전차여단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남쪽 및북쪽 양방향 협공으로 조치원
부근에서 괴멸되며 사단장 (유경수 소장)은 미군 야전상의를 걸쳐입고 도주하였다고 합니다.
2). 한국전쟁 당시 주요 전투기록
A. 조치원 전투 (충남 연기군 전의면 부근)
미 24사단 78전차중대 소속 M-24전차 14대와 203전차연대 소속 T-34/85가 첫 교전을 하게되는데 M-24전차
2대가 파괴되며 T-34/85도 1대를 손실하게 되지만 근본적으로 싸움이 되지 않는 전투였다고 합니다.
(M-24를 괴롭힌 것은 T-34/85 뿐만 아니라 대전차소총인데 경전차의 장갑을 그대로 뚫어버렸다고 합니다.)
B. 다부동 전투
8월 21일 미 73전차대대의 C중대 M-26전차와 북한군 13사단소속 T-34/85 14대가 대규모 전차전을 벌이게 되는데
(미군 전차대의 본격적인 전차전 투입임) 일방적 전투를 벌여 적 전차 14대중 13대를 격파하나, 아군피해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85mm 포탄이 원거리에서 미군전차에 맞고도 그대로 튕겨나갔다고 합니다.
※ 낙동강 전선의 오곡리전투 당시 90mm탄에 명중되어 포탑 상판이 뜯겨나간 T-34/85
C. 평양 전투 : Easy Eight와 전투기록이기에 적어봅니다.
평양 부근 70전차대대 소속 Easy Eight는 반격에 나선 T-34/85를 향해 76mm포를 발사하여 50m, 20m거리에서
포탑에 명중시키나 T-34/85가 계속 전차포사격을 하며 Easy Eight에 충돌하려 하였는데 세발째 포신을 파열시키고
마지막발로 T-34 차체를 명중시켜 정지시켰다고 합니다.
당시 T-34/85도 Easy Eight에 명중탄을 쏘았으나 관통시키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 아마도 양 전차간에 철갑탄을 사용한 전투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Easy-Eight는 당시 HVAP (고속철갑탄)을 표준 철갑탄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탑재 72발中 10발이
HVAP탄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소/중대장 명령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편 T-34/85는 총 탑재 55발 中 철갑탄 5발을 탑재하였다고 합니다.
아니면 상기 전투에서 드물게 양 전차간에 철갑탄을 사용하였으나 드물게 격파가 되지 않은 경우일 수도 있겠네요.
5. 기타 마무리
1). Easy Eight과 T-34/85와의 비교
참고로 셔먼 (Easy Eight)전차는 T-34/85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곰곰히 살펴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 정도는 아니고 T-34/85가 설계상 또는 기동성, 피탄면적 등에서 유리할 뿐입니다.
따라서 양전차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또는 T-34/85가 약간 앞선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설계상 셔먼보다 T-34 시리즈가 훨신 앞선 설계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 오히려 장갑관통력은 탄환 개량으로 말미암아 76mm포가 85mm포보다 우수합니다.
개량형 철갑탄 사용시 76mm포는 약 500M에서 157mm관통 (HVAP탄)
85mm포는 500M에서 100mm관통 (APCR탄)
※ 소련제 탄환의 품질이 매우 저조한 원인이 매우 큼.
한국해병 전차중대 Easy-Eight와 북한군 105전차여단 T-34/85와의 비교
2)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T-34/85를 사용한 것이 우리에게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소련군이 당시 북한군에게 IS-2 또는 IS-3 Stalin을 제공했다면... 아마도 지금 제가 대한민국에서
이런글 쓰고 있지 않을겁니다.
적어도 당시 한국군에게 최소 Easy Eight 1개 대대만 있었어도 초반 3일만에 서울이 쉽게 점령당하는 공황상태는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제 2차대전 (한국전)에 대량 사용되었던 전차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일단 사진을 보면 T-34, Easy-Eight 및 Panther인데 세 전차를 비교하는 것은 나중으로 일단 미루겠습니다.
(영국군 전차가 없는데 일단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추가하여 종합 요약정리하겠습니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는데 봐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근데...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위의 사진중에 한개만 국산(그것도 조합해서 만든것)이네요...
이것 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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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문성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3.25 맞습니다. 당시로써는 정말 비싼 가격이라 사고싶어도 사지 못하는 꿈에그리던 제품이었죠... (더군다나 학생이라 더 그랬습니다.) 좋은 평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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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olonel-tun 작성시간 09.03.26 잘만드셨습니다. 거칠지 않은 웨더링이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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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문성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3.27 좋은평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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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성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3.27 좋은 평 모두 감사드립니다. 신제품 소식란을 보니 아카데미에서 셔먼 Easy Eight를 한정판으로 출시한다는데 감격했습니다. (물론 정식 Line-up은 아니지만...) 정말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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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라임나무 작성시간 13.03.16 정성이 많이 깃든 작품이군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