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보릿고개를 넘어온 추억의 들녘에서
수필 (권곡眷榖) 박정현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한 편의 동화를 품고 살아간다. 내게 그 동화는 화려한 장난감도, 풍족한 먹거리도 아닌 흙냄새와 바람 냄새가 가득한 시골 마을의 어린 시절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 속에서 세상을 만나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의 놀이터는 온 마을이었다. 들판이 운동장이었고, 개울이 수영장이었으며, 하늘은 끝없는 꿈의 무대였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새벽부터 썰매를 챙겨 들고 논으로 달려갔다. 얼음이 두껍게 언 논바닥은 그 시절 최고의 놀이터였다. 쇠꼬챙이를 양손에 쥐고 얼음 위를 미끄러질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신이 났다. 차가운 바람에 볼은 빨갛게 얼어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눈이 녹고 봄바람이 불면 팽이치기가 시작되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를 채로 힘껏 내리치면 팽이는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았다. 누가 더 오래 돌리는지, 누가 상대 팽이를 먼저 쓰러뜨리는지 겨루며 하루가 짧은 줄 몰랐다.
연을 만들어 날리던 날도 잊을 수 없다. 대나무를 깎아 뼈대를 만들고 한지를 붙여 만든 연은 우리들의 꿈을 실어 하늘로 올라갔다. 높이 날아오른 연줄을 잡고 있노라면 마치 내 마음도 푸른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논에서는 말뚝 치기를 했고, 골목에서는 자치기를 했다. 못 치기 놀이를 하며 땅바닥에 못을 박아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가진 것은 없어도 웃음은 넘쳤고, 먹을 것은 부족해도 친구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보릿고개다.
봄이 되면 지난해 거둔 곡식은 바닥이 나고, 새 보리가 익기까지는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부엌의 쌀독은 비어 갔고, 어머니의 한숨도 깊어졌다.
배고픔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들판을 걷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 죽을 끓여 먹었고, 감자 몇 알을 삶아 온 가족이 나누어 먹었다. 그마저도 귀한 날이 많았다.
어머니는 자식들 먹이려고 당신 몫을 슬그머니 밀어놓곤 했다. 철없던 나는 그것을 몰랐다. 배가 부르지 않아 투정을 부렸지만, 어머니는 그저 웃으셨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웃음 속에 숨겨진 사랑과 희생을 알게 되었다.
가난은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웃집 굴뚝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나면 한 그릇 나누어 먹었고, 김장철이면 서로 품앗이를 하며 겨울을 준비했다. 어려울수록 더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던 정이 있었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은 결코 풍요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가난 속에는 오늘날 쉽게 찾기 어려운 소중한 가치들이 숨어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 이웃의 정,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썰매 대신 자동차가 달리고, 연날리기보다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조차 낯설어진 세상이지만,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배는 고팠지만 꿈은 배고프지 않았던 시절.
가진 것은 적었지만 마음은 넉넉했던 시절.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웃음꽃을 피우던 그 아이는 세월 속에 늙어 가고 있지만, 추억만은 늙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음속 고향 들녘에 서서 하늘 높이 연을 날린다.
그 연줄 끝에는 어린 시절의 나와, 부모님의 사랑과, 잊을 수 없는 보릿고개의 추억이 바람 따라 펄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