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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성자(청후) 고영균|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0

사람의 온도
“안녕하세요.”
숨을 조금 깊게 내쉬면 나오는 다섯 음절. 이 사소한 말통에는 ‘나는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다’라는 가축적인 합의가 담겨 있다. 최소한의 안전 신호. 그러나 이 신호가 불발될 때, 도시는 순식간에 기괴한 격투기장으로 변한다.
아파트 복도의 LED 센서 등은 늘 같은 자리에 서면 결벽증 환자처럼 불을 켰다. 그날 맞은편 현관문이 동시에 열렸고, 검은 비닐봉지를 든 이웃이 나왔다. 슬리퍼 끄는 거친 소리가 시멘트 바닥에 얇게 번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발신했다.
“안녕하세요.”
공기는 고요했고, 센서 등 내부의 미세한 기계음만 정적을 메웠다. 이웃은 들은 척도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직진했다. 허리를 펴는 타이밍을 놓친 나는 반쯤 꺾인 채 허공을 보았다. ‘뻘쭘하다’는 비속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모욕감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그의 등짝이 유난히 비대해 보였다. 숫자에 불이 들어오고, 복도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노골적인 야유보다 무서운 것은 무시였다. 내가 건넨 음절은 콘크리트 벽을 맞고 튕겨 나와 내 얼굴에 가차 없이 처박혔다. 인사는 배달사고가 났다.
그 짓거리가 몇 차례 반복되자 내 안의 톱니바퀴가 비틀어졌다. 무안함은 이내 지독한 계산기로 바뀌었다. ‘저 인간은 뭔데 내 인사를 씹지? 직업이 난해한가? 집구석에 우환이 있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 역시 마음의 용접면을 내렸다. 다음 마주침부터는 복도로 나서기 전 미리 휴대전화를 꺼내 눈을 처박았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화면에 반사된 내 눈은 타인을 피하는 게 아니라, 들키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는 옹졸한 패배자의 그것이었다. 기대를 버리니 편하다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고립의 구린내였다.
현장에서 보호면을 제대로 내리지 않고 섬광을 보면 밤새 눈에 모래알이 구르는 ‘아다리’가 온다. 맨눈으로 빛을 탐한 대가는 눈꺼풀 안쪽을 난도질한다. 복도에서 마주한 대답 없는 침묵은 내 정신에 걸린 아다리였다. 눈의 통증은 안약을 넣으면 가라앉지만, 인간관계의 아다리는 다음 마주침을 망설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상대를 증오하게 만든다. 인사가 끊긴 복도는 용접봉이 지나가지 못해 쩍 벌어진 철판의 틈새 같았다. 열기가 닿지 않은 틈으로 도시의 냉기가 사정없이 들이쳤다.
어느 날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한 젊은 여성이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등 뒤에서 그렇게 차갑던 이웃들의 대답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순간 뇌수가 찌릿했다. ‘선별된 호의’. 왜 누구의 인사는 환대받고, 내 거친 목소리는 쓰레기처럼 버려지는가. 내 행색이 허름해서인가, 내 표정이 험악해서인가.
집으로 올라오는 길, 밀려드는 비참함을 감추기 위해 나는 서둘러 서운함을 ‘정당한 분노’로 조립했다. 그 인간의 성격 탓으로, 도시의 삭막함 탓으로 돌리며 정신승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진짜 진실은 따로 있었다. 나는 그 이웃의 사정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내 알량한 자존심이 긁힌 게 분해서, 속으로 그를 마음껏 난도질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 역시 내가 받은 냉기를 고스란히 복사해 세상에 뱉어내고 싶은 속물에 불과했다.
다시 인사를 건네기로 한 것은 무슨 대단한 친절주의자나 성인군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타인의 냉기에 오염되어 똑같이 괴물이 되어가는 내 꼴이 가장 먼저 역겨웠기 때문이다. 손해 보는 기분이 들고 척추가 아릿하더라도, 둔감해진 시체로 사느니 불편한 인간으로 남는 게 싸게 먹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린다. 숨을 고른다. 대답이 돌아올지, 아니면 또 한 번 콘크리트 벽에 대가리가 깨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뱉는다.
“안녕하세요.”
이것은 소통을 위한 시도가 아니다. 침묵을 닮지 않으려는, 악에 받친 나만의 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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